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
다니엘 포르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페이지마다 등장하는 죽음 하나! 작가는 왜 이토록 죽음에 집착하는 것일까요?

소설을 쓰면서 스스로 자신의 소설에 제약을 거는 작가들이 더러 있습니다. 『임금 인상을 요청하기 위해 과장에게 접근하는 기술과 방법』을 쓴 조르주 페렉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한 문장으로만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으며, 그 규칙을 충실히 따릅니다. 다니엘 포르는 소설을 쓰면서 매 페이지마다 죽음 하나씩을 등장시키기로 합니다. 이 소설은 209페이지까지 있으니, 적어도 209개의 죽음이 등장해야 하는데 과연 죽음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할 수 있을까요?

그의 곁에는 늘 죽음이 맴돌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부고가 끊임없이 들려오거나 누군가 죽는 모습을 목격하고, 연쇄 살인 사건에 연루되기도 합니다. 혹은 이미 죽은 것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유명 가수나 작가들의 이름이 등장하기도 하고, '신'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신'도 죽었냐고 반문하시는 분들 계실텐데, 니체의 그 유명한 말을 기억하시는 분들도 많으실겁니다. "신은 죽었다." 나무도 이미 죽은 것들 중 하나입니다. 종이가 바로 그 죽은 나무의 산물이니까요.

원래 작가는 국제적인 광고 회사인 M&C Saatchi. GAD를 설립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소설 곳곳에서 카피라이터의 기발한 상상력과 말장난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이토록 죽음에 집착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주인공의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난 내 주위에서 한동안 아무도 죽지 않으면 불안해."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운이 좋은 셈이었다. 최근에 나를 둘러싸고 연이어 일어나는 일들과 그에 수반된 감정의 기복에 비추어 볼 때 난 우울할 이유가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시작으로 마리 아녜스의 연인, 발타자르, 서인도제도인 또는 르 블레로 등 죽음이 계속 나를 따라다녔으니까. 이제 머지않아 내 인생에 불운이 끼어들 틈은 더이상 없을 터였다. (p.41)

나는 내게 할당된 우연한 죽음이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그만큼 더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바보같이 되물었다. (p.42)

여느 사람들이라면 주변에서 끊임없이 죽는 사람들이 생기면 자신 또한 그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는 생각에 우울해 하거나 두려워할텐데, 이 주인공은 오히려 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씩 죽음을 맞이할 때, 그 죽음이 자신을 빗나갔다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는 전통 추리물을 패러디 했다고 합니다. 전통 추리물을 즐겨본 편이 아니라 어떤 것을 염두에 둔 패러디인지는 모르겠지만, 표지와 '포르'라는 작가 이름을 보는 순간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검은 고양이」와 '에드가 앨런 포'입니다. 작가의 이름에 대한 다른 언급이 없기 때문에 본명인지 필명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에드가 앨런 포를 오마주했다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아울러 그가 만든 광고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해 집니다.

2012. 10. 21. by 뒷북소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