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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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란 대학에 가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서 하는 것이며,

대학에 가서는 무엇을 어떻게 배우면 좋은지에 대한 논의들이었다.

김영민, 『공부란 무엇인가』 248쪽

표지 속 공간은 어디에 있는 곳일까? 실제로 존재하는 곳일까? 예전에 비슷하게 꾸며놓은 곳을 본 적이 있는데, 섬뷰(island view)는 아니었다. 현재 김영민 교수의 공간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저런 뷰를 가진 곳에서 글을 쓸 수 있겠는가. 아무튼 한참을 들여다보게 만든 표지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으로 SNS에 이름을 알린 김영민 교수가 이번에는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일부 독자들이 저자의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는 편집자의 기대"로 제목이 붙여진 "이 책에 담긴 글들은 다 공부의 각 측면에 대한 것이며, 그 글들을 통해서 공부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보기를 권하고 있다."(67쪽) 특히, 공부를 잘해서 가는 '대학'이 아닌 공부를 하기 위해 가는 '대학', 그런 '대학'에서 어떻게 잘 배울 것인가, 그런 측면에서의 공부에 대해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

애초 이 책을 읽는 와중에 작가의 어떤 문체에 꽂혀서 내 나름으로 신랄하게 리뷰를 써서 임시 저장해 두었었다. 그런데 「멍청한 주장에 대해 멍청한 비판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제목의 글을 읽고나니 도저히 리뷰를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글의 내용은 이렇다.

상대 주장의 약점보다는 강점과 마주하여 비판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 상대의 핵심 주장에 강점이 있음에도 상대가 보인 약점에 탐닉한 나머지 그것을 상대의 '본질'이라고 간주해서는 안 된다. 하수들일수록 상대의 하찮은 약점에 탐닉한다. 형사무레서 시체가 등장하면, 그 시체를 둘러싼 드라마에 집중해야지, 시체 역을 하는 배우가 얼마나 꼼짝 않고 있는지만 집요하게 살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아무런 강점도 없는 경우는 어떡하냐고? 완벽하게 못생긴 사람이 없듯이, 완벽하게 오류로만 점철된 주장은 드물다. 기를 쓰고 상대 주장의 강점을 찾아내서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안으면, 단점을 찾아내 즐기는 페티시(fetish)가 있다고 오해받을 수 있다. 상대의 주장에서 강점을 영 찾을 수 없으면, 이토록 형편없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용기 자체를 칭찬하면 된다. 211쪽

그랬었다. 어떤 한 부분이 마음에 거슬리자, 작가가 전달하고자하는 전체적인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부분을 토해 내지 않고서는 이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책읽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리뷰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부분이 마음에 거슬러서 전체를 볼 수 없었던 게 아니라 내가 전체를 보지 못해서 그 부분이 자꾸 신경 쓰였던 게 아니었을까?

김영민 교수는 책을 읽고 그 책에 관하여 쓰는 서평이 기본적인 기능을 하려면 가장 먼저 적절한 요약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나의 전체로서 책에 대해 말하기

김영민, 『공부란 무엇인가』 147~149쪽

책을 소개하는 글이라면, 하나의 전체로서 그 책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요약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책 부분마다 흥미로운 포인트는 많다. 그러나 하나의 전체로서 그 책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서평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책이 그러한 답을 가능케 하는 통일성을 결여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책을 굳이 소개할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가 들기는 하지만, 그때는 왜 그 책이 그런 상태에 이르고 말았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좋은 내용 소개가 될 수 있다. 147~148쪽

깊이 있는 서평은 내용 소개에만 그치지 않는다. 본격적인 비평이 담긴다. 서평 대상이 된 책이 제공하는 정보 중에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도 있고, 그 책이 담고 있는 주장들의 논리적 결함을 지적할 수도 있고, 그 책의 논의가 암묵적으로 기대고 있는 전제들을 문제 삼을 수도 있다. 물론 설득력 없는 비판을 늘어놓으면 서평자 자신의 얼굴에 검은 먹을 바를 뿐이다. 주례사 같은 서평도 문제지만, 근거 없는 비판으로만 일관한 서평도 문제다. 단순히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창의적인 질문을 던져서 그 책의 새로운 면모를 증명할 수도 있다. 148~149쪽

최악의 서평 중 하나는 서평을 단순히 자기 이야기의 발판으로 삼는 경우다. 물론 서평도 결국 자기 이야기를 담긴 담지만, 대상이 된 책을 섬세하고 충실하게 경유해야 한다는 장르의 규칙이 있다. 대상이 된 책 내용을 후다닥 요약한 뒤, 자기 이야기만 주절주절 늘어놓으려거든 다른 글의 형식을 취하는 게 좋다. 149쪽

한 권의 책을 요약하기란 쉽지 않다. 그나마 줄거리가 있는 문학들은 요약하기가 쉬운 편인데, 이 책처럼 칼럼 형식의 글들이 나열되어 있으면 전체를 아울러 요약하기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꼬투리를 잡고 늘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책은 (이 글 도입부에 이미 적어둔) 저자가 한 문장으로 요약해 놓은 것이 있으므로, 그것으로 대신하면 될듯하다.

마지막으로, 읽는 도중에 서평을 쓰게 만든 문체에 대해서 아주 살짝 이야기 해보겠다. (원래는 이 포스팅을 가득 채울만큼 방대했다.)

내 나름대로는 끊임없이 '지적 변화'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지적 자극을 받아볼 수 있을까 싶어서 이 책을 선택했다. 전작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전작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내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지적 자극'이었다. 특히, '꿀벅지' 같은 단어를 책 속에서 마주치는 순간 기대가 와르르 무너졌다. 어떤 느낌으로 그런 단어들을 사용하는지도 알겠고, 요즘 독자들이 좋아하는 문체라는 것도 알겠지만, 거슬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좋은 문체를 보여준답시고 과한 표현을 남발하지 않는 일이다. 냉정한 분석이 이루어져야 할 국면에서 정서적 오지랖이 질질 흐르는 표현을 처발라서는 안 된다. 주장의 논리와 명료함이 논술문의 주된 승부처라고 할 때, 그런 표현은 독자가 논지에 집중하는 것을 오히려 방해할 뿐이다. 이를테면, 인간의 소화기관을 설명하는 학자가 배고픔 혹은 허기에 대해 서술할 때는 '배고프다', '허기진다'와 같은 간명한 표현이면 족하다. 배고픔이라는 생리 현상을 서술하면서 '인간이 평생 가장 자주 느끼는 결핍감, 그것은 바로 허기'와 같이 멋을 잔뜩 부린 표현을 구사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그저 건조하게 문법에 맞게만 쓰는 게 능사일까. 사실, 화려하지는 않아도 비문과 오타 없이 문법에 맞게만 글을 써주어도 감지덕지할 일이다. 그것만 갖추어져도 글을 읽다가 인생에 대한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있다. 202~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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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0-09-14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해요, 조금더 고상한 아재개그라서 좋아했는 데, 이번 책은 그냥 아재...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