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한 시 - 120 True Stories & Innocent Lies
황경신 지음, 김원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모든 걸 멈출 수 있는 시간, 그래서 참 좋은 시간이야!

   밤 열한 시. 특별한 일이 없다면 늦은밤 시작하는 오락 프로그램을 보며 하하호호 웃고 있거나 따뜻한 이불 속에서 손가락만 꼼지락 거리며 책을 읽고 있을 시간입니다. 하루 중, 무엇을 하더라도 괜찮은 시간. 무엇을 하더라도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시간. 무엇을 하더라도 부담없이, 생각없이 느긋하게 즐겨도 되는 시간.

   한가지 더. 감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을만큼 치열하게, 그리고 또 냉정하게 하루를 보낸 내가 유일하게 감성에 젖어들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괜찮은 시간이니까, 그래서 역시 무슨 생각을 하더라도 괜찮은 시간이라고 느꼈나 봅니다. 꽤 단단한 사람인 나에게도 말랑말랑한 감성으로 충만할 수 있는 시간. 밤 열한 시는 바로 그런 시간입니다.

 

   그렇다면, 작가 황경신에게 『밤 열한 시』는 어떤 시간일까요? 『밤 열한 시』는 작가 황경신의 열입곱 번째 책으로, 『생각이 나서』를 발표한 이후 열 두 계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밤 열한 시』 속 계절은 누구나 계절의 처음과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봄'이 아니라 딱 지금의 계절, '가을'부터 시작합니다.

   개인적으로 발랄함으로 가득한 봄이 아니라 가을부터 시작해서 이 책이 더 좋습니다.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이 앞에 놓여 있을 때, 좋아하는 음식을 먼저 먹고 싫어하는 음식을 먹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그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밝고 화사한 봄을 보내고 서늘하고 외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것보다는, 먼저 외롭고 쓸쓸한 가을을 보내고 마지막에 다시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맞이하는게 더 좋습니다.

   역시 그녀에게도 밤 열한 시는 감성으로 충만한 시간인가 봅니다. 어쩌면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일 수도 있을테죠. 『밤 열한 시』에 실린 120편의 이야기들은 딱 밤 열한 시에 느긋한 마음으로 읽기 좋은 것들을 모아뒀습니다. 그래서 제목도 『밤 열한 시』인가 봅니다. 가끔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나서 이렇게 이야기하곤 하죠? 너무 바빠서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하늘 한 번 올려다 볼 겨를이 없었다, 어느새 계절이 다 지났더라. 『밤 열한 시』는 그런 일상 속에서 흘러가버린 시간과 계절을 느끼고 되돌아 보게 합니다.

   벌써 시월의 마지막 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짧디 짧은 이 계절, 잠시나마 가을의 감성에 젖어들고 싶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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