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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5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평점 :
하나의 캐릭터로 대표되는 인물을 바라 볼때면 어느 새 그 인물에 대한 애정이 샘솟는 건 기본이고 마치 실제 인물처럼 여겨지는 게 정설이다. 그 유명한 셜록 홈즈 시리즈도 소설의 배경이 여행상품으로도 나와있지 않은가. 사와자키 시리즈로 대표되는 하라 료의 추리소설은 이처럼 많은 사람이 응원하는 하나의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장편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내가 죽인 소녀』, 『안녕 긴 잠이여』와 소설집 『천사들의 합창』으로 이어지는 사와자키 시리즈의 시즌 1과 더불어 새롭게 태어난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는 사와자키 시리즈의 시즌 2로 다시 시작되었다.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는 꽤 단순한 플롯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 경찰이 아닌 탐정으로서 맡은 업무는 경비 역할 같은 비교적 가벼운 일에서부터 사라진 인물 찾아주기와 살인사건에 연루된 일까지 경중을 달리하여 의뢰인들이 찾아온다. 만약 살인 사건이나 실종된 인물을 찾아주었을 때 그가 책정한 금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준다고 해도 사와자키는 받지 않는다. 자기의 목숨이 위협받았을 때도 자기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그가 책정한 금액 만을 받는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사와자키는 돈에 그다지 연연해하지 않는 인물로 비춰진다. 그리고 하나의 사건을 맡았을 때 꼭 살인사건과 연결되고, 경찰들과는 비교적 가깝게 지내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사와자키 또한 경찰의 도움을 받을 때도 있고, 그가 경찰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의 직업 답게 하나를 받았으면 하나를 준다고 할 수도 있겠다. 다르게 말하면 경찰이 해야 할 일, 탐정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나누지 않고, 궁금한 것들은 살펴보고 조사해봐야 편한 성격이라고 해야 옳겠다.

소설의 출간 시점이 2004년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치지만 사와자키가 수사하고 탐문하는 방식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이다. 물론 2004년의 출간시점에는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그 흔한 휴대폰도 없이 그가 자리를 비웠을때도 여전히 전화 서비스업체에 전화한 내용, 이름들을 듣는다. 한편으로 답답하지만 그 시대가 가지는 상황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총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사냥을 위한 공기총도 관의 허락하에 사용할 수 있다고 알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총기 사용이 흔한 일인가 궁금해지는 참이다. 와타나베 탐정사무소로 찾아온 방문객과 그 방문객을 경찰서로 태워다 주었다가 총격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게 이 소설의 골자다.
폭력단원을 은행앞에서 죽인 남자와 그를 대신해 자수한 남자, 그리고 은행에서 사라진 귀족 출신의 구십 대 노인. 사건의 한복판에 서게 된 사와자키가 이 사건을 수사하게 되는 건 당연했다. 모든 추리소설이 그렇듯 사와자키 또한 일반적인 수사를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즉 경찰이 하는 식의 수사 방식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수사 방식이 아닌 사와자키만의 수사 방식이 돋보인다. 물론 독자를 사로잡는 트릭이겠지만 작가가 원하는 방식대로 따라가다보면 불안하다. 작가가 숨기고자 하는 것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사와자키를 노리는 자는 누구인가. 그에게 매번 이름을 달리하여 찾아온 남자는 누구인가. 사와자키가 차로 사고를 내지 않았더라면 그 젊은 경찰관은 살아 남았을까. 많은 의혹을 품고 읽다보면 어느새 결말에 다가와 있다. 이게 하라 료가 노렸던 점이기도 할 것이다. 누가 살인범일까 독자들을 의심케 하다가 어느 순간 독자들이 놓쳤던 것들을 발견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소설을 한참 읽다가 하라 료의 트릭이 궁금해 다시 첫 부분으로 돌아가 읽었더니 거기에 해답이 있었다.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독자들에게도 감이라는 게 있다. 누군가가 의심스럽다고 여겨진 인물이 꼭 결말 부분에 가서는 드러나기도 하다는 점이다. 떠돌았던 와타나베가 죽고 탐정으로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와자키의 활약이 빛났던 작품이었다. 더불어 전편에서 자주 언급되었던 니시고리의 등장도 그 반가움을 더했다.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