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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평점 :
2007년 7월 8일이 넘어가는 늦은 밤.
나는 우리 문학을 신뢰하지 않았다. 용돈이 넉넉치 않던 고등학교 시절, 책을 읽기 위해 주로 내가 이용한 곳은 당시 인기몰이를 하고 있던 책대여점이었다. 대형 수퍼마켓 매장이 있던 곳에 자리를 잡은 우리 동네 책대여점은 구립도서관의 문학 코너보다도 더 넓었다. 책대여점의 특성상 주로 흥미 위주의 문학책이 대부분이었고, 커다란 한쪽 벽면을 우리 문학책들이 채우고 있었다. 한 3년 드나들다 보니 우리 문학책들로 가득한 그 벽면에서 내가 더이상 읽을 책들이 없게 되었다. 대학생이 되어 책대여점을 떠나면서부터 내 마음 한켠에는 우리 문학에 대한 불신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많은 책들 중에서 대하소설이나 역사소설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책들이 사랑, 이별, 죽음... 눈물을 우러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는 작가가 죽은지 30년이 지나지 않은 책은 읽지 않는 선배가 등장한다. 죽은지 30년은 안되었어도, 아직 죽지 않은 작가의 책은 읽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 문학과 멀어지기 시작했었다.
얼마전 선물로 받은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덮으면서 내가 얼마나 근시안적인 책읽기를 해왔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하병무의 『남자의 향기』와 같은 책들이 대세였는데, 출판계에도 당연히 유행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진작 파악했어야 했다.
2007년 7월 8일이 넘어가는 늦은 밤, 나는 『달콤한 나의 도시』를 읽기 시작했다.
2007년 7월 9일 월요일.
31살, 편집회사의 편집 디자이너, 아직 미혼, 전세금을 깔고 서울에서 혼자 생활. 주인공 오은수의 프로필이다. 회사에서 중노동에 혹사당해도, 상사로부터 부당함을 당해도 꿋꿋히 참고 일하는 대한민국의 어쩔 수 없는 평범한 직장인인 그녀에게 세 남자가 등장한다.
태오, 그녀보다 6살이 어린 그는 어릴적부터 영화만이 오직 그의 꿈이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즐겁지만, 32살의 평범한 여자에게는 불안하기 그지 없는 상대이다. 김영수, 37살의 작은 사업장을 가지고 있는 그는 나 여기 있소!하고 손을 들지 않는다면 도통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하기 그지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의 프로필에 비하면 그는 과분한 상대이다. 유준, 그녀의 오랜 친구이며 비록 폐인 생활을 하는 백수이지만 먹고 살 걱정은 없는 사람이다. 평범한 그녀에게는 평범한 선택이 딱이다. 온전히 그녀의 자의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녀의 선택은 김영수였다. 그런 그녀가 회사를 박차고 나온다. 나이는 많지만 평범한 커리어 때문에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걱정이던 그녀가 일탈을 단행한 것이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평범함과 단조로움에 너무 숨이 막혀서일까.
은수가 사직서를 내던 날, 나 또한 사직서를 냈다. 은수에게서 용기를 얻었던 것일까?
문제는 인생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용기다!! (p. 71)
2007년 7월 12일 목요일.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는 전혀 달콤하지 않다. 모양없이 지어놓은 네모반듯한 회색빛 건물들, 은수처럼 우산이라도 들고 날아갈 수 있다면 정말 좋을련만. 날아 오른다고 해도 도무지 내가 안착할 곳이 없다는 것. 떠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이 도시를 떠나고 싶다. 이 도시는 나에게 좌절과 실망만 줄 뿐이다.
은수에게 서울은 어떤 도시였을까. 정말 제목처럼 달콤한 도시였을까? 그녀는 아무 맛도 없다고 했다.
떠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이 도시에다가 지원을 했다. 경쟁률은 이 도시의 공무원을 뽑는 것만큼 세다. 모두들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휴우, 은수는 어떻게 되었을까? 면접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얼른 책을 펼쳐 보았다. 그녀는 지인의 소개로 면접을 보러 간 회사로부터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게다가 결혼하기로 약속한 김영수는 종적을 감추었다. 안돼, 안된단 말이야!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그녀와 나를 동일시하며, 그녀의 이야기에 감정을 이입시키고 있었는지를 말이다.
내 기대와는 다른 결말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바라던 은수의 삶은 이런게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서러움의 눈물을 떨구고야 말았다.
2007년 7월 13일 금요일.
무려 반나절 동안 2차 면접이 진행되었고, 탈락자들에게만 저녁 때까지 따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다니던 사무실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는 팀장을 뒤로하고 과감하게 짐을 싸들고 나와버렸다. 나에게 이런 결단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 집으로 돌아와서 2시간 동안 휴대전화만 바라보았다. 전화벨이 울리기라도 하면 깜짝 깜짝 놀라기도 했었다. 결국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오랫동안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인데, 왜 이렇게 두려운걸까. 은수의 마지막 모습 때문이었을까. 그녀가 그랬듯이 나 또한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앞으로 다가올 이 도시는 나에게 어떤 맛을 보여주게 될까.
과거를 돌이킬 수 없다는 후회보다 더 당혹스러운 것은 눈앞의 미래조차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만이 가지는 매혹적 특권이다. (p. 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