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저널리스트들 - 국경 없는 기자회의 도전과 모험
로베르 메나르 지음, 성욱제 옮김 / 바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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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난독증이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기란 참 힘들었다. 아니, 내 자신이 책 읽을 때의 자세가 애지간히 산만했다고 치더라도, 문맥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뭐 오역을 탓할 생각은 없는데(몇 군데에서 오탈자가 발견되는 데, 그건 그냥 참을 만 했다.). 저자의 주장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그에 대한 연대기 같은 느낌은 있었으나 내용 자체에 대해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다 읽고나서 생각하니 이 책은 뭔가를 주장한다는 느낌이 별로 없다. 그냥 자신과 '국경없는 기자회'가 살아온 궤적에 대한 회고 정도가 되겠다. 혹여 이 책을 읽고나서 '국경없는 기자회'의 핵심 입장에 대한 구조적인 논평을 하려한다면 그건 굉장히 잘못된 생각이다. 이 책은 별로 짜임새 있게 쓰여진 책이 아니다.

젊은 시절, 우리나라의 386처럼, 프랑스에는 68세대가 좌파 이념의 세례를 받았고, 역시 저자인 로베르 메나르도 그런 이념의 세례를 받아 트로츠키 사상과 상황주의(자주 언급되는 프랑스 68혁명 당시의 이념으로 일상성에서 벗어난 '국면'-즉 상황을 통한 문화적 운동이 주가 된다고 볼 수 있겠다)에 탐닉했다가 저널리스트로서 명성을 날리다가, 처음에는 "제3세계의 혜택 받지 못한 사람들의 현실을 세상에 전함으로써 여론의 주의를 환기시키"(p.63)위해 '국경없는 기자회'를 창설했고, 전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언론의 자유를 말하면서 활동했다.

초창기의 국경없는 기자회는 언론의 자율성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외부에서 주어지는 언론에 대한 억압 두 가지 측면을 함께 공격하면서 싸워왔으나, 점차 언론의 자율성에 대한 내부 비판이라는 모토는 사라지게 되고,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나라에 대한 선전전이 주된 그들의 활동이 된다.

알제리, 르완다, 이라크, 세르비아 사태 등등에서 지역Local 단위의 언론인들에 대한 탄압에 대한 선전전을 하면서 환기를 하고, 그것을 통해서 '언론의 자유'에 대해서 언급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건 '기자의 자유'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으로 들릴 뿐, 크게 '언론의 자유'에 수렴되는 지는 도대체 장담을 못하겠다.

그리고 그의 이념과 저널리스트의 삶이 어떻게 어우러졌었고, 어떻게 이념을 버렸는 지에 대해서도 명확하지 않다. 그냥 '실용주의자'가 된 것일까?

그들도 인정하지만 스타 저널리즘(스타 저널리스트의 맹활약을 통한 홍보와 그를 통한 자금 확보Funding) 덕택에 국경없는 기자회가 성장했지만, 언론 자체가 클 수 없는 토양에서의 자생 미디어의 생성 조건 따위에 대한 언급(위에서 이야기했던 내부적 요소들)을 생략한 한에서는, 외부의 억압 정권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기자들을 구출을 할 수 있을 지언정, 새로운 대안 언론의 '창출'을 돕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게 노벨 평화상을 준 것도 내가 볼 때는 그들이 가장 안전한 NGO 이기 때문이리라는 생각도 해 본다. 그들은 어떤 나라에도 실제적인 위협을 주지 않고, 오히려 그 국가들의 '품위'를 장식하는 효과를 제공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프랑스적 '허영'이 절정에 이르면 이렇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테러리즘'으로 상징되는 중심없는 게릴라들의 성장으로 인해서 자신들의 공식적인 루트인 언론-국가 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현 상황이 위기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위기는 언론-여론의 관계에 대해서 자신들이 눈을 감는 데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옛적, 운동권의 팸플릿이 돌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국가와 대등한 위치에서 교섭을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주장에 대해서 민중들이 울었기 때문이었다는 뻔한 대답을 다시금 해야하는 시점이 되어버렸다.

그는 프랑스 대사들의 다음과 같은 말을 비판하는 데, 내가 볼 때는 이 말이야 말로 중요한 외부인의 제3세계를 볼 때의 유의점 같다.

   
  메나르 씨, 아프리카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완전히 다른 세상이지요. 내가 아프리카를 다닌 지가 벌써 몇 년이 지났습니다. 다른 사람들, 반대자들도 마찬가지에요. 이 정도까지 오는 데 200년이나 걸렸어요. 저들에게 시간을 좀더 줘야 합니다(p.192).  
   

이런 태도조차 갖추지 않고, 단순히 언론 자유의 침해라고 본인들이 규정짓고 모험을 하듯이 침투해서 선전전만을 펼치는 그들 기자들에 대해서 뭐라고 생각해야 할까? 기자들이야말로 그들의 사회에 더욱더 내밀하게 침투해서 그들 삶의 '결'을 더 엄밀하게 표현해야하는 것 아닌가? 이런 식이면 자신들의 가치관의 주입밖에 되지 않는다. 아무리 그들의 입장이라는 것이 순수하더라도 말이다.

진실어리진 못해도, 세상을 좀 환히 바라보고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메시지를 만들어 나아가는 저널리스트가 되겠다고 생각한 지 좀 되었는데, 이 책을 읽고 느낀 바라는 것은 '기자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같은 것으로 환원하는 순간에 무감각해져버리는 언론인의 둔함이다. 그 둔함을 피해가기 위해서 12000원의 돈을 지불했다는 생각에 본전 생각이 난다.

그는 여전히 볼테르의 주장(난 당신의 주장에 반대한다. 하지만 난 당신이 당신의 주장 때문에 억압당하는 것에 반대한다.)에 근거한 애매한 똘레랑스를 근거로 자신들의 활동-기자질-을 정당화하고 또 그럴 계획일 테지만, 난 좀 다른 길을 찾아봐야 한다고 바라보고 있다.

지금 생각컨데 내가 그릴, 또 그리고 싶은 저널리스트의 상은 이런 게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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