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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약 - 프랑수아즈 사강의 환각 일기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베르나르 뷔페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흔들리는 청춘에게!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여주인공 조제는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입니다. 그녀는 좁은 방에서 할머니가 주워 온 헌책을 읽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조제'라는 이름은 그녀가 좋아하는 프랑스와즈 사강의 소설 속 여주인공의 이름을 따 온 것입니다.
프랑스와즈 사강은 프랑스 문단에서 작은 악마, 스캔들 메이커 등으로 불리며 그녀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만들어 프랑스 뿐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작가입니다. 그녀 또한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따 '사강'이라는 필명을 만든 것으로, 그녀의 본명은 프랑수와즈 쿠레입니다.
그녀는 두 번의 결혼과 이혼, 도박, 자동차 경주, 약물중독 등으로 '사강 스캔들'이라는 말을 낳을 정도로 자유분방한 생활을 했습니다. 남자 레이서와 레이싱걸로 대표됐던 자동차 경주, 하지만 최근에는 스피드를 즐기는 여성 레이서들도 자주 만날 수 있는데 그녀는 이보다 훨씬 전부터 자동차 경주를 즐겼다고 하니 정말 흥미로운 인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동차 경주를 즐겼던 그녀는 22살에 엄청난 교통사고를 당하고 치료를 받게 되는데, 이때 통증을 잊기 위해 처방받은 모르핀에 중독되어 전문 의료 시설에서 약물중독 치료를 받기도 하지만 평생 약물중독에서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1957년 여름, 교통사고를 당한 나는 석 달 동안 불쾌한 통증의 포로로 지내야 했다. '875'(팔피움)라는 모르핀 대용약제를 매일 처방받을 정도였다. 석 달 뒤에는 약물중독 증세가 심해져 결국 전문 의료 시설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 입원 기간은 짧았지만 그때 일기를 썼고, 며칠 전 그 일기를 우연히 발견했다. (책 속에서)
『독약』은 프랑수아즈 사강이 약물중독으로 전문 의료 시설에 입원했을 때 쓴 일기를 엮은 에세이입니다. 그녀의 소설을 읽다보면 슬픔, 우울, 불안, 방황 등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데 이 에세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20대의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약물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신세가 당연히 그런 감정들을 불러 일으켰을테죠. 문득 궁금해 집니다. 그녀가 이런 저런 사념에 잠기지 않고 마냥 행복하고 즐거웠던 때가 과연 언제였을까요? 어쩌면 열여섯 살 소녀였을 때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열여섯이었다. 열여섯이던 시절이 있었다. 열여섯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젊은 그 자체라고 믿는 나는, 나는 늙지 않았다. 실은, 나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p.56)
『독약』은 피카소, 샤갈, 달리와 함께 20세기 화단을 이끈 대표 화가 베르나르 뷔페의 삽화가 함께 실려 있습니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이 일기를 베르나르 뷔페에게 보여줬고, 이 일기를 본 뷔페가 기꺼이 삽화를 그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강의 글에 그의 그림이 더해지자 사강 특유의 우울하고 고통스럽고 허무한 감정들이 더욱 살아 움직입니다. 71세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베르나르 뷔페 또한 꽤 우울한 화가였나 봅니다. 그의 그림에서도 비슷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
2013. 07. 28.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