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의 꽃
최수철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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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모든 것이 독인 동시에 약이다. 모든 동물과 식물에서 독이 있다. 적당량을 쓰면 약이 되지만 그 정도를 넘어섰을 때 독이 되는 경우가 허다 하다. 알고 쓰면 약이 되고 모르고 쓰면 독이 되는 이치와 맞닿아 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소설을 만났다. 내게는 처음인 최수철 작가의 소설이었다. 일단 제목부터 『독의 꽃』 이다. 독에 대한 모든 것이라고 해야 하나. 독으로 피어난 꽃이라고 해야 하나. 소설을 읽는 동안 내가 섭취하는 모든 음식과 음료를 맞게 섭취하고 있는지, 바르고 있는 모든 성분이 조화로운지 의심이 들게 하며 잠시라도 긴장을 풀 수 없었던 소설이었다.

 

의식불명 상태에서 종합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생과 사를 오가는 주인공으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여행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와 탈진 상태에서 잠을 잤고 냉장고에 있던 곰팡이가 피어 있던 음식을 먹은 후 생긴 결과였다. 육류나 어패류에서 발생한다는 보툴리누스 균과 프토마인 균 때문이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혼몽한 상태에서 깨어나보니 삼인실의 병실에서 창가에 누워있는 한 남자가 내뱉는 말이 들렸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들리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그가 하는 말이 들렸다.

 

 

'내 가슴에 독이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나의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칠지 모른다고 짐짓 독기를 담아 위협한다. 벗이 한숨을 쉬며 대꾸한다. 독 안 차고 살아도 머지않아 너와 나마저 가버리면, 억만 세대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자라 모래알이 될 터인데, 허무하고 허무한데, 독은 차서 무엇 하느냐?' (13페이지)

 

 

 

 

소설은 이렇게 탄생하는 것 같다. 작가가 말벌에 쏘인 후 아나필락시스 쇼크를 떠올렸다고 한다. 한번 말벌에 쏘이면 별침의 독에 대한 항체가 만들어지는데 다시 벌에 쏘이면 몸속에 있던 항체가 즉각적으로 반영하여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난다고 한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응급실로 옮겨 졌고 이대로 죽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당직 의사가 곧바로 병원으로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물론 저자는 10여 년 전부터 독에 대한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지만 이 사건이 촉발된 게 아닌가 싶다.

 

태어날 때 부터 몸에 독을 지니고 태어나 독을 다스리던 한 남자. 독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들은 충분히 독에 노출되어 있다. 독을 알기에 적당량을 사용하면 약이 되는 것과 정도를 달리했을 때 일어나는 일들 또한 꿰고 있지만 욕망에 눈이 먼 순간 그 적당량을 지키기란 어려운 법이다. 독을 몸에 지니고 태어났지만 그를 기르는 어머니와 아버지, 혹은 삼촌마저 독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독에 관련된 이야기 답게 주인공 조몽구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독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독을 너무 많이 사용해 중독 되었거나 독을 이용해 다른 사람들을 해칠 줄도 알았다. 사랑하는 아내를 저버리기 위해 옻이 들어간 음식을 먹어 아내의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싶어했던 아버지를 보며 결국 독으로 죽어간 모습 또한 독을 사용하는 자들의 결말을 보는 듯 했다.  

 

 

 

독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독을 이용할 줄 안다고 여겼으나 결국 광기와 폭력 혹은 위선에 사로잡혀 있었다. 치명적인 독의 광기에 빠져 있는 사람은 조몽구와 그의 아버지, 삼촌인 조수호였다. 독을 품고 태어난 조몽구는 늘 두통을 달고 살았다. 그런 몽구를 지키려는 어머니가 죽자 삼촌인 조수호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되며 보다 더 깊은 독의 세계를 탐험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소설은 프롤로그를 빼고 총 세 장의 제목으로 되어 있는데, 조몽구의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 그리고 성년 시절로 나뉘어 진행된다. 조몽구가 병실에서 중얼거렸던 말들과 함께 객관적인 서술이 이어져 독을 가지고 태어난 남자의 삶을 전반적으로 훑어 볼 수 있다.

 

독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은 그 양을 달리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해할 수도 있다. 책 속에서도 나타났지만 '비밀스러운 힘'이라 일컬었을 정도다. 그 사람의 심신을 달래줄 수도, 독에 노출시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이라는 책 한 장 한 장에는 독이 묻어 있어. 네가 손가락에 침을 발라 책장을 모두 넘기고 나면, 그로 인해 중독되고 탈진하여 죽음에 이르게 돼. 그러나 너는 그때 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지.

그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

모든 살이 있는 것은 독의 꽃이야.  (520페이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떠올리는 문장이다. 이 세상의 모든 독을 섭렵해 독을 다스리는 자들과 독에 맞서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우리 또한 그렇지 않은 가. 수많은 독을 앞에 두고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도 달라진다. 우리 삶의 이야기는 계속 될 것이며 독을 사용할지 약을 사용할지 우리 선택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이 세상의 모든 독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 알고 있는 자들에 대한 부러움이 앞섰다면 조금쯤은 이해할 수 있을까.

 

 

삶이라는 책 한 장 한 장에는 독이 묻어 있어. 네가 손가락에 침을 발라 책장을 모두 넘기고 나면, 그로 인해 중독되고 탈진하여 죽음에 이르게 돼. 그러나 너는 그때 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지.

그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

모든 살이 있는 것은 독의 꽃이야. (520페이지)

‘내 가슴에 독이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나의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칠지 모른다고 짐짓 독기를 담아 위협한다. 벗이 한숨을 쉬며 대꾸한다. 독 안 차고 살아도 머지않아 너와 나마저 가버리면, 억만 세대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자라 모래알이 될 터인데, 허무하고 허무한데, 독은 차서 무엇 하느냐?‘ (1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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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2 13: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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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2 17: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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