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 해피엔딩
강화길 외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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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의 8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스물아홉 명의 작가들이 모였다. 박완서 작가를 직접적으로 지목한 작가는 드물다. 몇몇은 직접적으로 혹은 약칭을 써서 작가를 추모한다. 소설의 방식은 박완서 작가의 짧은 소설 『나의 아름다운 이웃』과 닮았다. 박완서 작가만의 위트와 삶의 애환이 살아있는 그들이 대부분이었다.

 

작품에 속한 작가들의 면면은 마음에 든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많이 모였기 때문이다. 짧은 소설들은 박완서 작가의 느낌을 보는 듯 했고 다르게는 작가만의 감성을 그대로 드러나 글을 읽는 즐거움이 컸다.

 

모든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말한다는 것이다. 깊이 고민하지 않아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금방 알아낼 수 있는 것 또한 박완서 작가만의 글쓰기와 무척 닮아 있다. 스물아홉 명의 작가가 쓴 이야기는 마치 한 사람의 작가가 쓴 듯 그렇게 우리의 마음에 스며들고 있었다.

 

 

 

지혈제. 이런 독서는 지혈제다. 상처와 고통으로부터 내면을 떼어놓고, 자신을 분리시키기 위한 수작이라는 것을 의식하면서 그녀는 책장을 넘긴다.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개념 한두 개가 천천히 뇌 속에 들어와 눈물을 말리기 시작한다. 두꺼운 책들이 불어오는 감정들. 지식이 아닌 감정들. 마음의 주름이 조금 펴지자 그녀는 인터넷으로 책을 두 권 사고, 내친김에 세일 폭이 큰 티셔츠 한 장도 산다. (50~51페이지, 김성중, 「등신, 안심」중에서)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 했다. 지금은 자주 쓰는 표현이 아니다. 부부간의 이별은 매우 어렵고도 또한 쉽다. 지금은 너무 쉬운게 문제인것도 같다. 부부 싸움후 편의상 남편에게 전화를 걸쳐 휴전을 청하고 그에 응하는 부부. 마음은 정리되지 않았어도 일상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 두 사람에게 남아있는 절망의 두께가 두꺼워질지언정 사는 동안은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

 

이 소설집이 출간되었을 때 가장 반가웠던 작가가 이기호였다. 마치 그의 일상을 보는듯한 소설은 여기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나있다. 삶이 버거운 아빠, 아이가 원하는 몇십 만원짜리 레고를 사주고 싶은 마음과 아내에 호통에 의해 마트로 반품하러 가는 아들과 아빠의 발걸음이 무척 애틋하였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사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과 생활의 힘겨움에 다시 반품을 해야 하는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서 였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장난감을 홀리듯 바라보는 아들의 눈빛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을 오늘의 아빠들을 보는 것만 같았다.

  

 

뚝뚝, 눈물방울이 레고 박스 위로 떨어졌다. 아들은 레고 박스 위에 떨어진 눈물방울을 계속 훔쳐내며, 그러면서도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지만, 그러면서도 또 한편, 어쩐지 이 풍경 자체가 낯익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그 또한 그렇게 울었던 봄밤이 있었다 . (183페이지, 이기호, 「다시 봄」중에서)

 

이기호 작가 뿐일까. 김숨 작가의 글 또한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웃는 모습의 유머스러운 글을 주로 쓰는 김종광 작가의 글 또한 여전한 매력을 내뿜고 있었다. 결혼하기 전의 여자는 세상 그 누구보다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우면서 왜 결혼만 하면 남편들을 애 잡듯 잡을까. 남편들은 또 혼내는 아내한테 주눅들어 있는 모습. 지금의 세태를 다뤄 웃게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씁쓸한 현실임을 자각하게 된다.

 

 

 

전성태 작가의 「이웃」이라는 소설을 읽는데, 소설 속 주인공들이 말하는 것에서 저 마음 깊숙이 숨겨놓은 우리의 감정을 들킨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캠핑 장비를 챙겨온 아이를 둔 부부. 그들은 정글의 법칙을 찍는 기분이라며 애써 마음을 달랬다. 도착한 곳이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좋은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나무에는 캠핑족들이 그대로 묶어놓고 간 노끈들이 나부껴 기분을 상하게 했다. 그리고 밤늦게 그들의 옆에 캠핑장비를 다 갖춘 아빠와 아이가 오게 되고,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애써 신경쓰지 않는 듯 부러운 마음을 감췄다. 이웃 캠핑족보다 우월한 것을 말하고 싶은 아내가 말한 한마디라곤 이웃에는 엄마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아침이 되자 가위를 들고 소나무에 엮인 노끈들을 제거하는 아빠의 모습에 자신들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왜 우리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며 스스로 상대방보다 우월한게 무언가 굳이 찾아내려 하는 것일까. 부끄러운 감정을 부끄러워 해야하는데 자꾸만 시기 질투하며 상대방을 깎아 내리려 하는 것인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왜 계속 누군가와 비교하려 드는 것일까.

 

소설을 읽는다는 건 그 내용에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을 연다는 것이다. 작가 또한 주변에서 바라보는 일상들 속에서 소설의 소재를 찾지 않겠나. 에세이 형식을 소설을 써도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면 모두들 자신의 이야기라며 작가를 다시 기다리게 된다. 박완서 작가의 글을 보는 듯 푸근한 마음이 절로 드는 글 모음집이었다. 다양한 작가의 글을 만날 수 있다는 건 덤이다. 우리 삶과 맞닿아 있는 글을 읽으며 느끼는 감정은 우리 주변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삶이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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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7 12: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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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7 12: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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