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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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눈을 기다리는 계절에 들어섰다. 추위를 많이 타 겨울이 싫다고 하지만 눈이 오는 날은 좋다. 첫눈 오는 날 누군가를 꼭 만나지 않더라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설렘이 찾아온다. 어렸을적엔 눈이 많이 내렸었다. 소복소복 내리는 눈이 좋아 강아지처럼 뛰어다니곤 했다. 내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 게 좋았다. 지금도 눈이 내리는 건 좋다. 걷기에도, 바라보기에도 좋은. 그럼에도 가난한 사람에게는 뼛속까지 들어오는 바람을 피해야 하고, 겨울이 두렵게 여겨질 수도 있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정말 모든 게 괜찮아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세상 모든 게 안온하고 안전하게 여겨졌다. (중략)

춥고 흐린 날, 그게 창밖의 날씨든 내가 처한 인생이든 마음을 낮추면 세상 모든 만물은, 그 안에 깃든 마음은 다 괜찮아질 수 있다. 나는 우선 그것만으로도 고맙다. (60~61페이지) 

 

누군가 내게 건네는 듯한 말 한 마디. 다른 무엇도 아닌 위로의 한마디를 듣고 싶을때, 내 마음의 소리에서 나온 말들. 이런 것들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다시 마음을 추스릴 수 있다. 힘들었던 일들도, 고통스러웠던 일들도 다 괜찮아질 듯한 느낌을 받는다. 스스로에게 하는 위로가 다른 사람까지 전염시킬 수 있다. 그저 제목이 좋아서, 그저 표지가 좋아 읽게 된 산문이 내 마음에까지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속삭이는 것 같았다.

 

 

 

한지혜 작가를 잘 알지 못했다. 소설 한 편 제대로 읽지 않았었다. 그의 산문을 읽는데 어쩐지 나와 같은 삶을 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개천에서 살았다는 문장에서부터, 가난하고 고단한 삶들을 그대로 드러냈다. 한 겨울에 쌀독에 쌀이 떨어졌던 일, 온 가족이 모여 집이 아닌 방에 모여 살았던 일화들을 말했다. 우리 또한 그렇게 살았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아버지의 가계부를 말한 거다. 하루에 들어간 얼마의 생활비, 간결하게 적어놓은 가계부에서 아버지가 하고 싶었던 일, 못했던 일들을 생각하며 그리움을 말한 내용이었다. 때로는 숨기고 싶었을 일들을 이렇게 드러낸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자신의 많은 것을 드러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글쓰기가 되는 건가. 갑자기 쓰러졌던 아버지를 2 년 동안 집에서 병간호를 하며 느꼈던 감정들을 덤덤하게 말했다. 

 

무엇보다 나를 울컥하게 만든 것은 임신으로 입덧이 심해 다 게워내다가 먹고 싶은 음식을 말했던 부분이었다. 뻥튀기를 먹고, 지금은 먹을 수 없는 칼국수를 먹고 싶었던 그 마음을. 칼국수는 아버지가 해주신 것으로 작가와 아버지만 둘이서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었다. 입덧은 과거에 누군가와 함께 먹었던 음식인 것 같다. 추억의 음식이라고 해도 좋겠다. 임신 중 모든 걸 게워내다가 한가지 먹었던 게 시원한 물냉면이었었다. 누군가와 특별히 연관된 기억이 없는데, 물냉면이 간절했었다. 작가 또한 아버지가 해주시던 칼국수를 먹고 싶었던 것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돌아가신, 엄마의 음식이 간절해질 때가 있다. 아마 그것 때문에 나도 모르게 한참을 눈물을 흘렸었던 것 같다. 작가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했던 것 처럼 나 또한 엄마가 많이 보고싶어서였다.

 

 

 

가족은 지겹고 무겁지만, 그 하중으로 나를 지그시 눌러주는 어떤 안온함도 있는 것이다. 가족이기 때문에 견딜 수 없는 많은 일들이 가족이기 때문에 견뎌지기도 하는 것이다. (189페이지)

 

가족이 무조건 좋지만은 않다. 때로는 가족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던 적도 있지만, 또 가족때문에 살아지기도 한다. 타인들에게 하지 못하는 말들을 가족이기에 할 수 있는 것처럼. 견딜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 또한 가족의 힘이다.

 

가족에 관한 이야기와 세상의 부조리함, 또는 가지지 못한 자들의 이야기를 말했다. 바깥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게 아닌 안에서 느껴지는 마음들을 담았다. 직접 경험한 것과 상상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 경험에서 우러나는 것은 감정의 깊이가 다르다. 삶의 애환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경험의 산물 아니겠는가.

 

날씨가 추워져 곧 눈이 내릴 것 같다. 가만가만히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마음의 위로를 얻고자 한다. 눈 내리는 소리가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하며 속삭이는 소리처럼 들릴지 귀기울여 봐야겠다. 위로의 문장들이 가득해 나도 몰래 가슴을 쓸어 안았다. 우리는 이처럼 아름다운 문장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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