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민파파와 바다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7
토베 얀손 지음, 허서윤.최정근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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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베 얀손의 무민 이야기를 읽은 건 작년 한여름에 읽었던  『무민의 겨울』이었다. 폭염 경보가 내리는 와중에 차가운 북풍이 부는 한겨울의 이야기를 읽으니 조금쯤은 시원한 느낌이었다. 겨울잠에 빠졌으나 갑자기 눈을 뜨게 된 무민이 골짜기에서의 모험을 말하는 소설이었다. 그동안 캐릭터로만 보았던 무민의 이야기를 제대로 읽었던 귀한 경험이었다.

 

이번에 읽은 작품은 무민 골짜기가 지긋지긋해진 무민파파가 가족을 이끌고 새로운 곳 등대가 있는 섬으로 이사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정든 곳을 떠난 가족들은 새로운 장소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정작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등대의 불을 밝히는 등대지기는 어딘가로 사라졌고, 섬은 새까만 어둠에 싸여있다. 등대가 있는 섬에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서만 있는 말없는 어부가 있을 뿐이었다.

 

등대의 가장 위에 자리한 곳에 짐을 부려놓고 등대지기의 모자를 쓰고 등대의 불을 밝히려는 무민파파는 자신만의 경험을 글로 쓰려하고, 정든 골짜기를 떠난 무민마마는 외로움에 무민 골짜기를 그림에 담는다. 무민 또한 덤불숲에서 혼자 만의 시간을 가지려 하고 무민과 함께 온 미이는 자기가 원할 때에만 불쑥불쑥 나타난다. 

 

 

 

세 명 뿐인 가족이지만 모두들 각자의 장소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 하고 있다. 무민은 덤불숲에서 밤이면 등불을 밝혀 그로크를 기다리고, 달빛이 비출때 춤을 추던 해마들을 기다린다. 그 이야기를 무민마마에게도 무민파파에게도 하지 않고 자신만의 비밀로 두었다.

 

여기에서 무민을 보면 부모에게서 스스로의 삶을 찾는 시기로 보였다. 자신만의 비밀을 만들고 좋아하는 친구를 기다리고 자신만의 장소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것. 스스로 오두막을 짓겠다는 것도 낯선 장소에서 성장했다는 이야기다. 가족을 위해 모든 짐을 지려는 아빠, 그런 아빠를 이해되지 않아 아름다웠던 추억을 그림으로 남기려는 엄마. 각자 자기만의 생활을 하며 점점 서로를 이해하고 낯선 장소에 적응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었다.

 

 

무민은 해마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마음속에 뭔가 변화가 일어난 무민은 혼자 있길 좋아하고 새로운 생각에 잠기길 좋아하는 전혀 다른 트롤이 되었다. 요즘 무민은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노는 편이 훨씬 흥미진진했다. 자기 자신과 해마들을 상상하거나 그로크가 몰고 온 어둠 덕분에 오히려 더 아름다워진 달빛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160페이지)

 

토베 얀손은 책의 첫머리에 '아버지께'라고 썼다. 낯선 장소에서의 무민의 성장기로도 읽혔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을 나타낸 글로도 읽혔다. 새로운 곳을 찾아 모든 물건들을 가지고 등대가 있는 섬으로 왔지만 정작 등대지기로서 불빛을 밝히지도 못했던 무민파파에 대한 안쓰러움이 곳곳에 묻어났다.

 

 

자기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이라 여겨 떠났지만 정작 다른 길이었음을 알았을때 느끼는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저마다 생각에 빠져 있는 가족들 틈에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고 싶었던 무민파파의 마음이 조금쯤은 이해되었다. 낯선 곳에 정착해야 했지만 무민파파를 탓하지 않았던 무민마마의 행동도 우리 삶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 않는가.  

 

새로운 터전에서 새로운 생활을 꿈꾸었던 무민네 가족은 폭풍을 만나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 등대의 섬으로 찾아와 적응하며 다시 등대의 불을 밝히는 힘을 발휘했다. 이제 제자리를 찾게 되었으니 등대의 섬에서 무민은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고 행복할 수 있을까. 무민연작소설의 마지막이 『늦가을 무민 골짜기』이니 다시 무민 골짜기를 그리워하는 무민 가족이 상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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