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미술사 - 현대 미술의 거장을 탄생시킨 매혹의 순간들
서배스천 스미 지음, 김강희.박성혜 옮김 / 앵글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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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드가, <에두아르 마네와 그의 아내>, 1868-1869


질투는 예술가의 힘! 그들을 거장으로 성장시킨 라이벌들

이 그림은 1868년 에드가 드가가 절친 에두아르 마네 부부에게 선물한 부부의 초상화이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해 보인다. 드가는 마네의 아내 수잔이 드러나지 않도록 일부러 황톳빛 벽 뒤로 숨긴 것일까? 아니면 캔버스가 변색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 그림의 오른쪽, 그러니까 황톳빛 벽처럼 보이는 부분은 사실 그림에서 잘려나간 부분이다. 마네의 작업실을 방문한 드가는 누군가 칼로 그림을 잘라냈고, 게다가 칼날이 수잔의 얼굴을 관통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림을 들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드가는 마네가 자신에게 준 정물화를 마네에게 돌려보낸다. 드가의 그림을 훼손한 범인은 다름 아닌 마네였던 것이다.

마네는 왜 수잔의 얼굴을 칼로 잘라낸 것일까?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수잔은 남편의 표정을 볼 수 없지만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마네의 표정을 볼 수 있다. 마네의 시큰둥한 태도와 불만 가득한 표정, 아마도 마네는 감추고 싶었던 자신의 내면세계를 들켜버려서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자신의 얼굴을 칼로 그어버려야 했던 게 아닐까? 본인 입으로는 수잔의 얼굴을 만족스럽지 않게 그려서 잘라냈다고 했지만, 수잔의 초상화를 자주 그린 자신보다 드가가 훨씬 더 잘 표현했기 때문은 아닐까?

마네는 매력적이었고 온화했으며 대담했다. 사람들은 그를 자기편으로 만들고 싶어 했는데 드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초상화 작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7년간 드가는 마네와 가까운 친구 사이로 지냈다. 하지만 드가로서는 자신이 정말 원하는 만큼 마네를 알아갈 기회가 그때까지 없었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초상화 모델이 되어달라고 마네에게 부탁한 것도 어쩌면 조용히 경쟁적이던 우정 관계를 다지기 위한 방법, 또 누구보다 사교적인 사람이었던 마네의 보다 내밀한 삶을 좀 더 가까이서 들여다보기 위한 방법이었을 수 있다. 39쪽

드가의 초상화에 대해 마네가 화가 났다면 그것은 아마도 초상화를 훼손한 이유로 드는, 즉 수잔을 돋보이게 그리지 않았다는 미온적이고 표면적인 이유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최고조로 늘어난 위협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간단히 말해 드가가 마네의 결혼 생활, 그리고 그 속에 감춰둔 비밀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던 것이다.

마네가 그 그림을 칼로 그어버린 데는 어쩌면 자신과 모리조 간의 미묘한 상황 속으로 불쑥 침입한 드가에 대한 분노가 일부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또한 런던 여행을 제안했다가 불발되었을 때부터 높아졌던, 그러니까 드가가 더 이상 제자나 동료가 아닌 진정한 라이벌이자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근원적 의심이 마네를 자극한 것일 수도 있다. 마네가 수렁으로 빠져드는 동안에도 왕성히 나아가던 존재, 그게 드가였다. 게다가 드가는 마네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었고, 지나치게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이었으며, 마네의 인생에서 매우 중대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물론 결혼 생활에서 비롯된 좌절감이 마네의 분노에 불을 지폈을 수도 있다. 마네가 칼로 잘라낸 건 결국 수잔으로 특정되는 부분이었다. 드가의 초상화가 우울한 그 무엇, 대충 꿰맞춘 무언가를 떠오르게 만듦으로써 두 사람의 조합이 어쩐지 부끄럽게 느껴지게끔 했기 때문일까? 그림을 그어버린 마네의 행동은 혹 수잔과의 다툼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114쪽

드가의 그림을 그어버린 직후 분노를 가라앉힌 마네는 보다 부드럽고 보다 호의적으로, 드가의 초상화처럼 똑같이 피아노 앞에 앉은 수잔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는 마치 이렇게 말하고 싶은 듯했다. '봐. 이렇게 해야지.'

하지만 또 한편으론 마치 사과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116쪽

드가와 마네의 일화로 시작하는 『관계의 미술사』는 덕분에 상당히 흥미롭게 시작한다. 『 The Art of Rivalry 』이라는 원제처럼 이 책에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성장한 8명의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ㅡ 에두아르 마네 (1832.1.23~1883.4.30) vs 에드가 드가 (1834.7.19~1917.9.27)

ㅡ 앙리 마티스(1869.12.31~1954.11.3) vs 파블로 피카소(1881.10.25~1973.4.8)

ㅡ 빌럼 드쿠닝(1904.4.24~1997.3.19) vs 잭슨 폴록(1912.1.28~1956.8.11)

ㅡ 루치안 프로이트 (1922.12.8~2011.7.20 :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 vs 프랜시스 베이컨 (1909.10.28~1992.4.28 :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후손)

이 여덟 명의 이름만 봐도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는 예술가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이름을 알리고 사랑받는 작가라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고뇌했던 시간들이 있었으며,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스타일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거나 비난받는 시절도 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스타일의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하기도 하고, 때론 지나친 질투심 때문에 자기 한계 속에 갇히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요즘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마티스의 작품인데, 마티스와 피카소의 일화가 포함되어 있어서 더 흥미로웠다.

저자 서배스천 스미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예술 비평가로, 흥미 위주의 단 몇 페이지로 그들의 관계를 설명하지 않는다. 깊이 있어서 좋은 반면 가끔은 그들의 일화를 너무 깊게 파고들어서 지루함을 유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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