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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달자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조지 오웰은 소설 『1984』를 통해 지극히 통제된 미래 사회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1948년을 살았던 그가 그려낸 1984년의 미래 사회는 '텔레스코프'라는 장치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독재자 '빅 브라더'의 감시하에 놓여 있다. 사람들은 행동이나 사상 뿐만이 아니라 감정까지 감시를 받으며 통제 당했다. 어떤 것을 표현하는 언어가 없으면 결국 그것의 실체마저 사라지듯이, 빅 브라더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까지 통제했다. 그들에게는 '사랑'이라는 말이 없었으며, '사랑'의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곧 반역자가 되었다.
나는 『1984』를 읽고 얼마나 몸서리를 쳤는지 모른다. 비록 전체주의라는 사상이 세계를 움켜잡지는 못했지만, 비록 우리가 '텔레스코프'라는 장치를 통해 감시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1984』 속 사회와 과연 다른점이 무엇인가.
깊은 주름과 어두운 표정, 무채색으로 그려진 노인의 얼굴 덕분에 '비룡소에서 나온 청소년 문학선'이라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표지와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아서 더 궁금증이 생겨버린 책, 『기억 전달자』.
조너스가 살고 있는 마을은 보통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과 다른 것이 없어 보이는, 아니 더 평화로워 보이는 곳이다. 그러나 이 마을에 대해 좀 더 파고 들어가 보면 조지 오웰의 『1984』 속 사회와 더 닮은 곳이라는 것을 금새 알 수 있다.
이 마을은 지나친 인구 증가로 인한 식량 부족과 그에 따른 문제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일년에 딱 50명만 낳도록 산아제한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이렇게 태어난 아기들은 자신의 원래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채 아기를 원하는 부부에게 분양된다. 정말 말 그대로 '분양'이다. 게다가 건강하지 못한 아기는 그대로 '직위 해제' 되어 버린다. 이 아기들이 12살이 되면 앞으로의 자신의 '직위'를 부여 받는다. 똑똑한 아이는 의사나 변호사 등의 직위를 받아 교육을 받으며, 건강한 여자 아이는 산모 직위를 받아 3명의 아기를 낳고 육체 노동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주인공 조너스는 '기억 전달자'라는 매우 막중한 직위를 받게 된다.
이 마을 사람들이 아무런 걱정도 아픔도 없이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기억 전달자' 덕분이다. '기억 전달자'는 모든 사람들의 기억을 혼자서만 간직하며 감당해 내야만 한다. 마을 사람들은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진정한 가족과 사랑의 기억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끔찍한 전쟁의 기억까지 모두 혼자서만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모든 것이 무채색으로 보이지만 그는 빛깔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 사과는 빨갛게 보이고, 하늘은 파랗게 볼 수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은 기억 뿐만이 아니라 언어도 통제를 받는다. 항상 바른말을 사용해야지 '사랑'과 같은 말을 사용하면 바로 '대국민 사과'를 해야한다. 날씨 또한 통제를 받는 것 중에 하나이다.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하얀 눈이나 비온뒤 보이는 일곱빛깔의 무지개를 볼 수가 없다. 항상 맑음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늘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게될지 어릴적부터 정해지는 사회, 그래서 취업 걱정도 없고 인구 문제도 없고 서로 간의 경쟁도 없다. 평화로움은 넘치지만, 단조로움 또한 항상 뒤따른다.
기억 전달자가 기억과 함께 동반하는 '고통' 을 괴로워 한 것이 아니라 혼자서만 기억하고 있다는 '고독' 때문에 괴로웠던 것처럼 사람들과 함께 부딪치고 경쟁하며 사는 것이 더 재미난 일이 아닐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마음껏 꿈꿀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디스토피아가 아닌 유토피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