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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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세상 끝까지 추적하는 이 빌어먹을 쓰레기, 황색 저널리즘의 최후
   어느 일요일 저녁, 카타리나는 뫼딩 경사의 집으로 찾아가 자신이 《차이퉁》 의 기자를 죽였다고 자백합니다.

   자신이 낮 12시 15분경 자기 아파트에서 베르너 퇴트게스 기자를 총으로 살해했으며, 뫼딩이 아파트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그를 "데려갈" 수 있을 거라고 했고, 그녀 자신은 12시 15분에서 저녁 7시까지 후회의 감정을 느껴 보기 위해 시내를 이리저리 배회했지만, 조금도 후회되는 바를 찾지 못했노라고. 12쪽

   27세의 성실한 가정관리사였던 카타리나는 어떤 이유로 기자를 죽였으며, 그 행동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사건은 며칠 전 카니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변호사 댁에서 가정관리사로 성실하게 일하고 있던 카타리나는 카니발 때 우연히 만나 춤을 춘 남자 때문에 신문 1면을 장식하게 됩니다. 그 남자는 은행 강도에 살인 혐의까지 받아 경찰의 추격을 받고 있었는데, 그의 정체를 잘 알지 못했던 그녀는 자신의 집에서 그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아침이 돼도 아무런 기척이 없자 경찰은 밤새 그녀의 전화를 도청한 것도 모자라 그녀의 집을 수색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집에는 카타리나 뿐이었습니다. 살인 혐의를 받고 있던 그 남자, 괴텐은 이미 사라진 후였습니다. 밤새 경찰들이 그녀의 집을 지켰는데, 그는 어떻게 빠져나갔을까요? 경찰은 용의자 대신 카타리나를 연행해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신문들 역시 빠져나간 용의자 대신 카타리나에게 일제히 초점을 맞춰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카타리나와 용의자가 어떤 관계였는지, 그녀가 얼마짜리 아파트에서 살며, 그 아파트는 어떻게 구했는지, 평소 그녀의 행동은 어땠는지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 한 뒤 기자 특유(!)의 상상력까지 발휘해 기사를 쏟아냅니다.
   심지어 암에 걸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그녀의 어머니까지 찾아가 무리하게 인터뷰를 시도합니다. 이 사건에 대해 잘 몰랐던 그녀의 어머니가 던진 한마디 조차, 기자는 카타리나에게 불리한 문장으로 고쳐 보도합니다.

   그녀는 , "왜 그런 결말이 날 수밖에 없었을까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차이퉁》에는 이렇게 썼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듯이, 그렇게 끝날 수밖에 없었겠지요." 블룸 부인의 진술을 다소 바꾼 것에 대해 그는 기자로서 '단순한 사람들의 표현을 도우려는' 생각에서 그랬고, 자신은 그런 데 익숙하다고 해명했다. 107쪽

   얼마 후 잡힌 용의자가 카타리나는 자신의 정체를 몰랐다고 진술하자, 그녀는 혐의를 벗고 경찰에서 풀려납니다. 그러나, 몇몇 신문들이 자주 그러하듯이, 《차이퉁》은 또다른 음모를 제기하며 카타리나를 몰아갑니다.

   경찰이나 검찰청은 블룸의 혐의를 완전히 없애려고 하는 파렴치한 괴텐을 정말 믿을 생각인가? 본지는 수차례 반복하며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의 심문 방법이 너무 부드러운 것은 아닌가? 비인간적인 인간을 인간적으로 대해야 하는가? 118쪽
 
   이 사건으로 인해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살았던 그녀의 일상은 산산조각 나버리고,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세상을 떠납니다. 뿐만아니라 그녀와 함께 일상을 공유했던 지인들도 엉뚱하게 기사의 표적이 되어 피해를 보게 됩니다.

   그는 '이 쓰레기를, 한 사람을 세상 끝까지 추적하는 이 빌어먹을 쓰레기를 읽고 또 읽었지만, 읽을수록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 쓰레기의 날조된 표현들이나 "빨갱이 트루데"라는 표현에 대한 분노가 점점 고조되어, 마침내 항복하고 트루데에게 도와 달라고 비굴하게 부탁했다. 87쪽

   
그들은 살인자이자 명예를 훼손한자라고. 그녀는 물론 그런 것을 무시하지만, 무고한 사람들의 명예, 명성 그리고 건강을 앗아 가는 것이 이런 종류의 신문사 관계자들의 의무인 모양이라고 했다. 110쪽

   선정적이고 날조된 기사들로 인해 하루 아침에 명예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카타리나는 묻습니다. 이렇게 명예를 잃어버린 자신을 위해 국가가 어떤 일을 해 줄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어떻게 보면 경찰도 한 몫 한 셈이니까요.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더 황당합니다. 이것은 경찰이나 검찰청의 소관이 아니며, 언론의 자유는 함부로 침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카타리나는 이틀 치 《차이퉁》을 핸드백에서 꺼내 보고, 국가가 ─ 이렇게 그녀는 표현했다. ─ 이런 오욕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해 주고 그녀의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지 물었다. 그사이 그녀는, 심문이 왜 '삶의 세세한 구석까지 파고드는지'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런 심문이 전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쯤은 아주 잘 알게 되었노라고 했다. 하지만 심문할 때 거론된 세세한 사항 ─ 신사의 방문 같은 문제 ─ 들을 어떻게 《차이퉁》이 알게 되었는지, 게다가 어떻게 하나같이 왜곡되고 오도된 진술로 알게 되었는지 그녀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62쪽

   "논쟁의 여지가 분명한 형태의 저널리즘을 형사적으로 추적하는 일"은 경찰이나 검찰청의 소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언론의 자유를 경솔하게 침해해서는 안 되며, 개인의 소송도 정당하게 취급되고 불법적인 정보의 원천에 대해서는 신원 미상의 인물에 대한 소송이 제기된다는 걸 그녀는 믿어도 좋다고 했다. 여기에서 언론의 자유와 정보의 비밀 보장을 위해 거의 열정적이라 할 만큼 변론을 하며, 질 나쁜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그런 무리(모임)에 끼지도 않는 자는 언론에도 그를 거칠게 묘사할 빌미를 결코 주지 않는 법임을 단호히 강조한 사람은 바로 젊은 코르텐 검사였다. 67~68쪽

   그래서 카타리나는 결심합니다. 자신의 잃어버린 명예를 위해 직접 나서기로 말입니다.

   이 소설은 하인리히 뵐이 1975년에 발표한 것으로, 당시에도 선정적인 황색 저널리즘이 날개 돋친듯 팔리고 있었습니다. 작가는 언론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서 여론을 만들어가는 과정과 그로 인해 한 개인이 철저하게 파헤쳐지고 파괴되어 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특히, 소설 속 《차이퉁》 기자와는 대조적으로 사실만 객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절제된 표현으로 써내려 간 보고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더는 안돼, 더는 안 된다고요. 그자들이 이 아가씨를 끝장내고 말 거야. 경찰이 안 그러면 《차이퉁》이 그럴 거예요. 《차이퉁》이 그녀에 대한 흥미를 잃으면, 사람들이 그럴 거고요." 42쪽

   그녀가 일했던 변호사 댁의 부인이 한 이 말이, 오늘도 선정적인 기사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쫓고 있는 스스로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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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3-28 0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도 있습니다, 소설을 보시고 나서 영화도
보시면 아마 감흥이 다를 것 같습니다.

뒷북소녀 2018-03-28 12:27   좋아요 0 | URL
찾아봤는데 네이버 이런 곳에서는 다운 받을 수가 없네요. 아쉽게도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