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올라온 『책, 이게 뭐라고』 리뷰를 보고 인터넷서점에서 미리보기 서비스를 통해 앞부분을 살짝 읽어보았다. 개인사와 자기 감정에 충실한 에세이를 싫어하는데다가, 평소 책 읽어주는 팟캐스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전에 그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어서 소설가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에세이의 문체는 다를 수 있으니 직접 확인하고 선택하고 싶어서였다. 감정 과잉이 없는 시니컬한 문장을 보고 (다른 책들과 함께 구매하려고) 바로 장바구니에 담아뒀는데, 사지 않고도 읽을 기회가 생겼다. 직접 구매해서 읽을 생각이 없었던 책이라면 증정도서나 협찬도 받지 않는다. 책값을 아껴보겠다고 그럴 가치도 없는 책에 내 시간을 낭비하는 꼴이니까. (읽고 싶은 책을 읽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고, 맘에 안드는 책의 리뷰를 쓰는 것만큼 고역인 것도 없으니) 한마디로, 사려고 맘 먹었는데 운 좋게 도서 협찬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나는 TV나 유튜브, 라디오, 팟캐스트의 독서 프로그램 애청자도 아니다. 책 소개 프로그램을 보거나 듣느니 그냥 책을 읽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어느 책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 역시 글로 접하면 된다고 여긴다. 그래도 그런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다. 신간을 낼 때마다. 책 홍보하러. 77쪽
장강명 작가는 요조와 함께 독서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의 진행을 맡은 적이 있었다. 북이십일 출판사와 팟빵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던 팟캐스트였는데, (그런 이유에서 나는 듣지 않았다.) 이 책은 '읽고 쓰는 인간' 장강명이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만났던 사람들과 세계, 생각에 대한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독서 팟캐스트는 무엇일까? 긴 글 읽기를 버거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요약 서비스인가? 그런 팟캐스트도 있다. 특히 고전을 쉽게 설명하는 채널이 인기가 높다. 아니면 독서 팟캐스트는 교양 있는 사람들의 점잖은 토크쇼일까, 책은 그저 거들 뿐인? 그렇다면 진행자의 대화 솜씨와 매력 있는 초대 손님을 섭외하는 일이 중요할 터다. 그것도 아니면 신간을 알려서 구매로 이어지게 하는 홍보용 매체일까? 그게 분명한 목표이고 다른 사항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면 오히려 창의적인 시도들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199쪽
내가 만나서 어느 정도 친해지고 사정을 알게 된 다른 책 팟캐스트 중에서 운영비를 자체적으로 벌어서 해결한다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대형 서점이나 출판사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곳도 있고, 대기업이나 독지가의 지원을 받는 곳도 있었다. 221쪽
앞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독서 팟캐스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서 듣지 않는다. 예전에 독서 모임을 할 때 이런 일들이 있었다. 책을 못 읽어서 팟캐스트와 유튜브를 대신 찾아서 들었다거나 거기서 나온 이야기들을 나열하는 것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감상을 대신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그들은 팟캐스트와 유튜브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 책을 완독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독서 팟캐스트나 유튜브를 통해 책에 흥미를 느끼고 직접 읽을 수 있어야 하는데, 단순히 듣는 것만으로 끝이라니. 장강명 작가 역시 팟캐스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지만 이런 부분들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책과 독자 사이가 너무나 멀 때 그렇게 해서라도 책 쪽에서 한 걸음 독자 쪽으로 가야 하는 것인가, 그러다가 너무 많이 가면 이게 책이 책이 아닌 게 되는 것 같고. 그분들이 책 쪽으로 오지 않을 거라면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우리가 『이방인』이나 『인간 실격』에 대해 이야기해도 그건 책에 대한 콘텐츠이지 책 자체는 아닌데." 271쪽
그는 팟캐스트 뿐만아니라 출판시장 전반에 걸쳐 다양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셀러브리티들, 표지만 바꿔서 리커버 에디션이니 초판본 에디션이니 하는 것들, 매년 곳곳에서 선정하느라 바쁜 올해의 책들과 유력 노벨문학상 수상자 관련 마케팅들, 두께는 얇은데 표지는 고급스러워지는 각종 경장편 시리즈들, 온갖 찬사로 무장하는 띠지들, 비판적인 독자들이 적다는 지적, '젊은 피'에 대한 평론가들의 찬사와 요구들. (최근에 우리는 한 젊은 작가를 통해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던가.)
이제는 한국이 출판업이 사실상 '셀럽 비즈니스'가 된 게 아닌가 싶다. 셀러브리티가 쓴 책이 잘 팔린다. 아니, 셀러브리티가 쓴 책만 잘 팔린다. 아예 처음부터 셀러브리티를 섭외해서 책을 만든다. 실제로 원고를 쓰는 거야 다른 사람이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셀러브리티이기만 하다면 반려견도 만화 캐릭터도 책을 낼 수 있다. 나는 한편으로는 그런 현실이 못마땅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알쓸신잡'에서 연락이 오기를 고대하는 마음이기도 했다. 34~35쪽
몇몇 기표를 뽑아내 신자유주의라든가 여성 혐오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 역시 게으르다고 본다. 거기에도 '읽어내겠다'는 의지는 희박하다. '젊은 피'에 대한 평론가들의 찬사와 요구는 강박에 가까워 보인다. 나는 신선한 피라면 환장하는 드라큘라가 아니기에, 그 지점에서 자세한 해설을 원한다. 새로운 얼굴은 새로운 얼굴일 따름이며,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늘 나타난다. 나는 읽고 쓰는 사람들 간의, 글자를 통한 대화를 원한다. 악평도 좋다. 181쪽
사실 많은 독자들이 생각하고 있던 부분들일텐데, 이런 이야기들을 이해관계자(=장강명 작가)의 글을 통해 듣게 되니 반가웠다. 물론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이해관계자라면 쉽게 드러낼 수 없는 부분을 진솔하게 쓰고 있다는 점, 이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