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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에스프레소 꼬레아노 - 이탈리아 여자 마리안나와 보스턴에서 만나 나폴리에서 결혼한 어느 한국인 생물학자의 달콤쌉쌀한 이탈리아 문화 원샷하기
천종태 지음 / 샘터사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La dolce vita(달콤한 인생)을 위해
저자 천종태, 광주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에서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생물학을 공부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이탈리아에서 유학 온 마리안나, 馬여사를 만나 평생 함께 하기로 약속하고 다시 대서양을 건너 이탈리아로 향한다. 그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은 '바다의 나라(Paese d' o mare)' 나폴리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너무나도 부러웠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이 '나폴리'라는 멋진 도시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 때문이었다. 그는 내가 가지지 못한 용기를 가지고 있다. 그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했지만, 유학을 가서는 생물학을 공부했다. 넓게 보면 둘다 '과학'의 한 분야이지만, 사실 그 속성은 다르다. 책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그가 생물학을 공부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는 일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의 용기를 건 횡단은 한번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탈리아 여자와 결혼한 그는 미국도 한국도 아닌 대서양을 건너 이탈리아로 간 것이다. 그동안 영어로 의사소통을 해 온 그가 말도 통하지 않고, 음식도 맞지 않은 곳으로 가기 위해선 첫번째 선택보다 더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탈리아 여행기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삶이 등장해서 조금 당황했었다. 그러나 금새 내가 바보같은 기대를 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 사람이 아니라 삶을 찾아간 사람인데 여행기를 기대하다니. 「달콤 쌉쌀한 이탈리아 문화 원샷하기」라는 부제처럼 그는 이탈리아의 문화를 거침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잠시 이탈리아를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는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상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이탈리아의 뿌리까지 들려주고 있다. 오랫동안 그곳에 살았던 이탈리아인들이 들려주는 것과도 다르다. 그들에게는 그 현상들이 이미 몸에 베여있기 때문에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움베르코 에코가 이탈리아의 주간지에 연재한 글들을 모아 엮은 『미네르바 성냥갑』이라는 칼럼집이 있다. 이 칼럼집을 통해 에코는 다양한 모습의 이탈리아를 보여준다. 『카페 에스프레소 꼬레아노』는 에코의 칼럼집을 좀 더 친근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20년 동안 고국을 떠나있는 사람이 쓴 글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표현이 매끄럽다. 오랜만에 만나는 모국어와 고국의 문화가 낯설었을텐데, 어색함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내 마음대로 남이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는가. 하지만 이건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내가 오늘 스스로 다른 이를 사랑할 수 있을 뿐이다. (p. 255)
"인생이란 일이 터지는 것이다 (Life is what happens)."
결국 크고 작은 놀라움들이 여기저기 숨어있게 마련인데, 이런 일들을 인생의 양념거리로 생각해야지 거기에 휘둘려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p. 281)
인생을 그렇게 살고 싶다. 하루를 살더라도 남김 없는 열정에 살고 싶다. 내가 하는 일에, 또 나의 삶에 나의 모든 것을 태우고 완전연소를 하면서 살고 싶다. 생을 마치는 날, 내가 이 세상에서 가져갈 것은 어차피 아무것도 없으니까. (p. 327)
2007/09/06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