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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인류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현실을 투영한 상상력!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함정!
아주 오래 전, 지구에는 엄청나게 큰 생명체가 살고 있었습니다. 키가 채 2미터도 되지 않는 우리 인간들과는 달리 그들은 어마어마하게 큰 덩치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지녔지만, 그들은 멸종했고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박물관에서 화석으로만 존재합니다. 덩치가 크다는 것은 살아남기 위해 항상 유리한 조건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이번에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제3인류』 속 생명체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다음과 같이 상황을 설정합니다.
이 이야기는 절대적인 시간이 아니라 상대적인 시간 속에서 펼쳐진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점은 당신이 이 소설책을 펴서 읽기 시작하는 순간으로부터 정확히 10년 뒤의 오늘이다. (p.9)
자, 겨우 강산 정도만 변할 것 같은 비교적 가까운 미래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그의 상상력에 의하면, 그 옛날 추위와 지각변동으로 인해 사라진 생명체는 비단 공룡들 뿐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지금의 인류가 출현하기 이전에는 공룡처럼 아주 거대한 인류들이 살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현생 인류의 10배 정도 덩치로 10배 정도 오래 살았습니다. 하지만 덩치 큰 생명들이 노출되는 표면적이 넓기 때문에 추위와 급격한 지각변동에 더 심한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결국 공룡들과 마찬가지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저 덩치만 큰 공룡과는 달리 지능이 있는 인류이기 때문에 그냥 사라지지 않고 제2인류들을 남겨 뒀습니다. 그들은 소행성 충돌이나 핵폭발 등 다양한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그들보다 1/10 정도 작은 크기의 제2인류를 만들어 지구 밖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지금의 우리 인간들이 지구 밖에서 머물 수 있는 곳을 찾아 해결책을 찾으러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제2인류는 제1인류보다 덩치가 매우 작기 때문에 수명은 짧아졌지만 대신 생식력이 좋아져서 임신기간도 9개월로 짧아지고 마음만 먹는다면 10명 정도까지도 낳을 수 있습니다. 덩치가 작으니 제1인류보다 식량에 대한 걱정도 줄어들었겠죠.
이 사실은 남극 탐사를 하던 프랑스의 한 과학자에 의해 밝혀진 것으로, 프랑스는 이것을 지금의 세계와 앞으로의 지구가 겪게 될 문제를 타계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활용합니다. 그들은 그 옛날 인류가 그랬던 것처럼, 인류의 소형화만이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적당한 과학자들을 수소문해 인류 소형화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진행합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탄생한 인류가 바로 '제3인류'로, 초소형 인간(Micro-Humains)의 머리글자를 따서 에마슈라고 이름 붙입니다. 처음 1명의 에마슈를 탄생시키는데 성공한 그들은, 900명의 여자 에마슈와 100명의 남자 에마슈도 만듭니다. 성비가 이토록 불균형한 이유는 여왕개미나 여왕벌들로 이뤄진 곤충의 세계와 아마존 여전사들의 생존법을 반영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탄생시킨 에마슈들은 이란의 핵시설을 폭발시켜 핵전쟁을 무마시키거나 도쿄전력 참사가 재현되고 있는 일본 원전에 투입해 원전 폭발을 막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을 통해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냉정하고 야비한 생명체인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필요가 생기면 만들어서 인간들의 뜻대로 사육했다가 없어지면 과감히 버리는, 도무지 생명에 대한 윤리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인류에 의해 만들어지고, 훈련받은 초소형 인간들이 언제까지 인류를 위해 존재하고 활동할 수 있을까요?
아쉽게도 『제3인류』 는 1, 2권을 통해 이제 막 제1부의 이야기가 끝난 참입니다. 아마도 2부에서는 개별적으로 생각하고 활동하는 에마슈들을 볼 수 있겠죠?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제3인류』 를 통해 그동안 그가 보여줬던 기발한 상상력이 아닌 오히려 현실을 투영하는데 초점을 뒀던 것 같습니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들을 소설 속에 담아냈습니다. 그 중에 한국이 배경인 사건들은 없으나 재미있는 설정은 있습니다. 10년 뒤 한국은 디지털 기술 쪽으로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나라로, 각국의 인재들이 일하고 싶어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을 발명한 박사도 한국의 한 연구소에 스카우트되어 일하고 있으며, 한국이 혁신을 진정으로 권장하는 유일한 나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인기가 많다는 것을 의식한 탓일까요.
또, 자신의 오랜 팬들을 위한 팬서비스 차원인지 소설 곳곳에 자신의 역작 『개미』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인용하거나 캐릭터들이 카메오처럼 등장해서 또다른 재미를 줍니다.
『개미』처럼 베르나르 베르베르 특유의 치밀하고 섬세한 상상력을 보여줬던 소설을 기대한다면 부족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3인류』를 통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또다른 상상력의 세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안락함과 편리함은 사람들을 잠들게 해요. 당신들은 아쉬운 것 없이 자라서 모든 것에 흥미를 잃어버린 아이들 같아요. (p.217)
버튼과 손잡이와 눈금판이 달린 기계들을 계속 사용하다 보면 나중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지죠. 손도 둔해지고 두뇌 회전도 느려져요. 손으로는 매듭을 지을 줄 모르고 눈으로는 지평선을 살필 줄 모르게 돼요. 새들의 노래를 들어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죠. 하기야 당신들이 새들의 노래를 제대로 들어 보기나 했는지 모르겠네요.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늘 켜놓는 바람에 그것들의 소리와 영상이 시청각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말이에요. 당신들은 이제 사냥도 베 짜기도 할 줄 모르고, 불을 피우거나 냄새로 길을 찾거나 구름을 보며 날씨를 예측할 줄도 몰라요. 당신들은 생활 장애자가 되었어요. (p.218~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