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구라치 준 지음, 김윤수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제목부터 우리를 사로잡는다.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이라니. 어떻게 두부 모서리에 맞아 죽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때는 1944년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인 때, 한 연구소에서 이등병이 반듯이 누운 시체로 발견된다. 시체를 발견한 이즈카 이등병과 연구소의 박사 그밖의 대위와 특무첩보기관에서 나온 도네 소좌는 누가 죽였는지, 어떻게 죽였는지 미스테리다. 죽은 이등병의 후두부를 강타한 건 뾰족한 모서리로 짐작되었다. 실험실의 주변에 무기라 할 수 있는 건 저녁 간식으로 나온 두부 밖에 없는데 말이다. 더군다나 시체 주변에 떨어진 두부 조각과 둥그런 모양의 냄비 밖에 없었다.

 

모든 살인 사건에서 해결되지 않을 때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다른 방법, 다른 시선이 필요한 법이다. 밤새도록 자전거 페달을 밟았던 이등병, 어느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구조인데 누가 그를 살해했던 것일까. 정말 스파이가 존재하는 것일까. 의문이다.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아무래도 태평양 전쟁시의 상황이어서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더 눈에 들어왔다. 자살공격단으로 인간 어뢰를 사용했고, 페달식 에너지 추진기 즉 젊은 병사를 시켜 자전거처럼 페달을 밟게 하는 장치를 개발했던 연구소의 박사는 이 장치에 병사를 가두고 폭약과 같이 밀봉해 미국 본토에 떨어지게 한다고 했다는 거다.

 

인간의 목숨을 하찮게 여겼던 그들의 잔인한 행보에 다시한번 놀랬던 작품이다. 더불어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이 소설을 썼는지 궁금하게 여겼던 것도 사실이다. 그저 미스테리 소설로만 썼던 건지 태평양 전쟁 당시 행해졌던 잔혹한 실험을 고발하는 의도로 썼는지 말이다.

 

 

 

 

 

총 여섯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단편임에도 하나의 작품을 마칠 때마다 꽤 긴장하며 읽었고 결말이 궁금해 쉽게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추리소설을 읽을 때 장편을 선호함에도 단편이 가진 재미에 빠질 수 있었다.

 

그저 무작정 사람을 죽여보고 싶다고 외치던 한 젊은 남자가 신문에서 살인사건을 살펴보다가 발견한 게 ABC 살인 사건이라는 점이었다. A 지역에서 A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과 B지역에서 B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죽었던 거였다. 현재 주식과 도박 등으로 돈을 날린 남자가 D지역의 D를 죽이기 위해 C지역의 C를 연습삼아 죽였다. 그런데 벌써 누군가 D지역의 D를 죽였다는 게 문제가 된다. 「ABC 살인 사건」의 결과는 아찔할 뿐이다.

 

반듯하게 누워 있는 여자의 입에 수직으로 꽂힌 대파와 케이크 세 조각이 놓여진 채 발견된 여자의 시체,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한지 알려주는 무시무시한 작품이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이었다. 단편 속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은  「사내 편애」라는 작품이었다.

 

인간과 컴퓨터 운영체제의 사랑을 말했던  「그녀 Her」 라는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기업에서 직원들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마더컴이라 불렸다. 인사고과를 장악한 프로그램의 인간미를 나타내기 위해 일종의 버그를 만들었는데 문제는 마더컴이 료이치료를 노골적으로 편애한다는 거다. 부장이 그에게 모닝 커피를 배달하기도 하고, 어떤 상사는 마더컴에게 말 좀 잘해주라는 말까지 하게 되었다. 결말은 놀랍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이라서 헛웃음을 쳤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구라치 준이라는 작가의 매력에 빠진 것 같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자국의 과거사를 미스테리 형식의 글로 나타낸 것도, 컴퓨터 프로그램의 노골적 편애를 받았던 SF 형식의 내용도 좋았다.  「ABC 살인 사건」의 경우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오마주 했다고 한다. 그 외에 밀실 미스테리로 보였던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 과 평소와 다른 바깥의 상황에 귀를 기울였던  「밤을 보는 고양이」 또한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이었다.

 

몇 편의 소설을 펴낸 것 같아 작가의 이름이 기억에 없어 내 블로그를 검색했더니 역시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꽤 매력적인 작가인데 말이다.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에서 어수룩하게 보였지만 사건를 명쾌하게 해결했던 네코마루 선배의 시리즈가 따로 있는 것 같아 반갑다. 매력적인 작가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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