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페코로스 시리즈 1
오카노 유이치 지음, 양윤옥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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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코로스와 어머니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말은 책에도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다양한 타이틀과 추천사로 무장한 책들 대부분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타이틀에 몇 번 속고 났더니 이제는 애초부터 기대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읽곤 합니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우연히 읽게 된 오키노 유이치의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원래 만화를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이런 저런 타이틀로 무장하고 있어서 이 책 또한 크게 기대하지 않고 얼른 읽어버리겠다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여기까지 읽고 서평 읽기를 멈추지 말아주세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러나'로 마무리 될 것이라는 것쯤은 다들 눈치채시겠죠?


   오카노 유이치는 나가사키 시내 상점가 정보지를 만드는 일을 하면서 정보지 한 켠에 네 컷짜리 만화를 싣기 시작합니다. 그 네 컷짜리 만화에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만화가 오카노의 일상이 담겨 있습니다. 오카노는 이렇게 한 편 한 편 정보지에 실었던 것을 모아 자비로 조촐하게 출판을 하게 되는데, 이 책이 나가사키 지역 서점에서 1위를 하게 됩니다. 그 후 정식 출간되자마자 입소문을 타고 전국의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살짝 귀여운 40대 아들과 아들보다 더 귀여운 치매 어머니의 일상

   '페코로스'는 탁구공만 한 크기의 작은 양파 품종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오카노 유이치의 벗어진 머리를 보고 친구가 붙여준 별명이라고 합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이 '페코로스' 같은 머리를 보고 아들을 알아보곤 합니다. 어머니는 떡을 치듯이 찰싹 찰싹 아들의 머리를 내리치기도 하고 머리카락이 없어 맨살 그대로 노출된 아들의 머리를 꼬집기도 합니다. 쓰담쓰담 쓰다듬어 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들은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팔 운동을 하시구나, 아니면 과거에 잘못했던 일 때문에 벌을 주시구나 하고 말이죠.

   술 때문에 속을 썩이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치매가 시작된 어머니, 오카노는 아들 하나를 데리고 도쿄에서 나가사키로 내려옵니다. 어머니에게 서서히 치매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할 때는 함께 지내며 보살폈지만 증세가 심해지자 어머니를 요양시설에 보내게 됩니다. 그 이후로 일주일에 두세 번씩 '페코로스'는 어머니를 만나러 갑니다. 동글동글 귀여운 40대 아들과 예전에는 감추고 있던 귀여움을 맘껏 내뿜고 계시는 어머니 '미쓰에'의 이야기. 아프고 힘든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는데 읽고 있으면 괜히 웃음이 나옵니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는 어떤 귀여움을 숨기고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출처: 온라인 서점 책 소개 페이지]


   원래는 밑줄 그은 문장 같은 것을 소개해야 하지만 '만화'라는 특성상 부득이하게 온라인 서점 책 소개 페이지에 살짝 올라와 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합니다. 서서히 치매 증상이 악화되고 있던 때의 어머니, 혼자 집에 있으면 얼마나 외롭고 불안했을까요? 그런 어머니의 마음도, 그것을 걱정하는 아들의 마음도 함께 느껴져 가슴이 찡했던 에피소드 입니다.


   오카노와 어머니 '미쓰에'는 '치매'라는 병 때문에 분명 불안하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좌절하지 않습니다. 가끔씩 어머니의 정신이 맑아져서 별 것 아니지만 평화롭게 보낼 수 있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지, '치매'라는 병 때문에 잊고 지냈던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감사해 합니다. '치매'라는 병 때문에 그렇게 속을 썩이던 아버지도 어머니 꿈에 다정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한번도 본 적 없었던 어머니의 사랑스럽고 귀여운 모습도 볼 수 있으니 말이죠. 무엇보다도 이 삶은 어머니가 젊은 시절 '그래도 살아보자'고 다짐했던 바로 그 삶이니까요.


   오랜만에 혼자 읽기 아까운 책을 만났습니다. 재미있는 책, 감동적인 책, 이런 저런 책들을 찾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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