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김희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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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데 산티아고,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는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서부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약 800㎞의 순례길로, 카미노는 스페인어로 '길'이라는 뜻이다. 과거 카톨릭 교도들이 순례를 위해 걸었던 이 길은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알려져 있으며,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 이 길을 걷는다. 파울로 코엘료는 이 길을 직접 순례하며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순례자』를 펴내기도 했다. 하루 평균 25㎞씩 35일을 꼬박 걸어야 하는 이 험난한 길을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17년째 직업 기자 생활을 하고 있는 저자 김희경은 2008년 4월 11일,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 첫발을 디딘다. 그녀는 34일동안 카미노를 걸으며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는 이유를 찾는다.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떠난 마틴은 혼자가 되는 두려움에 맞서기 위해 길을 나섰다고 했다.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혼자 휴가를 보내게 된 마농은 새해를 맞으며 카미노를 혼자 걷겠다고 결심했단다. 누가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면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는 애런은 행복을 가로막는 마음속 장벽을 제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어쩌면 그녀는 자신이 카미노를 걷는 이유를 모르는게 아닐까. '살아 있는 동안 하고 싶은 일 100가지' 리스트 중에서 세번째로 꼽지만 사실은 하고 싶은 이유를 몰라서 다른 사람들에게서 찾으려고 하는게 아닐까.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저자가 만났던 마농처럼 겁이 많은 사람이다. 말과 사람이 익숙한 국내는 잘 돌아다녀도 다른 나라로 나가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책 속의 사람들을 보면 언제나 자신감이 넘친다. 새로운 곳을 둘러본다는 설레임만 가득할 뿐 두려움 같은 것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나 그녀는 솔직하다. 과연 이 험난한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을까 걱정하고,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도 경계한다. 그러나 이 길은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이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때론 차 한잔의 호의를 베풀기도 하고, 배낭 메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혼자이고 싶을 땐 멀찍이 떨어져서 걷다가도 혼자 걷기 힘들 때는 길동무가 돼주기도 한다. 또 노란 화살표를 따라 그저 걷기만 하기 때문에 갈림길에서 피곤하게 고민할 필요도 없다. 다른 사람들의 속도는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그저 자신의 속도에 맞춰 걸으면 며칠 후면 또다시 마주치게 된다. 마농처럼 겁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도전해 볼만한 순례길이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지만 세상엔 나 한 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누구도 갈 수 없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고 믿는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완벽해 보이는 운명을 흉내 내려 안달하지 않고 나 자신의 불완전한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했다. 카미노를 걸었다고 해서, 어떤 대단한 경험을 했다고 해서 사람이 저절로 달라지진 않는다. 우리는 다만 변화하기로 '선택'할 수 있을 뿐이지 않을까. 대개의 변화는 늘 느리게, 알아차리기 힘들게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속도가 아니라 나 자신의 속도였다. 내 속도에 맞지 않을 다른 지름길을 꿈꾸던 백일몽에서 빠져나와, 느리더라도 단단하게 한걸음씩 발을 내디뎌야 했다. (p300)  


   카미노처럼 그저 노란 화살표만 따라 걷기만 한다면 우리 인생도 얼마나 편할까. 그러나 그저 걷기만 하는 카미노도 험난하기는 마찬가지다. 과연 끝까지 걸을 수 있을까, 제대로 준비를 했을까,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런 저런 이유로 걱정이 많다. 그러나 길 위에서 불쑥 만난 사람들을 통해 도움도 얻고 즐거움도 나눌 수 있다. 화살표가 없어 불안한 우리 인생도 예정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며 즐기면 되지 않을까.

09-72.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2009/05/3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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