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무너뜨린 정신의학사의 위대한 진실
수재나 캐헐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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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저자 수재나 캐헐런은 스물네 살에 삶을 뒤흔드는 오진을 경험한다. 그녀의 실제 병명은 '자가면역 뇌염'이었지만 의사들은 '조현병'이라고 진단했다. 정신병원에 입원할 뻔했지만 한 의사 덕분에 진단을 정정 받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그녀는 궁금했다. 자신은 운 좋게도 유능한 의사를 만나 오진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자신과는 달리 오진의 희생자가 된 환자가 있지 않을까? 그러던 중 그녀는 스탠퍼드 대학의 교수였던 데이비드 로젠한 이 발표한 실험에 대해 알게 된다.


정신질환이란 대체 무엇일까?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을 구별하는 문제, 심지어는 정신질환을 정의하는 문제조차도 그저 의미를 따지는 문제를 넘어선다. 집중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 어떤 전문가들이 여러분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게 되느냐를 넘어서는 문제다. 이런 질문에 정확히 대답하느냐 아니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즉 약물을 어떻게 처방할지, 어떻게 치료할지, 보험 처리를 어떻게 할지, 병원에 입원시켜 어떻게 감시하고 누구를 감금시킬지 정하는 기준이 된다. 의사들이 나를 정신질환이 아니라 기질성 질환이라고 진단했을 때, 그 말은 내가 다른 의학으로부터 격리되지 않고 목숨을 살리는 치료를 받게 되리라는 뜻이었다. _ 23쪽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까?" 데이비드 로젠한은 이런 의문을 품고 실험을 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당시만 해도 객관적이고 일관된 척도 없이 오직 의사의 판단으로만 정신질환을 진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젠한은 8명의 가짜 환자를 정신질환자로 위장해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다음 그 실험 결과를 세계적인 학술지인 〈사이언스>에 게재했다. 그럴 것이라고 짐작만 하고 있던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고, 그로 인해 정신의학은 큰 위기를 맞이한다.

이 실험에 참여한 가짜 환자들의 행방을 추적하던 캐헐런은 놀라운 사실과 마주한다. 로젠한이 원하는 결과를 얻고자 실험 결과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로젠한을 존경해서 그의 실험을 추적하던 캐헐런에게는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신의학자도 아닌 로젠한은 왜 결과까지 조작하면서 이런 논문을 발표한 것일까.


데이비드의 명성은 많은 업적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빛나는 하나가 있습니다. <사이언스>에 발표한 그의 글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의 첫 문장은 그의 영원한 정체성인 예시바 학생이 경전을 낭독하듯이 그렇게 읽어야 합니다.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이 존재한다면…… 대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까?"_429쪽


이 책에는 켄 키지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자주 언급된다. 켄 키지의 소설 역시 정신병동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가짜 환자 맥머피가 등장한다. 이 소설은 정신의학이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들보다 사회의 편에 서서 사용되고 있는 방식에 근본적인 불신을 보여주며, 정신의학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강화시켰다고 한다.

미국의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국가가 관리하는 시설 대신 지역사회와 가정으로 돌려보내서 적응할 수 있도록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정신병원 수만 줄어 들었고 그들은 오히려 지역사회에서 방치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신질환 진단도 바뀌고 있지만,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늘어가고 있다. 과잉진단과 과잉처방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진단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다. 정신질환은 아주 작은 차이만으로도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캐헐런은 정신의학의 한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돌봄 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로젠한의 실험을 추적하는 과정 자체가 흥미롭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지금의 정신의학 실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유익한 책이었다.


믿음은 정신 의학이 잃어버린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_4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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