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 - 앤드루 숀 그리어 장편소설
앤드루 숀 그리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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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이십 대에서 삼십 대가 될때는 그냥 받아들였으나 삼십 대에서 사십 대가 되었을 때는 견디기 힘들었다. 그리고 사십 대 후반 오십을 바라볼 때의 마음이란 이루말할 수 없었다. 두려움이 커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오십 대에 이르렀을 때 이 나이를 즐기기로 했다. 가장 좋은 나이가 아닌가. 실제로 가장 즐거운 나이 이기도 하다. 삶을 즐기며 살기로 작정하니 모든 것이 편해졌다.

 

나이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세계를 여행하는 게이 작가 아서 레스의 여정을 함께했다. 나이를 든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간다는 것, 사랑했던 사람과의 기억들을 떠올리는 여정이었다. 여행에 있어 가장 좋은 점은 혼자라는 것에서 느껴지는 과거의 기억들이다.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오늘을 살 수 있게 되고,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

 

곧 쉰 살을 맞이하는 아서 레스는 천재 작가라 불릴만한 작가가 아니다. 오히려 천재 작가의 곁에 있었던 사람이랄까. 천재 작가를 떠올리면 함께 떠올릴만한 누군가에게 내세울 만한 작품이 많이 없다는 거다. 9년간 함께 지냈던 프레디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며 청첩장을 보내오자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어 핑계를 대며 오랫동안 거절했던 여행을 하기로 했다. 세계 문학 기행이라고 할 수 있는 뉴욕에서 어느 작가의 인터뷰라던가, 자신의 작품이 문학상 후보에 올라 토리노를 거쳐 베를린에서의 강의, 모로코 횡단 여행, 그리고 인도와 일본 교토를 거쳐 다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소설 속 아서 레스는 쉰 살의 게이 작가다. 늘 연상의 남자를 좋아했던 아서가 천재 시인이라 불렸던 로버트와 지냈던 이야기들, 그랬던 그가 로버트의 나이가 되자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프레드 펠류와의 몇 년을 함께 지냈다. 프레드와 처음 만났던 때, 다시 만났던 때, 과거의 어떤 기억들은 종종 흐려지기도 하고, 그 사람의 얼굴을 잊기도 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했던 기억만큼은 오래도록 간직하기 마련이다.

 

아서의 쉰 살 생일은 모로코 횡단 여행시 맞이할 터였다. 젊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나이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쉰 살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을 그였다. 나이에 대한 두려움, 노인들에 대한 두려움, 외로운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소설의 화자가 누굴까. 1인칭 시점으로 아서 레스를 바라보는 사람.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 아서 레스를 말하는 사람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아서 레스를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그 시선에 아서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거의 쉰 살이 되다니 이상하지 않아요? 이제야 겨우 젋게 사는 방법을 안 것 같은 기분인데. (187페이지)

 

 

사람을 거울로 쓰겠다는 이 끝없는 욕구, 그 거울에 비친 아서 레스를 봐야겠다는 욕구는 왜 있는 걸까? 그는 물론 슬퍼하고 있다 - 연인을, 커리어를, 소설을 젊음을 잃은 것에 대해. 그럼 그만 거울을 덮고 가슴팍의 천을 찢어발기고 그냥 애도하도록 나 자신을 내버려둘 수는 없는 걸까? (225페이지)

 

 

누구도 나이를 피해갈 수는 없다. 막상 쉰 살이 되면 아무것도 아닌 것임에도 맞이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감정들이다. 연상의 남자 친구와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연하의 남자 친구와 지낼 때 비로소 느끼게 된다. 스물 몇 살 시절 마흔을 넘긴 연인이 말했던 것들을 말하고 있는 걸 발견한다는 이야기다.

 

 

익숙하지 못했던 패턴의 이야기이며, 우리가 적응해야 할 패턴의 소설이다. 동성애를 다룬 소설을 읽으면서도 불편하지 않았던 건 여러 문학 작품에서 혹은 어떤 사람들에 의해 많이 익숙해졌다는 뜻일테다. 연인을 잃은 한 남자의 사랑의 기억들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며, 쉰 살을 맞이하며 느끼는 삶의 여러 감정들, 이를테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말한 소설이었다. 애써 감추려 해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늘 똬리를 틀고 있는 늙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많은 부분 공감할 수 있었다.

사람을 거울로 쓰겠다는 이 끝없는 욕구, 그 거울에 비친 아서 레스를 봐야겠다는 욕구는 왜 있는 걸까? 그는 물론 슬퍼하고 있다 - 연인을, 커리어를, 소설을 젊음을 잃은 것에 대해. 그럼 그만 거울을 덮고 가슴팍의 천을 찢어발기고 그냥 애도하도록 나 자신을 내버려둘 수는 없는 걸까? (22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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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2 14: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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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2 16: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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