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박영난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보통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셜록 홈즈와 포와로가 맹활약을 펼치는 탐정물들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양상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방각본 살인사건』이나 『비밀의 화원』처럼 역사추리소설들이 주목을 받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히가시노 게이고나 온다 리쿠처럼 개인사를 다룬 추리소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방황하는 칼날』처럼 최근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회문제와 결부시킨 추리소설도 있다. 『화차』 역시 그런 추리소설 중에 하나이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어느날 사라져 버렸다. 은행원인 약혼자가 그녀의 신용카드를 새로 만들던 중 그녀가 개인파산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약혼자는 변명이든 무엇이든 그녀에게 듣고 싶었다. 그래서 형사인 먼친척에게 그녀의 행방을 찾아줄 것을 부탁한다.
혼마는 얼마전 범인을 쫓다가 다리에 총을 맞고 현재는 휴직 중이다. 그런 그에게 죽은 아내의 사촌의 아들이 약혼녀를 찾아 달라고 부탁한다. 자신의 과거가 밝혀져 사라진 그녀를 쉽게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휴직 중이라 형사수첩을 사용할 수 없지만 그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의 이름은 세네키 쇼코, 누구나 한눈에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미인이다. 제일 먼저 그녀의 직장을 찾아간 혼마는 그녀가 취직할 때 제출한 이력서가 허위로 작성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개인 파산을 한 과거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이 두려워 그랬을거라 생각한 그는 파산 당시 그녀의 담당 변호사를 찾아가게 되고 그곳에서 그녀가 세네키 쇼코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과연 그녀는 누구일까? 어떤 사연으로 남의 이름과 호적을 빌려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진짜 세키네 쇼코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녀의 흔적을 추적하던 혼다는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엄청난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사라진 그녀는 자신의 신분이 밝혀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이 위장할 수 있는 또다른 인물을 찾고 있을 수도 있다.
진짜 세네키 쇼코가 파산한 이유는 맨처음 아무 생각없이 쓰기 시작한 신용카드 때문이었다. 수입보다 신용카드로 나가는 지출이 커지자 여러 개의 카드를 만들어 돌려 막기 시작했고, 그 카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이번에는 사채 빚을 얻어 갚았던 것이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빚이 결국은 그녀를 개인파산이라는 구덩이로 밀어 넣었다.
가짜 세네키 쇼코에게 또다른 신분이 필요했던 이유 역시 빚 때문이었다. 그녀가 고등학생 때 그녀의 아버지는 가족들이 살 집을 사기 위해 주택대출을 받았다. 그 주택대출이라는 것이 원래 가지고 있는 돈이 적어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얼마전 우리나라에서도 집을 담보로 최대 70%까지 대출해 주지 않았던가. 그렇게 빌린 대출금을 갚다보니 가족들의 생계가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그녀의 아버지는 사채 빚을 얻어 은행 대출금을 갚았고, 사채 빚을 갚기 위해 또다른 사채를 빌렸던 것이다. 아무리 아버지가 빌려 쓴 것이라 해도 사채업자들은 딸인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았던 것이다.

『화차』에는 돈 때문에 인생을 망친 두 여자가 등장한다.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이 돈 때문에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가를 엿볼 수 있다. 한편 미야베 미유키는 그것이 그들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한다. 만약 그들이 개인파산이라는 제도를 알았다면, 빚에 쫓겨 도망을 다니고 자살을 하고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훨씬 적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설사 그런 제도를 알았더라도, 가족이 진 빚을 대신 갚을 의무가 없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한 개인이 맞서기에는 너무나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녀는 개인이 빚을 질 수 밖에 없도록 만들고, 그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것은 사회구조를 꼬집고 있다.
그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인 빚을 진 사람들을 다룬 이야기라 여기면 안된다. 그래서 더더욱 섬뜩한 것이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우리들이 그 당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말이다.
표지를 가만히 들여다 보라. 정확히 얼굴을 알 수 없는 한 여자가 기분 나쁘게 웃고 있다. 그녀는 바코드 속에 갇혀 있다. 이미 우리도 그 바코드 속에 갇혀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 얼굴의 주인이 바로 우리가 되어 언제 화차에 올라탈지도 모른다.

* 화차(火車) : 생전에 악행을 한 망자를 태워 지옥으로 옮기는 불수레

2008/07/09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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