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가의 오후 - 피츠제럴드 후기 작품집 (무라카미 하루키 해설 및 후기 수록)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무라카미 하루키 엮음, 서창렬 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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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소설가이면서 여러 작품을 번역해서 발표한 번역가이다.

그가 처음으로 번역한 책은 피츠제럴드의 소설집 마이로스트시티였고, 몇 권의 소설집을 엮어 낸 후에 장편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했다. 내가 피츠제럴드와 개츠비를 알게 된 것도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를 통해서였다. 이 소설에는 개츠비를 애정하는 인물이 한 명 등장하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개츠비를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사람이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하고 그는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듯이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10월의 일이었다.


나가사와 선배는 잘 알면 알수록 묘한 사람이었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기이한 사람과 만나고, 서로 알고, 스쳐 지나왔지만, 그처럼 기이한 사람을 만난 적은 아직 없다. 그는 나 같은 사람은 따라잡을 수도 없을 정도의 굉장한 독서가였는데, 죽어서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에는 원칙적으로 손도 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책 외에는 신용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현대 문학을 신용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야. 다만 시간의 세례를 받지 않은 걸 읽느라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것뿐이지. 인생은 짧아."


_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58~60쪽



나의 책읽기는 『위대한 개츠비』를 읽은 후부터 달라졌다. 나 역시 이전에는 현대문학을 신뢰하지 않았고, 특히 고전이 아닌 외국 현대문학은 읽지 않았는데 이때부터 기준이 달라져서 읽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작가의 오후에는 하루키가 고른 8편의 단편소설과 5편의 에세이가 실려있다. 이 조합을 어떻게 안 읽을 수가 있을까. 나는 이 조합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좋아하는 작가를 향한 애정을 자신의 소설을 통해서든, 번역을 통해서든 맘껏 뽐낼 수 있는 하루키가 부럽다. 


✏️

이 책을 위해 내가 고르고 옮긴 작품은 주로 그가 말 그대로 '자기 몸을 축내며' 살았던 암울한 시대에 내놓은 작품들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깊은 절망을 헤치고 나아가려는, 그리고 어떻게든 희미한 광명을 움켜쥐려는 긍정적인 의지가 줄곧 보인다. 그것은 아마도 피츠제럴드의 작가로서의 강인한 본능일 것이다. 자기 연민이나 자기기만을 능가하는 힘을 지닌 것이다. 이 같은 그의 생각을 이 책에 수록된 작품에서 독자가 느끼고 읽어낼 수 있다면, 번역자로서 이보다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_ 하루키, 3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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