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화전 - 지상 최대의 미술 사기극 밀리언셀러 클럽 133
모치즈키 료코 지음, 엄정윤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고흐가 자신의 주치의를 그린 <가셰 박사의 초상>

   고갱과의 말다툼 끝에 자신의 한쪽 귀를 자른 고흐의 일화는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건 이후 고흐는 병원을 전전하게 되는데, 이때 정신병 전문 의사이자 화가 활동까지 하고 있는 폴 가셰 박사를 만나게 됩니다. 가셰 박사는 고흐가 죽기 직전까지 그의 곁에 머물며 건강과 관련해 많은 조언을 해주게 되는데, 이때 고흐가 가셰 박사를 모델로 그의 초상화를 그리게 됩니다. 고흐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가 마음에 들었던 가셰 박사는 같은 그림을 하나 더 그려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래서 비슷한 느낌의 가셰 박사의 초상이 2개 그려지게 된 것입니다.

 

   먼저 그린 <가셰 박사의 초상>은 1990년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당시로는 최고가인 8,250만 달러에 일본 다이쇼와제지의 명예회장인 사이토 료에이에게 낙찰되었습니다. 특히, 사이토 료에이는 자신이 죽으면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고흐와 르누아르의 그림들을 함께 화장해 달라고 유언을 남겨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는데 다행히 전세계 미술계의 반대로 이 유언은 취소됩니다. 이후 1999년에 익명을 요구하는 미국인 수집가에게 4,400만 달러에 다시 팔렸는데 그가 공개나 전시를 원치 않아서 지금은 정확한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이 <가셰 박사의 초상>은 백년 동안 주인이 12명이나 바뀌었는데, 이런 기구한 운명 덕분에 이야기의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모치즈키 료코의 『대회화전』 역시 이 작은 그림 하나로부터 시작합니다.

 

명화는 '소유'가 아니라 '공유'하는 것!

   『대회화전』은 일본인 화상에게 엄청난 금액으로 낙찰된 <가셰 박사의 초상>이 소유주가 도산하자 은행의 담보로 넘어가 렌탈 회사의 창고에서 빛을 보지 못하게 되자 이를 손에 넣으려는 사람들의 대담한 사기극을 그리고 있습니다. 사기단들은 창고에서 이 작은 그림 하나를 훔치기 위해 수 개월 전부터 준비를 하고 실행에 옮길 사람들을 영입하게 되는데, 소설의 대부분은 이러한 과정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특히, 사기단들은 자신들 대신 창고에서 그림을 훔쳐올 사람들을 영입하기 위해 그들이 그림을 훔칠 수 밖에 없도록 절박한 상황으로 몰고 갈 정도록 철저합니다. 소설은 《오션스 일레븐》이나 《도둑들》처럼 빈틈없고 완벽한 범죄를 위해 다양한 트릭과 인물들을 등장시켜 빼곡하게 이야기를 채워나가고 있지만, 작가의 필력 자체가 엉성해서 곳곳에서 삐걱거리며 소설로의 몰입을 방해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오랫동안 글쓰기를 훈련해 온 전문 작가가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엉성한 글솜씨를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는 분명합니다. 오늘날 돈 있는 사람들은 그저 그림이 좋아서 그림을 감상하기 위함이 아니라 은밀한 거래 혹은 자신들의 재산 증식 수단으로 그림을 이용하곤 합니다. 앞서 언급한 사이토 료에이 회장처럼 자신만의 사유재산으로 여기며 다른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는 기회 조차 박탈해 버리곤 합니다. 작가는 이런 명화라면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엔딩도 그런 주제 의식을 보여주며 끝납니다.

 

   "화가는 천재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과학의 진화에 선구자가 필요하듯이 그림도 또한 느닷없이 탄생하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들이 그림의 손실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림을 단순히 감상물로서 사랑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림이 진화의 물증이기 때문이기도 한 겁니다. 우리들은 고작해야 자신이 살아 있는 80년 남짓한 시간밖에 의식을 갖고 있지 않으니 자신들이 시대의 부산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600년의 흐름 속에서 보면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분명히 시대가 보입니다. 거장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그림이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는 것은 사실은 그림의 완성도 때문이 아니라 시대를 그림 속에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인 겁니다. 그림 속에는 언어라는 비문화적인 필터를 거치지 않은, 시대의 어느 순간의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화가는 시대를 남기는 일에 생명을 전부 불태우기 때문에 슬픈 겁니다. " (p.327)

 

2013. 10. 06.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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