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의 전설적인 사랑
알랭 비르콩들레 지음, 호세 마르티네스 프룩투오조 자료협조, 이희정 옮김 / 이미지박스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우리집에서는 내가 첫째지만, 일가 친척들이 모이면 내 위로 언니 오빠들이 한 부대씩 모여든다. 덕분에 나는 아주 어릴적부터 책 복이 터져서, 초등학생들이 읽는 한국전래동화 전집이나 세계명작동화는 물론이거니와 고등학생 오빠들이 읽는 위인 전집까지 섭렵하게 되었다.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나서 그렇게 내리 4년을 나는 언니 오빠들이 읽었던 먼지 냄새가 폴폴 나고 누렇게 빛바랜 책들을 읽어야만 했다. 그렇게 물려받은 책들을 모두 읽어버린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 때, 나는 처음으로 새 책이라는 것을 선물받게 되었다.

뽀얀 종이에 그려진 알록달록한 그림이 너무 좋아서 수 십번을 읽어버렸던 책, 그래서 내 생애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되었던 책, 그 책은 바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였다.

물론 어른이 된 지금도 생각날 때마다 꺼내어 보는 책이다. 다행히 『어린 왕자』는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묘한 매력이 있어 평생 읽어도 질리지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한가지 변하지 않는 건,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난 '어린 왕자'를 꿈꾼다는 사실이다.

 

그토록 사랑하는 장미와 다퉈 여행길에 오른 어린 왕자, 하지만 마음은 항상 장미에게 있었고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든지 장미를 떠올리고 마는 어린 왕자.『어린 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는 분명 그런 사랑을 하고 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린 왕자』 탄생 60주년 기념으로 출간된 『생텍쥐페리의 전설적인 사랑』에서는 그동안 꼭꼭 숨겨 두었던 그와 그의 유일한 장미였던 아내 콘수엘로의 사랑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내가 상상해 왔던 그런 사랑이 아니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분명 전설적인 사랑임을 의심치 않았는데, 책을 읽고나자 과연 그들의 사랑을 전설적인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부터 시작해서 남녀간의 사랑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인 문제까지 고민하게 되었다.

항상 그리워하지만 곁에 있으면 서로를 못 견뎌하는 그들, 많은 어려움 속에서 시작한 사랑이지만 정작 주변 사람들로부터는 인정 받지 못하는 그들의 곡예와 같은 사랑만이 책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분명 『어린 왕자』속 이야기는 그들의 이야기가 맞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랑은 동화처럼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나는 죽기 위해 떠나는 게 아니야. 고통을 받고, 그렇게 해서 나 자신의 소유물들과 일체감을 느끼기 위해 떠나는 거야. <by 생텍쥐페리, p144>

 

"내가 당신을 기다리며 인생을 보낼 거란 사실을 알아 줘요. 늙고 기억이 모조리 사라진다 해도 당신을 기다릴 거예요." <by 콘수엘로, p164>

 

이 책은 생텍쥐페리와 아내 콘수엘로가 주고 받은 편지들, 그리고 콘수엘로의 자취를 따라 쓴 이야기들을 토대로 펴낸 책들이다.

따라서 자연히 생텍쥐페리보다는 아내 콘수엘로의 감정이 많이 녹아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비행을 떠난 남편을 기다리는 콘수엘로의 마음이 느껴져서 안타까웠다. 시댁 식구들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마저 인정해주지 않는 생텍쥐페리와의 사랑을 혼자서 감당해 내고 있는 그녀가 너무나도 안스러워 나라도 그녀 편에 서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시도때도 없이 등장하는 편지와 사진 때문에 글을 읽으면서 깊이 몰입할 수는 없었다. 어찌나 맥을 뚝뚝 끊어버리는지, 나중에는 텍스트만 먼저 읽어버리고 다시 앞 페이지로 돌아와서 사진과 편지를 함께 보아야만 했다. 두서없는 편집이 정말 안타까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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