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큼의 애정
시라이시 가즈후미 지음, 노재명 옮김 / 다산책방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자꾸 예쁜 표지의 책들에 눈길이 간다. 물론 하나같이 단조롭고 딱딱했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예쁘게 표지를 장식한 책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긴 한다. 그런 표지들을 보면서 과연 이 표지는 그저 예쁘기만 한 표지인가, 아니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얼마만큼의 애정』의 표지를 보면서 이 책의 주인공은 분명 실연의 아픔을 겪은 여성일 것이라 생각했다. 아직 눈물이 맺혀있는 한 여자, 멀리서 살짝 얼굴을 돌리고 있는 한 남자, 그리고 흐드러지게 날리는 하얀 꽃. 벚꽃이 지는 봄날에 헤어졌겠구나, 그러나 아직은 서로를 잊지 못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제대로 한방 맞았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남자였다. 봄이 질 무렵 여자 친구로부터 일방적으로 배신을 당한 한 남자가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헤어진 후 5년 동안 무려 100번이나 우연히 마주쳤다. 5년 동안 100번이면, 1년에 20번씩, 2주일에 한번 꼴로는 우연히 마주쳐야 한다. 그런 일이 가능하기나 할까? 

소재는 나름 신선했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흔해빠진 연애소설로 흘러갔다. 우리나라 트렌디 드라마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 가족 때문에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지기로 결심한 여자, 결국 오해가 풀린 남자가 여자를 다시 찾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들은 조금 달랐다. 서로가 정말 사랑했다면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누가 배신을 하든지 신경쓰지 말고 사랑을 계속했어야 한다. 남자는 단순히 가족의 탓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못한 자신을 탓한다.

 

인간은 무언가를 손에 쥐고 있을 때에는 그것을 언제 잃게 될지 몰라 두려워한다.

그런 공포감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는 수밖에 없다. (p. 11)

 


안헤도니아, 오래전에 읽은 책에서 본 단어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시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한 시절을 맞이하지만 주인공은 오히려 불안에 떤다. 지금의 최고의 시점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하강 곡선을 그리게 될 것이고, 또 언제가는 이 행복이 끝날 것이라는 불안감. 이 책의 주인공도 이런 감정을 경험하고 있다.

 

나를 걱정해주는 존재도 소중하지만 그와 비슷한 정도로, 혹은 그 이상으로 나에게 걱정을 끼치는 존재도 소중하다.

인간은 누군가에게 걱정을 끼칠 때보다 상대를 걱정할 때 행복을 느끼는 존재다. 누군가를 신경 쓴다는 건 자기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역으로 말하면 인간이란 누군가를 신경 써줄 때, 처음으로 자기 마음에 여유가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p. 105)

 

살다보면 그런 때가 종종 있다. 나를 걱정해주며 하나하나 챙겨주는 사람보다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만 만드는 사람. 전자는 쉽게 마음이 가기는 하지만 계속되다 보면 귀찮아지고 싫증이 나버리기도 한다. 후자는 고민을 하게 만든다. 이것은 어떤 감정일까. 다가가기는 힘들지만, 쉽게 벗어날 수도 없다.

밋밋한 연애소설이었지만, 연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준 책이었다.

 

2007/10/27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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