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3권 합본 개역판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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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동유럽의 기적'으로 불리며 세계적인 석학이자 비평가로 손꼽히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으로 헝가리 출신 작가인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꼽았습니다. 처음 작가의 이름을 듣고 '아가사 크리스티'를 잘못 발음한 것인 줄 알았다는 그는 "아가사의 추리소설보다 아고타의 소설이 훨씬 더 무섭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철학자로서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 세계가 그 안에 있다"고 덧붙입니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에서 그리고 있는 세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소설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이 소설이 취하고 있는 독특한 형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3부작으로 나눠 출간된 책으로 각각 「비밀 노트(1986)」, 「타인의 증거(1988)」, 「50년간의 고독(1991)」이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던 책입니다. 그동안 절판됐던 책을 이번에 다시 출간하면서 한 권으로 합쳐졌습니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시점이나 구성 면에서 모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각각의 작품들로 읽어도 충분할 정도입니다.


*여기서부터 다음 *까지는 스포일러 주의구간입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분들은 다음 *까지 건너뛰어 주세요.

   이 소설의 주인공은 서로 철자 순서만 다른 이름을 가진 쌍둥이 형제 루카스(Lucas)와 클라우스(Claus)입니다.

   1부인 「비밀 노트는  전쟁 때문에 더이상 도시에서는 먹을 것을 구할 수 없게 된 쌍둥이 형제의 엄마가 다른 나라와 국경이 인접해 있는 시골에 사는 할머니에게 쌍둥이를 맡기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일기로 기록한 것입니다. 각각의 사건들은 작은 에피소드처럼 기록되어 있지만, 전쟁 속에서 쌍둥이들이 겪어야 했던 일들과 전쟁으로 인해 인간성이 어디까지 파괴되는지를 신랄하게 보여줍니다. 여기서 인상적인 것은 쌍둥이 형제가 고통, 추위, 배고픔 등을 이겨내기 위해 미리 연습하는 장면입니다.


   "장교님은 너희들 연습 많이 한다 말한다. 다른 연습들도. 그는 너희들 벨트로 때리는 거 봤다."

   "그건 신체 단련 연습이었어요."

   "장교님 묻는다, 너희들 왜 그런 거 하는지?"

   "고통에 익숙해지기 위해서요."

   "그가 묻는다, 너희들은 아프면 즐거운가?"

   "아니에요. 우리는 단지 고통, 더위, 추위, 배고픔, 이런 모든 참기 어려운 것을 이겨내고 싶을 뿐이에요." (p.95)


   그들이 고통에 익숙해지기 위해 연습하는 것들은 신체에 가해지는 것 뿐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던지는 욕설에도 익숙해지기 위해 연습을 합니다. 누군가에게 한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그들은,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연습합니다.

   할머니는 돈 때문에 쌍둥이를 학교에 보내려 하지 않고, 쌍둥이들은 잠시라도 서로 떨어져있기 싫어서 학교에 가지 않으려 합니다. 쌍둥이의 엄마가 보내준 옷 조차 내다 팔 정도로 인색했던 할머니는, 죽으면서 쌍둥이들에게 꽤 많은 재산을 남겨줍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가 찾아와 국경을 넘고 싶으니 쌍둥이들에게 도와달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떨어져 있었던 적이 없던 쌍둥이들 중 한 명이 아버지와 함께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떠납니다. 이것이 1부의 마지막 입니다.


   폭발음이 들린다.

   우리는 미리 준비했던 다른 판자 두 개와 보물이 든 마대를 들고 철조망까지 달린다.

   아빠는 두 번째 철조망 직전에 쓰러져 있다.

   그렇다. 국경을 넘어가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누군가를 앞서 가게 하는 것이다.

   마대를 쥐고, 앞서 간 발자국을 따라간 다음, 아빠의 축 늘어진 몸뚱이를 밟고, 우리 가운데 하나만 국경을 넘어갔다.

   남은 하나는 할머니 집으로 돌아왔다. (p.192)


   2부 「타인의 증거는 한몸이나 다름없었던 클라우스를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루카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클라우스가 떠난 후, 한동안 루카스는 더 이상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무기력하게 보냅니다. "각자 홀로 살아가는 법"(p.257)을 배워야 한다며 떨어진 그들인데 말이죠. 사람들에게 클라우스의 이야기를 하면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루카스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그의 형제에 대해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혼자 남은 루카스는 클라우스가 돌아오면 보여주려고 클라우스와 함께 썼던 비밀 노트에 혼자만의 이야기들을 채워 나가는데, 심지어 이 이야기를 보여줘도 아무도 클라우스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그저 지어낸 이야기인양 치부합니다.

   이쯤되면 독자들도 당연히 의심하게 됩니다. 철자의 순서만 뒤바뀐 이름도 그렇고, 루카스 외에는 클라우스가 존재했다는 증거 조차 없습니다. 게다가 어느 날 루카스가 이 마을에서 사라지자, 클라우스가 기차를 타고 이곳에 도착합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루카스가 다시 돌아온 줄 알고 말을 걸 정도입니다. 루카스는 사라지고, 클라우스가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존재의 증거"가 궁금해지는 이야기 입니다.


   "미안하오, 클라우스. 나는 루카스가 열다섯 살 되던 해부터 알고 지냈소. 서른 살에 그는 실종됐소."

   "실종이라니요? 그가 이 도시를 떠났다는 말씀입니까?"

   "이 도시, 어쩌면 이 나라를 떠났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는 오늘 이렇게 다른 이름으로 다시 나타난 거요. 난 당신이 이름을 가지고 말장난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하오."

   "우리 할아버지가 클라우스-루카스(Claus-Lucas)라는 복합적인 이름이었어요. 어머니는 자신의 아버지를 무척 사랑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 이름을 하나씩 나눠주신 거죠.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은 루카스가 아닙니다, 페테르 씨, 나는 분명히 클라우스입니다."

   페테르가 일어났다.

   "좋아, 클라우스. 그렇다면, 나는 당신 형제 루카스가 내게 맡기고 간 물건을 당신에게 주어야겠소. 기다려요." (p.376)


   3부 「50년간의 고독」에서 드디어 클라우스와 루카스가 재회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앞서 읽었던 「비밀 노트」, 「타인의 증거」와는 상반되는 내용이 등장해 독자들을 혼란에 빠트립니다. 그리고 비로소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제목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나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쓰려고 하지만, 어떤 때는 사실만 가지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바꿀 수밖에 없다고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고, 그럴 용기도 없는 나 자신이 너무 괴롭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미화시키고, 있었던 일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있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얘기를 쓴다고 했다. 그녀가 말했다.

   "그래요. 가장 슬픈 책들보다도 더 슬픈 인생이 있는 법이니까요."

   내가 말했다.

   "그렇죠. 책이야 아무리 슬프다고 해도, 인생만큼 슬플 수는 없지요." (p.394)


*스포일러 주의구간 끝!

   주인공들을 비롯해 당시 사람들이 겪었던 전쟁은 인간을 파괴하고, 심지어 그 존재를 의심합니다. 아니 부정합니다. 파괴되어 가고 있는 자신을 스스로 깨닫는 것도 힘든 일인데, 심지어 존재까지 부정 당하면 사람들은 어떤 힘으로 생을 버틸 수 있을까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 자체는 결코 부정될 수 없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그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건 참 쓸쓸한 일이지만, 존재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증거가 될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이 책의 매력은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도저히 멈출 수 없을 정도로 흡입력이 강한 소설입니다. 게다가 3부에서 밝혀지는 이 소설의 '비밀'은, 왜 수많은 작가들이 그토록 이 소설을 극찬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합니다. 지젝은 쌍둥이 같은 소년들이 많아질수록 세계는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쌍둥이 형제가 그리는 '이상적 세계'를 찾아 직접 한번 나서보는 건 어떨까요? 이렇게 읽는 것보다 실제로 읽었을 때 훨씬 더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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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는 맨홀 2015-03-20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 보고 싶네요. 서평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뒷북소녀 2015-03-20 16:43   좋아요 0 | URL
정말 매력적인 소설이랍니다.^^ 읽어보시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거예요. 꼭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