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라는 진지한 농담 -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품위를 지키는 27가지 방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이상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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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으로 '꼰대'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최근에 대학생 때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 적이 있었다. 대충 나이가 40대 초반으로 추측되는 교수님이셨다.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강의를 하셨다. 깔끔한 턱, 흐트러지지 않는 헤어스타일에 언제나 넥타이를 맨 모습이셨다. 그런 교수님께서 어느 날 강의 전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본인은 자신의 강의를 들으러 오는 학생들에게 언제나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몸단장을 하고 강의 자료를 준비를 한다고, 그게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그런데 학생들은 세수도 제대로 하지 않은 얼굴에 모자를 눌러 쓰고 대충 트레이닝복을 걸치고 슬리퍼를 신고 온다고, 적어도 강의를 들을 준비는 하고 오는 게 예의라고 말씀하셨다. 보통 다른 분들은 수업 시간에 모자 벗어라고만 말씀하시는데, 그런 화법으로 말씀하시니 다르게 느껴졌다.


여름에 레깅스에 크롭 티셔츠를 걸치고 출근하는 직원들을 몇 번 본 적 있다. 대학생 때 교수님처럼 어른스럽게 타이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하지는 못했고 그저 속으로 '저렇게 입고 출근하면 부모님은 아무 말씀 안 하시나'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요즘 세대들은 다르다, 꼰대 같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 요즘 세대들은 '예의'라는 걸 모르나? 나이 차이가 나면 또 얼마나 난다고. 그들보다 더 어려도 예의를 아는 어린 친구들도 많다고.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꼰대'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운동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자는 제 삶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자다. 칼 라거펠트, 361쪽


이 시대의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편안함만을 추구하고 우리 자신을 더 이상 관리하지 못하는데다, 이를 더는 결함으로 여기지 않고 일종의 진보로 포장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연애하고, 옷 입는 방식들이 그 점을 뚜렷이 증명해주고 있다. 363쪽


그래서 이 책에 끌렸다. "권위가 아니라 품위를 가진 진짜 어른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되어 있는 이 책을 읽고 나면 꼰대 소리 안 듣고 어른스럽게 이야기를 건넬 수 있는 팁을 얻지 않을까 해서. 꼰대 소리를 들어도 좋으나 이왕이면 안 듣는 게 더 효과적일 테니.

저자는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품위를 지키는 27가지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굳이 27가지로 정리한 이유는, 수학적인 측면에서다. 숫자 '28'은 '1+2+4+7+14'처럼 약수들의 합으로 이뤄진 완벽한 숫자다. 완벽함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완벽에 조금 못 미치는 '27'을 선택한 것이다. 또 "나아갈 방향은 직시하되 목표에 도달했다고 우기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완벽하다고 할 수 있다."(47쪽)


그가 말하는 덕목에는 현명함, 유머, 열린 마음, 권위, 데코룸, 친절, 부지런함, 관용, 감사함 등이 있는데, 그는 이 덕목들을 철학, 인문, 심리학, 문학 등 다양한 저술들을 언급하며 이야기한다. 이 책이 에세이가 아니라 '인문교양' 카테고리에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가 언급하는 덕목들을 개인적인 경험에 대입해 반추하면서 읽다 보니 빠르게 읽을 수 없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구나. 저자 덕분에 읽고 싶은 책들의 목록이 너무 많아졌구나.



격식 없이는 무격식도 없다. 내면 깊숙이 규칙을 받아들이고, 올바르고 적절한 행동을 오랜 시간 연습하며 체득한 사람만이 격식에 이곳저곳 변형을 가하며 즉석에서 응용할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규칙을 내면화한 자만이 힘들지 않게 규칙을 다루고, 규칙에 익숙한 자만이 그것을 우회하는 법도 안다. 늘 넥타이를 매던 사람이 옷깃을 풀어 헤치면 꾸밈없는 인상을 주지만, 항상 헐렁한 차림으로 다니던 사람이 양복을 입으면 변장한 원숭이처럼 어색하게 비치는 법이다. 규칙을 깨려면 먼저 규칙에 통달해야 한다.

이 원칙은 사회 전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사회에는 늘 데코룸과 자유방임주의가 적절하게 섞여 있어야 한다. 규칙을 지키는 이들이 상부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면, 그런 규칙을 깨는 하위문화도 존재해야 한다. 문제는 하위문화가 고급문화가 될 때 발생한다. 바꿔 말하면 반바지 차림에 코걸이를 한 채 출근하는 것이 사회의 다양성에 일조하는 까닭은 넥타이를 매고 따분한 색의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이들이 충분히 많을 때 한해서다. 화려하게 염색한 장발에 셔츠를 풀어헤친 판사가 법정에서 판결을 내리고 장관이 래퍼와 같은 요란한 차림으로 귀빈을 맞는다면 결국 무규칙이 규칙이 됨으로써 그 매력이 사라져버린다. 254쪽


가장 단순한 차원에서 친절은 타인을 '알아차린다'는 것을 뜻한다. (…) 우리에게는 사소한 일상에서도 사람들을 건성으로 대하지 않을 의무가 주어진다. 259쪽


한가한 시간이 줄어들수록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는 일도 어려워진다. 우리는 외적으로는 더 할 나위 없이 활동적이지만 동시에 정신적, 영적으로는 게으름에 빠질 수 있다. 353쪽


'만인의 연인'은 '만인의 또라이'이기도 하다. 3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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