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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식과 이완의 해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평점 :
잠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으로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하루 혹은 꼬박 이틀이나 사흘을 잘 수도 있겠지만 1년이라는 시간동안 잠을 잔다면 마음 속의 슬픔이나 고통을 잊을 수 있겠는가. 마치 개구리나 뱀이 동면을 하듯 사람도 동면을 한다면 말이다. 물론 책 속의 주인공 '나'는 약간의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고, 부모가 물려주신 재산 때문에 이삼 년은 충분히 지낼 수 있는 돈이 있었다. 재산세 등을 자동납부로 처리해놓고 동면에 들 준비를 마쳤다.
주인공은 말한다. '나의 동면은 자기보존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내 생명을 구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18페이지) 라고 말이다. 여기에서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마음속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을 거라고. 그 고통때문에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었다고. 1년 간의 동면이 필요했다고 보았다. 주인공은 스스로를 가리켜 '아직 예쁘고 금발이며 키가 크고 날씬하다' 라고 말한다. 더군다나 부유한 부모를 두었기에 타인들의 부러움을 샀다. 특히 '나'의 곁에 하나남은 친구 '라바'가 부러워했다.
이러한 조건을 가졌음에도 주인공은 갤러리에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으며 결국 해고를 당했다. 동면에 들어가며 모든 빗장을 걸어 잠갔으나 그녀의 잠을 방해하는 라바때문에 불편하다. 닥터 터틀에게 전화로 상담하며 필요한 약들을 처방받아 복용했다. 여러가지의 약들을 먹기 시작했고 잠에 빠져 기억이 나지 않는 일들을 시작했다. 몽유병의 시작이었다. 눈을 떠보면 새로운 물건들이 놓여 있었고 이 모든 것은 그녀가 잠에 취해 벌여놓은 일들이었다.
주인공의 동면의 시작은 부모로부터 나왔다. 술과 약에 절어 그녀를 돌보지 않았던 어머니와 그러한 어머니를 바라보며 자기의 마음을 둘 곳 없이 방황해 역시 무관심으로 대했던 아버지 때문이었다.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일종의 애정결핍이 불러일으키는 정신적인 상처였다. 그래서 주인공은 충분히 잠을 자고 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거였다. 그런데 잠이 이러한 효과를 가져올까. 나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본다. 평소 스트레스가 쌓일 때는 책읽는 것으로 풀지만 진짜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잠을 피난처로 삼는 것 같다. 어떤 소설들에서도 자주 나타나지 않나. 오랫동안 잠을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을 거라는 상상 말이다. 모든 고통이 사라져 있을 것 같은. 그래서 평온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바람 같은 것.
만약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더라도 연인과의 사이에서 그 상처를 치유받을 수도 있을텐데 그녀의 연인 트레버는 나이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잠시 스쳐가는 어린 여자로 보았다는 거였다. 나이 대가 비슷한 여성과 만나다가 헤어졌을때 그녀에게 잠깐 다가오는 식이었으며 그녀를 사랑해주기 보다는 일방적인 즐거움을 위한 방편으로 삼았다는 거다. 주인공은 부모에게서도 혼자였고, 연인 트레버에게서도 혼자라는 감정을 느꼈다. 삶에 대한 애착이 사라졌을때 선택한 것이 바로 잠, 동면이었다.
제대로 슬퍼하지 않을 경우 그 슬픔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도 만든다. 아버지가 죽어가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고통스러운 기억을 떨치지 못하였다.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잊으려 했던 게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오는 수도 있다. 상처를 치유하고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았더라면 괜찮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어머니의 장례식까지 이어 치르고 제대로 슬퍼할 시간을 갖지 못했던 게 큰 이유라고 봐야했다.
'나'의 동면은 너무 일찍 부모의 죽음을 경험했고, 슬퍼할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감정의 찌꺼기를 터는 과정이었다. 이제야 부모의 죽음을 떠올리고 받아들이는 장례식의 일부와도 같았다고 볼 수 있다. 즉 상실을 경험할 시간도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망각의 시간을 갖는 일처럼 중요한 게 있을까. 동면은 기억의 창고를 비우는 일의 과정이었다. 비로소 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일. 우리에게도 이러한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삶이 너무 힘들다면 이처럼 마음을 비우고 휴식과 이완의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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