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서 일명 셀럽이라 부르는 인터넷 스타인 임리아가 죽었다. 착하고 예쁜 봉사녀인 리아가 죽을리 없다. 그녀의 가족들과 친구들은 개명 전 이름 경아라고 부른다.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고 뛰쳐나간 수아는 동생의 죽음을 보았다. '경아 자살한 거 아닙니다'라는 문자를 받은 수아는 경찰에게 돌려주기 전에 경아의 휴대폰을 백업 받았다. 그리고 나름대로 경아의 죽음을 조사한다. 마지막까지 누구와 함께 있었으며 누가 죽였는지 궁금하다.

 

한 살 터울의 동생이라고 해도 동생이 만나는 사람을 다 알지는 못한다. 어떻게 생활해 왔는지 피상적인 것만 알 뿐이다. 공부 잘 한 수아, 예쁘고 착한 경아. 자매에게 주어진 이름이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며 봉사활동을 한 경아와 어떠한 일로 교회와는 담 쌓고 동생을 질투하기도 하며 경쟁하는 언니 수아의 어릴적 일들을 떠올린다.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면서 마리아와 마르타 자매의 집에 방문했던 예수의 말을 떠올린다.

 

언니인 마르타가 예수와 다른 손님들을 대접할 음식을 준비할 동안 동생인 마리아는 예수 앞에 앉아 예수의 가르침을 듣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마르타가 마리아에게 자기 일을 도와달라고 하자 예수가 마리아를 거들어 말한 부분이었다. 여기에서 수아는 경아를 마리아로, 자신을 마르타로 여긴다. 마르타가 되어 동생의 진짜 삶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빈소의 장면을 찍은 사진과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누구인가, 경아가 자살한 게 아니라면서 그녀의 곁을 맴돌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누군가에 의해 죽었다면 죽은 사람은 누구인가. 경아의 휴대폰의 사진과 통화 목록 그리고 SNS 상의 활동을 보며 경아가 알고 있는 사람들을 압축한다.

 

자매라는 관계는 늘 경쟁 상대에 있는 관계다. 자매 뿐만 아니라 형제 또한 그럴 것이다. 부모님에 의해, 타인들에게 비교대상이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말하는 사람은 별뜻 없이 했을 테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문득 어릴적 기억이 하나 떠오른다. 바로 아랫동생이 예뻤다. 사람들이 여동생을 보면 다들 '예쁘다'라고 했었고 나한테는 언니냐며, '귀엽다'라고만 했었다. 그게 싫었던 것 같다. 차라리 수아처럼 공부라도 잘했다면, 내가 느꼈던 그런 감정은 느끼지 않지 않았을까.

 

 

 

마치 추리소설처럼 여겨졌다. 자살이라 여겼던 경아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었고,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인물을 찾아 나서는 일들이 그랬다. 만약 그녀가 죽으면 자신의 SNS 계정을 정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익명의 남자 또한 의심스러웠다. 익명은 도대체 누구인걸까. 어떻게 안 사이일까. 경아가 죽게 된다는 걸 어떻게 알고 근처에 있었던가. 추리소설은 아니기에 수아는 쉽게 그 인물들을 찾아 나선다. 또한 어떠한 행동까지 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자신이 동생 경아를 아주 많이 사랑했음을.

 

다른 한편으로 수아는 경아를 죽인 남자를 꼭 직접 찾아야 했을까.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면 안되었을까. 책을 읽는내내 여러 생각들이 부유했다. 결말은 내가 예상했던 내용이 아니었다. 이게 이렇게 쉽게 해결될 일 이었나. 현실처럼 여겨지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소설이기에 가능했던 결말이었다.

 

작가는 마리아와 마르타의 이야기를 수아와 경아의 이야기로 빗대어 말하면서 예수가 말하고자 했던 깊은 뜻을 전한다. 예수가 마르타를 나무랐던 건 다른 사람들 즉 제자들을 의식해서 말했음을 나타냈다. 다른 남자 제자들처럼 예수의 발치에 앉아 가르침을 듣고 있었던 마리아를 가만두라는 뜻으로 말이다. 마리아와 마르타를 차별하지 않았던 예수를 말했다. 가만히 생각해본다. 우리는 어떠한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가. 관계와 비교의 대상으로써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10-10 1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0 1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