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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 옷장에 갇힌 인도 고행자의 신기한 여행
로맹 퓌에르톨라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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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큰 가구 브랜드 이케아가 한국 상륙에 이어 이번에는 소설 속으로 진출했습니다.
마른 체형의 키가 크고 까무잡잡한 얼굴에 콧수염을 기른, 머리에 큼지막한 터번을 둘렀긴 하지만 그래도 돈 많은 인도 사업가처럼 보이는 '아자타샤트루 라바슈 파텔'은 이케아 못침대를 사기 위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이케아로 향합니다. 비록 인도에는 아직 이케아 매장이 없긴 하지만, 파텔은 어떤 사연으로 침대 하나를 사기 위해 3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8시간 15분 동안 비행기를 타야 올 수 있는 파리까지 오게 된 걸까요?
인도에서 온 '파텔'은 고행자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칼 삼키기, 유리 조각 삼키기, 양팔에 바늘 꽂기 등의 '주술적 능력'을 선보여 유명해 졌는데 이제 못이 1만 5천 개나 박힌 못 침대에서 자는 '기술'을 선보이려고 합니다. 그가 이케아 최신 못 침대를 살 수 있도록 마을 사람들 모두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줬고, '파텔'은 그 돈으로 인도에서 가장 저렴하게 갈 수 있는 파리 이케아 매장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최신 이케아 못 침대는 99유로 99상팀인데, 그에게는 반만 인쇄된 100유로 지폐 한 장 밖에 없습니다. 그는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매장 대신 시내를 빙빙 돌아야 도착할 수 있는 이케아 매장까지 태워준 택시 기사 귀스타브에게 100유로 지폐 한 장을 건넵니다. 그리고 그가 잠시 한눈 팔도록 만든 다음 다시 100유로 지폐를 자신의 손으로 가져옵니다.
그렇게 이케아 매장에 도착한 파텔은 그가 사려고 했던 못 침대가 세일 기간이 끝나 판매가가 99유로 99상팀이 아닌 115유로 89상팀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주문하면 내일 매장에서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상황에서 그의 '주술적 능력'이 또 힘을 발휘합니다. 그는 이케아 매장에서 일부러 한 여자에게 부딪히며 처음부터 조각나 있던 선글라스 파손에 대한 보상비에 미안함의 대가로 밥까지 얻어 먹게 됩니다. 덕분에 못 침대를 살 수 있게 된 파텔은 호텔 대신 아무도 없는 이케아 매장에 몰래 숨어들어 하룻밤을 보내려 합니다.
하지만 이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불 꺼진 매장으로 이케아 직원들이 다시 돌아와 가구들을 재배치하기 시작하더니, 파텔이 숨어든 이케아 옷장은 다시 조립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통째로 포장해 화물차에 실어 영국으로 보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파텔의 여행은, 영국-스페인-이탈리아-리비아를 거쳐 다시 프랑스로 돌아오면서 끝이 납니다.
"수중에 돈 한 푼 없던 저는 유랑 사기꾼 행각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모든 사람을 다 속였습니다. 고향 사람이든 관광객이든 구별할 것 없이 길에서 만난 모든 사람을 속였죠. 최근에만 해도 난 주위 사람들에게 이케아 최신 못 침대를 반드시 사야 한다고 믿게 만들었습니다. 그랬더니 모두들 그 말을 철석같이 믿지 뭡니까. 아마 황금 양털을 찾으러 떠난다고 했어도 믿었을 거예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주었죠. 물론 전 못 침대에서 자진 않습니다. 거실 옷장 속에 푹신한 침대를 숨겨두었었죠. 그때 그저 단순한 변덕이었는지 아니면 마을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걸 제공하기 위해 어디까지 속아줄 수 있는지를 시험해 보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마을 전체가 나를 위해 빚을 내 돈을 모아주었죠. 당신을 위해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준 것과 마찬가지요. 다만 나의 경우 속임수였다는 게 다르지만요. 지독히도 이기주의자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은 자신들도 배불리 먹지 못하면서 나를 위해 기꺼이 돈을 내주었으니까요. 날 도와주겠다는 마음, 반신인 나를 돕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 제가 이번 여행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전 이제 예전의 제가 아닙니다. 제일 먼저 당신의 이야기가 날 감동시켰어요. 그 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여러 일을 겪게 되면서 다른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마리의 사랑, 이 이야기는 곧 들려드리겠습니다. 소피 모르소와의 우정, 이 이야기도 물론이요. 마지막으로 이 가방 안에 들어 있는 8만 5천 유로." (243~244쪽)
프랑스에서 시작된, 파텔의 예상치 않은 여행은 사기와 눈속임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던 파텔에게 새로운 시작과 꿈을 심어 줍니다. 그는 여행 도중 만난 사람들, 생전 처음 봤지만 그에게 호의를 베풀어줬던 사람들을 통해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기막히게 운이 좋았던 9일 동안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합니다.
파텔은 가만 생각해 보니 여행 내내 자신에게 운이 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아흐레 동안 놀라운 여행을 했다. 그에게 이 세상엔 다른 것들이 존재하며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바뀔 수 있음을 가르쳐 준 내면 여행. (260쪽)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일 똑같은 길을 걷고, 똑같은 사람들을 만나며, 똑같은 일들을 반복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반복되는 일들에 길들여지고 굳어지게 됩니다. 여행은 그 반대입니다. 낯선 길을 걷고, 한번도 본 적 없는 혹은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평소에는 엄두도 못냈던 일을 경험하곤 합니다. 덕분에 우리는 시야가 넓어지고 순발력이 생기며 또다른 일을 꿈꾸게 됩니다.
아직 진정한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다면 지금 당장 비행기 표를 예약하세요. 파텔처럼 파리도 좋고, 로마도 좋아요. 가장 저렴한 비행기 표를 끊어도 상관 없어요. 왜냐하면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를 '여행'이 당신 앞에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2015. 07. 10.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