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기별] 서평을 써주세요

작가 김훈이 보인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p13)

   언제부터인가 그의 작품은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그의 새 산문집의, 첫장의, 첫 문장을 읽자마자 그냥 덮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게 얼마만에 느껴보는 감정인지.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아무리 읽어도 채워지지 않는 느낌들, 아무리 읽어도 와닿지 않는 문장들. 분명 같은 책을 읽었는데, 다른 이들은 어쩜 저런 느낌들을 가질 수 있을까. 그래서 내 감정이 고장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잃어버렸다고만 생각했던 그 감정들이, 그의 단 한 문장만으로 되살아났던 것이다.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다음날, 마음을 가다듬고 정면으로 마주한 「바다의 기별」. 낯설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그의 문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길게 늘어지는 그의 문장을 한번쯤 맛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겉옷만 갈아 입었을 뿐, 그의 문장은 여전했다. 

   어떤 이들은 그의 문장이 싫다고 했다. 사막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황량하고 건조해서 싫다고 했다. 하지만 난 그의 문장을 좋아한다. 그의 문장은 마치 바람 속에 섞여있던 모래가 눈 속을 파고드는 느낌과 같다. 그 건조함 속에 숨어있는 날카로움, 내가 가장 닮고 싶은 문장이다.
   이 책 속에는 그의 문장에 대한 이유 혹은 고백이 담겨져 있다. 그의 문장이 왜 이런 모습을 띄게 됐는지, 그가 왜 이순신을 노래했고, 왜 시를 쓰지 않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문장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궁금해 할 것들을 서슴없이 들려주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 감사해하며 책을 읽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그가 기자생활을 할 때 만났던 박경리와의 일화가 기억에 남는다.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는 것이어서, 30년이 지난 무덤가에서는 사별과 부재의 슬픔이 슬프지 않고, 슬픔조차도 시간 속에서 바래지는 또 다른 슬픔이 진실로 슬펐고, 먼 슬픔이 다가와 가까운 슬픔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인데, 이 풍화의 슬픔은 본래 그러한 것이어서 울 수 있는 슬픔이 아니다. (p23)

   조금씩 아껴가며 읽던 책이 난리가 났다. 수많은 포스트잇들이 책장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래알처럼 후벼파는 문장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럴 때마다 잠시 책을 내려놓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포스트잇을 붙였다. 한동안 그의 문장들로 인해 후유증에 시달리겠지. 또다른 문장들을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소설을 쓴다는 것은 불완전한 언어로 불완전한 세계에서 사는 불완전한 인간에 대해서 쓴다는 것입니다. 저의 소설은 대부분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p167)

2008/12/1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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