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 뜨는 여자
파스칼 레네 지음, 이재형 옮김 / 부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베르메르의 그림과 이자벨 위페르 주연의 영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한 권의 책이 있다. 『레이스 뜨는 여인』, 문득 얇은 책 속에서 이 가을에 어울리는 로맨틱한 이야기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르메르의 그림 속 여인을 꼭 닮은 한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뽐므. 그녀에게는 "손님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OK"라는 어머니가 있고, 열여덟살이 된 그녀는 어머니를 떠나 파리에서 미용사를 하고 있다. 뽐므는 같은 미용실 언니인 마릴렌과 친하게 지낸다. 마릴렌의 친구도 함께 만나고 바닷가로 여행도 떠난다. 그러나 마릴렌은 뽐므를 바닷가에 홀로 남겨둔채 떠난다. 
  혼자 남은 뽐므는 에므리라는 청년을 만나게 된다. 그는 박물관장을 꿈꾸는 학생으로 방학을 이용해 부모님의 성이 있는 곳으로 잠시 내려왔다고 한다. 서로에게 첫눈에 반한 그들은 함께 지내며 사랑을 키워 나가려 한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마릴렌이 그녀 곁을 떠난 것처럼 에므리도 이별 선언을 한다. 뽐므는 말없이 그 이별을 받아 들인다.
   이쯤되면 뽐므의 사랑이 그다지 깊지 않았을거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에므리와 헤어진 뽐므는 거식증을 앓으며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고 보다못한 뽐므의 어머니가 에므리에게 편지를 쓰게 되고, 그 편지를 받은 에므리가 뽐므를 만나러 온다. 뽐므를 만나러 온 에므리는 뽐므에게서 한가지 대답만을 듣길 원했다. 에므리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뽐므는 그가 듣길 원하는 대답을 해줬다. 그녀에겐 에므리가 아닌 다른 남자가 있었다고.

   그럼 여기서 잠깐! 앞으로 돌아가 보자. 
   그녀는 왜 어머니 곁을 떠났을까? 그녀는 "뭐든지 OK"라는 어머니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매사에 수동적인 사람이었다. 다른 일을 찾아보려고 하지도 않을 뿐더러 하고 있는 일에서조차 지나치게 수동적인 자세를 취했다. 
   다음으로, 마릴렌은 왜 뽐므 곁을 떠났을까? 마릴렌이 생각하기에 뽐므는 마릴렌보다 어려서 예쁘다 뿐이지 자신보다 나은 구석이 아무것도 없는 여자였다. 그런 여자에게 단지 어린 외모 때문에 남자들에게 밀린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에므리는 왜 뽐므에게 이별 선언을 했을까? 이것은 가장 쉽다. 비록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을지 모르나 그에게 그녀는 평범한 여자였다. 그 평범함은 예비 박물관장을 꿈꾸는 학생과 세상 물정 모르는 미용사의 벽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이별은 어찌보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나 할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뽐므와 사람들 간에는 벽이 존재했지만 상대방만 느꼈을 뿐 뽐므는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그녀의 거식증은 무의식적인 발로가 아니었을까. 그녀는 에므리가 찾아왔을 때에야 비로소 그 벽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에므리에게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을지도 모른다. 비로소 사람들과의 소통 방법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기대했던 것처럼 로맨틱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서 인상적인 작품이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로맨틱한 일을 만나게 되는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안타깝지만 뽐므와 마릴렌처럼, 혹은 뽐므와 에므리처럼 만나서 헤어지는 일이 훨씬 더 많다.
   어떤 사람들은 이 작품을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정리하고 싶지 않다. 굳이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사람 간의 관계와 소통을 되짚어 보게 만드는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08-095.『레이스 뜨는 여자』 2008/09/24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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