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속의 독백 나남신서 168
리영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품절


리영희 선생의 짧은 글들을 신문에서 보았었고, TV에서 그의 인터뷰를 보았었다.. 처음 그의 글을 접한 것은,, 아마도 1998년 강준만의 글을 읽다가 알게된 것이었을 텐데... 그 이후 신문이나 인터넷이나, TV에 나올 때마다 그의 말에 귀기울였었다.

'리영희'라는 이름 석자에서 예사치 않다는 것을 느꼈던 건..

첫 번째는 그가 아무래도 여자리라는 믿음이 깨졌던 것이고..

두 번째는 그의 사상이 급진적인데 반하여(그 것이 그가 맑스주의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의 나이가 1929년의 우리 할머니 연세보다 조금 젊다는 사실이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에 대한 감정은 언제나 '존경심'이었다. 사실 그의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이 하나도 없으면서 그에 대한 남들의 예찬만을 가지고 그를 재단하고 있었던 나에게도 불찰은 있었다.

3일간을 꼬박 시간을 죽여가면서 그의 책을 읽었다. 사실 "동굴 속의 독백"을 산 것은 성공회 대학교 김동춘 선생의 추천에 힘입었던 2002년 1월 쯤이었다. 당시 그의 책 "근대의 그늘"(당대)를 읽고나서, 그리고 박정희 관련 토론회에서 바른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나서 감명 받은 나는,, 사회과학도에게 추천해줄 책을 소개해 달라 했고 그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책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정확히 기억 나지 않지만

맑스,자본 1권(정치경제학 비판), 비봉, 2001
라인홀트 니버,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문예출판사, 2000
김동춘, 전쟁과 사회,2000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1,2, 민음사, 1999,1998]

그리고 리영희 선생의 "동굴 속의 독백"을 소개시켜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 놓고선 처음 책을 잡은 것은 2002년 초였지만,, 계속 너무 쉽게 쓰여진 문체에 지루했음이었을 까, 아니면 그냥 아무 생각없이 책을 봐서 그 문체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여하튼 나는 이 책을 덮어놓고 2년을 묵혀두었다. 이 책을 다시 잡게 된건 올해 초였던 것 같으나, 그 때도 500p 중 100p 정도를 읽고 그냥 덮었던 것 같다. 지난주 월요일 동생을 군대 보내놓고 맘 먹고 읽기 시작하여 다 읽을 수 있었다.

그의 사상에 대해서 어떠한 '충격'이라던 가(그의 처녀작 "전환시대의 논리"를 보고 대학생들이 지적충격과 아노미 현상을 겪으며 학생운동과 변혁운동에 투신했던 것 같은..) 특별한 '감동'을 받지는 않았다.

또한 한편으로는 그의 '非 여성주의적 잔재들'(예를 들면 자신의 아내의 처녀성에 대한 존경심을 통해서 그녀의 아내를 사랑해야할 이유로 상정하는 점(p.340)) 등에서는 실망 또한 처음엔 느꼈으나,, 내가 책 밑둥에 써 놓았지만,, 내가 1929년의 유교적 잔재와 일제하에서 태어났을 때도 그 보다 더 진보적일 수 있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나는 아무런 대답도 자신할 수 없다.

이 책은 자신의 삶을 기록한 에세이이고, "자유인의 단상", "삶과 사유의 뒤안길", "전장과 인간", "난세의 지식인들에게", "탱크를 녹여서 보습을", "거짓에 가려진 진실을 찾아서", "리영희를 말한다" 챕터로 구성되어있다.

그가 극우사상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해서, 잠수함의 토끼처럼(p. 509) 민감하게 세상에 대항했던 점,, 그 출발은 한국전쟁이었다. 그냥 평범하고 이상적인 젊은이었던 그를 바꾼건 거창양민학살과(사실 민간인 학살이라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국군방위대군수사건 등의 군의 양심을 져버린 행위들과 전쟁이 주는 비참함 등에 기인한 것이었고, 미군 곁에서 통역장교로 생활함과 최전방의 생활이 그를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바꾸어 주었다.

다만 매번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걸리는 점이지만,, 그의 가족이 입었을 상처를 생각해 본다만, 그의 아내가 순응적인 보수적 여성에서 민주투사로 까지 변하는 모습은 그의 삶이 올 곧았기 때문에 그의 삶과 그의 인품에 반한 점도 있었겠다고 생각해 본다. 물론 그의 아들이 그의 아버지를 "전체주의자, 도덕주의자"로 몰아붙일 정도로 아이들에게 엄격했던 점들은 당대의 '선비'의 작은 흠결이라고 보면 안되겠는가?

이 책에는 수도 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종교, 여성, 맑스주의 ,..... 모든 이야기를 쓸 수는 없다. 진정 살아 움직이는 삶의 모습을 그는 보여줄 따름이다. 마지막 유홍준의 그에 대한 회고를 할 때의 에피소드가 그의 성품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유홍준의 결혼식 주례를 맡은 리영희 선생이 "신랑 유홍준군과 신부 최영희 양은 어떠한 경우라도 항시 사랑하고 존중하며 진실한 남편과 아내로서 도리를 다할 것과 어른을 공경하고 나라에 공헌할 것을 맹세합니다."라는 부분을 보고선,, 곧바로 나라에다 플러스 펜으로 직직 긋고 "사회"로 바꾸고 그 연유를 물어보았더니,, "나라라는 말에는 파쇼 냄새가 나지만 '사회'라는 말에는 인간의 윤리가 살아있다는 차이 아니겠어."라고 이야기하는 점을 보면서.. 짠한 느낌을 받았다면 내가 지나치게 사회과학도 이기에 그런 것일까?

머리가 굵었다고 남들의 사상에 높은 점수를 쉬이 주지 않는 나에게 리영희 선생은 그의 사상과 상관 없이 '성찰하는 한 인간'으로서 깊은 감동을 준다. 그의 사상과 나의 졸견은 지금 많은 점에서 차이를 가지고 있다. (나는 인간을 어떠한 존재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기 때문에..) 다만 그의 고뇌한는 모습,, 그리고 항상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그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자 한다면 이는 어떠한 가?

[인상깊은구절]
그런데 우주의 원리는 변화임을 알아야 하네, 균형 정지 고정은 변화의 과정의 어떤 순간, 단면의 현상이지 원리가 아니지 않겠는가. 사회와 인류의 발전에는 안정도 중요하지만 변화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에 눈을 감으려는 태도는 옳지 못하네. 더욱이 일체의 변화를 '혼란'으로 단정하면서 그것을 위험시 하는 사상은 진정한 안정을 유지할 능력의 결핍을 뜻하는 것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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