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앨리 스미스 계절 4부작 1
앨리 스미스 지음, 김재성 옮김 / 민음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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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찾아오지 마요. 잔인한 세상이여, 안녕!

70년 동안 영국 여왕 자리를 지킨 엘리자베스 2세가 9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91세로 생을 마감한 서머싯 몸의 『케이크와 맥주(1930)』를 읽고 나니 현재의 영국 사회가, 조금 더 젊은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는 영국 사회가 궁금해졌다. 앨리 스미스의 『가을』에는 "지금의 영국 사회를 그린 '포스트 브렉시트' 소설"이라는 소개가 붙어 있다. (그래, 이 책이야! 내가 궁금했던 책!)

1993년 4월의 어느 화요일 저녁, 엘리자베스는 여덟 살이었다. "이웃이 어떤 의미인지 이웃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다음 말로 이웃 사람의 초상화"를 그려야 하는 학교 숙제를 하기 위해 엘리자베스가 이웃집을 방문하려고 하자 엄마가 옆집 노인은 늙은 호모라며 말린다. 엄마는 그가 했을 법한 이야기로 꾸며서 숙제를 제출하라고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한다. 굽히지 않는 엘리자베스 때문에 옆집을 방문해 노인에게 엘리자베스가 쓴 '우리 이웃 사람에 대한 말로 그린 초상화'를 읽어 달라고 부탁하는 엄마. 다음날 엘리자베스는 노인과 마주친다. 그의 이름은 '대니얼 글럭'. 그 후 그들은 우정을 나누는 '평생의 친구'가 된다.

우리는 때로 평생을 기다려서 평생의 친구를 만나게 된단다. 71쪽

언제나 뭐든 읽고 있으렴. 물리적으로 읽고 있지 않을 때도. 그러지 않고 어떻게 세상을 읽을 수 있겠니? 상수(constant)로 생각해. 88~89쪽

2016년 영국에서는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있었다. 투표 이후 사람들은 이전보다 투쟁적으로 변했다. 외국인들을 향해 유럽으로 돌아가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고, 일상 곳곳에서 전투적으로 부딪히기도 한다. 엘리자베스 역시 여권 하나를 만들기 위해 온갖 고난을 겪는다. 예전 같았으면 겪지 않아도 됐을 고난이다. 영국 사회는 변했지만 엘리자베스와 대니얼의 우정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비록 대니얼이 요양원에서 잠만 자고 있더라도.

최악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다. 다시. 세상이란 그런 것. 모든 것이 무너진다. 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13쪽

『가을』은 앨리 스미스의 독특한 글쓰기가 돋보이는 소설로 제목이나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으로 꾸민) 표지에서 느껴지는 서정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표현들이 성글다고 해야 할까.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책이라 다분히 영국적일 수밖에 없지만 나처럼 영국 밖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 이해하기에는 영국적인 정서가 너무 짙게 깔려 있다. 내가 이 글의 제목으로 빌려온 "잔인한 세상이여, 안녕. 나는 서커스에 들어가.(320쪽)"는 제임스 대런(미국 출신의 영화배우이자 가수라고 한다)의 팝송이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공감할 수는 없지만 왠지 멋져 보여서 가져왔다.

『가을』은 소문과 달리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소설(직전에 읽은 서머싯 몸과 비교되어서 일까?)이었는데, 『겨울』까지 읽어보고 판단해야 할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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