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맨
남궁유 글.그림 / 샘터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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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인간>, 어린 시절 사소한 호기심 때문에 온몸이 기름으로 변한 소년이 있다. 기름인간이 된 소년은 한곳에 머물 수가 없어 길을 나선다. 기름인간은 어항 속의 물고기를 만질 수도, 예쁜 꽃 향기를 맡을 수도, 친절을 베푼 사람에게 감사를 표시할 수도 없다. 그의 손이 닿는 것은 무엇이든지 더러워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메스꺼운 냄새까지 난다. 그는 추운 날씨에도 불 가까이 갈 수가 없다.

 

당신도 당신 삶에 숙명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그런 일이 적어도 몇 가지쯤은 정해져 있는지도 모르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닿을 수 없다거나 번번히 실패라는 기분을 맛보는 것 말이야. 그 뒤로 나는 일정한 규칙을 정해두고 이것은 해도 되는 것, 이것은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것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두었어. (p. 56~57)

 

숲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있다. 그 마을에는 겨울이라는 것이 없다. 그래서 숲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 자라기만 한다. 결국 숲으로 둘러싸인 마을은 고립되고 만다. 마을의 어느 누구도 숲으로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수레바퀴를 만드는 남자>네 가족이 마을을 떠난다. 점점 커지는 숲 때문에 더이상 수레바퀴가 지나갈 수 있는 길조차 없어졌기 때문이다. <수레바퀴를 만드는 남자>네 가족이 마을을 떠나던 날, <기름인간>이 이 숲에 도착한다.

 

<다리가 튼튼한 남자>는 마을과 숲을 오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어린 시절 숲에서 길을 잃어 헤맨 덕분에 숲의 지형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것이다. 숲으로 약초를 캐러간 남자는 검은 얼룩을 발견하고는 호기심에 흔적을 따라간다. 흔적의 끝에서 만난 <기름인간>, 남자는 괴물이라도 만난 것처럼 마을로 도망을 친다. 얼굴에 <기름인간>의 흔적을 얻어 돌아온 남자는 자신이 괴물의 저주 때문에 곧 죽을거라며 매일 술에 취해 바보처럼 살아간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기름인간>에 대한 공포와 증오를 심어준다.

 

<말머리 사나이>는 영웅이 돼서 돌아온다고 큰소리를 치며 전쟁터로 떠났지만 공은 커녕 사소한 편지를 배달하고 잡일을 거드는 일을 했다. 전쟁이 끝나고 자신이 친 큰소리 때문에 그냥 돌아갈 수 없었던 사나이는 말머리 가죽을 머리에 쓰고 마을로 돌아왔다. 온 마을이 <기름인간> 때문에 들썩이자 이번에도 그는 <기름인간>을 잡아 오겠다며 큰소리치며 숲으로 향한다. 그러나 사실 그는 두려웠다. 그냥 숲에서 시간만 떼우다가 저녁이 되면 마을로 가 또다시 큰소리를 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잊기 위해 큰소리를 치는 그 앞에 <기름인간>이 나타났다. 사나이는 <기름인간>을 안으며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기름인간>은 '더러워질거야'라는 말 한마디를 하고 숲으로 사라진다. 사나이는 비로소 <기름인간>의 마음을 눈치챘다. 정말 사악하고 나쁜 괴물이었다면 '더러워질거야' 같은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털실남자>의 부모님은 그를 집안에만 꽁꽁 숨겨 두었다. 걱정이 컸던 탓인지 부모님이 함께 돌아가신 후 <털실남자>는 집 밖으로 나온다. 멀리있는 산에서 눈이 내리는 것을 본 <털실남자>는 눈을 좀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길을 나선다. 그에게 여행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울퉁불퉁한 길과 여기저기 뻗은 가지들 덕분에 그의 몸에서 털실들이 풀려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눈을 보고 싶었다. 자신의 몸에서 모든 털실들이 풀려나가는 것을 보고도 눈을 좀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털실남자>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우리들은 모두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각자의 방식대로 서로의 모습을 해석하기도 한다. <기름인간>은 <말머리 사나이>가 소리를 지르며 자신을 부둥켜 안은 것은 너무 외로웠기 때문에, 고독의 몸부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러워진다'는 것보다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에 자신을 안은 것이라고 여겼다. 온전히 서로의 모습이 되어 보지 못한다면, 완전히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본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래도 노력은 해 보아야겠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처럼 기름값이 치솟는 때면, <기름인간>의 몸값도 오르는게 아닐까. 계속 몸에서 기름이 흐르고 있는 <기름인간>은 오히려 환영 받아야 되는 것이 아닐까.

 

항상 바람이 부는 꿈을 꾼다. 라는 것과

꿈속에서는 항상 바람이 분다. 라는 것은 다른 의미인가? (p. 87)

 

책을 읽는내내 생각해 보았다. 아마 같은 의미일 것이다. 표현만 다를 뿐.

<기름인간>이나 <말머리 사나이>, <털실남자>가 모습만 다를 뿐, 모두 같은 인간인 것처럼 말이다.

 

2007/11/27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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