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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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는데 어쩐지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알고 있는 인물인데 작가를 어디서 봤더라. 한참을 생각해봤다. 프로필을 보고는 내가 팔로우하고 있는 이웃임을 알게 되었다. 미술 관련 자료를 찾다가 작가의 블로그에서 발견했었다. 이웃 신청하고 글이 올라올때면 조용히 지켜보았던 독자였다. 미술관련 글을 쓰는 기자 분들 중 몇 분을 팔로우하고 있다. 마음속에 자리한 미술에 대한 갈망을 타인들에게서 푸는 것처럼.

 

제대로 글을 읽은 기억이 없고 그림만 보았었기에 작가의 글을 잘 알지 못했다. 늦게 꽃핀 대가들을 말하는 글에서부터 작가의 열망이 드러났다. 문학과 예술부분의 많은 작가들이 늦은 나이에 데뷔하여 꽃을 피웠다. 마흔 살이 되어 등단한 박완서 작가나 피에르 르메트르 작가도 꽤 늦은 나이에 데뷔하여 현재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글을 말하며 그 기조에 미술이 있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미술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작가가 언급한 그림들에서 익숙함을 발견했고 반가움이 들었다.

순전히 샐리 호킨스 때문에 본 영화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 였다. 영화를 보고 난 뒤 함께 본 이와 많은 이야기를 했었는데, 작가가 말한 것과는 좀 차이가 있었다. 괴생명체를 사랑하게 된 일라이자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었던 것 같다. 어렴풋이 느끼긴 했지만, 그녀의 외로움이 괴생명체를 사랑하게 되었음을 말이다. 제임스 진이 그린 <셰이프 오브 워터>가 익숙한 아름다움을 준 그림이라 여겼었지만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참고했다는 건 새로운 발견이었다. 두 그림을 마주하고 보니 전체적인 구도가 닮았다는 게 느껴졌다.

 

 

 

봄이면 벚꽃이 만발한다. 벚꽃잎들이 휘날릴때면 그저 마음이 설렌다. 이처럼 벚꽃의 아름다움과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지자체는 벚꽃축제를 한다. 벚꽃하면 일본이다. 일제 강점기기 생각나서인지 사람들은 벚꽃의 원산지가 제주임을 밝혔었다. 나 또한 그런 말을 하곤 했었다. 일본에는 벚꽃을 말하는 하이쿠가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는 걸 보면 벚꽃은 일본인들이 사랑한 꽃임을 알 수 있다. 작가가 말했다시피 우리나라엔 주로 매화나 진달래꽃을 노래했다고 한다. 혜원의 그림에서도 나타난 바와 같이 말이다.

 

TV의 코미디 채널에서 흑인 분장을 하고 나왔을 때 웃기려고 참 고생하는구나, 이렇게만 생각했지 인종차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국내에서 바라보는 것과 외국의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불편하게 바라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 또한 아시아계 인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면 매우 기분나빠하지 않는가. 세계화와 세계시민의식을 일깨우는 말에 뜨끔했다. 아니라고 하지만 은연중에 그런 마음을 내비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되었다.  

 

미술관련 서적에서도 읽은 바 있지만 영국박물관에는 한국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한국관과 일본관, 중국관의 차이점을 말하는데 아무래도 국가의 차이점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중국관과 일본관과는 다르게 심플하게 몇 작품만 있는 있어 빈약한 유물 전시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백자 달항아리는 많은 예술인들이 아름답다 말하는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그 고유한 선을 바라보고 있으면 커다란 달이 떠 있는 듯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이 점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 하정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의 에세이를 먼저 읽었다. 하정우도 에세이에서 자신의 먹방 이야기를 했었는데 문소영 작가 또한 먹방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하정우를 언급했다. 영화 <황해>에서의 하정우의 먹는 장면을 담은 사진과 함께 말이다. 하정우는 먹는 장면을 찍을 때 식은 음식 말고 따뜻한 음식을 주라고 한다고 한다. 그리고 맛있게 먹는다고 한다. 먹방에 대한 이야기를 『제인 에어』 속의 문장을 말하며 고전문학 작품 속에서도 먹는 장면이 꽤 많았다는 걸 말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에 대하여 말하는 글이다. 삶의 통찰을 다루는 글들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는 시였다. 나에게 두 갈래 길이 있을 때 내가 갔던 길과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과 신비로움을 말했다. 인생이란 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늘 선택의 기로에 서 있게 된다. 그 길에서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는 자신에게 달렸다. 훗날 과거를 떠올렸을 때,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질문 받았을 때, 어떠한 시기로 가겠다고 답을 하곤 했지만 지금 드는 생각은 역시나 그 시기로 가도 똑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다. 그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뿐이다.

 

예술에 대한 저자의 특별한 감각과 함께 폭력과 문화 또는 유물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담았다. 문학과 일상에서 바라보는 수많은 예술적 감각을 기르는 방법들을 말했다. 느리게 혹은 게으르게 가도 삶에 최선을 다한다면 후회할 일이 덜하지 않을까.

우리의 인생도 이런 망설임과 선택의 연속일 것이다. 그리고 어느 길을 택하든, 가지 않은 길은 그 미지로 인한 신비와 아쉬움을 황홀한 안개처럼 두르고 저 멀리에 있을 것이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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