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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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178쪽

전쟁 때 학살로 가족들을 모두 잃은 시선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서 누군가의 '사진 신부'가 되어 하와이로 향한다. 하와이에서 고된 노동으로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을 때 마티아스 마우어를 만난다. 독일의 유명 화가였던 그는 영수증에 낙서처럼 그린 그녀의 그림을 보고는, 자신과 함께 독일로 가자고 한다. 마티아스가 가는 곳마다 그런 제안을 해 데려온 여자가 여럿인 줄 몰랐던 시선은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에 그를 따라 뒤셀도르프로 향한다. 뒤셀도르프에 도착하고나서야 마티아스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 시선은 폭력적인 마티아스로부터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다행히 그녀 앞에 작은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요제프 리가 나타난다. 그는 시선이 진짜 화가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이것을 알게 된 마티아스는 더욱 교묘하게 시선을 괴롭혔고 급기야 시선은 마티아스를 떠나기로 한다. 시선이 떠나자 마티아스는 유서를 남겨놓고 자신의 집 4층에서 뛰어내려 죽는다.

사랑했기에 나의 배신을 견딜 수 없었다 썼고, 그럼에도 그림과 집과 모든 재산을 내 앞으로 남겼으므로 나는 온 유럽의 증오를 받아내야 했다. 재능 있는 화가를 파멸로 몰아넣은 아시아 마녀가 되었다. 미디어는 지금보다 느렸지만 그때 사람들도 지금 사람들 못지않게 가십을 사랑했다. 조롱헤서 폭력으로 넘어가는 시간은 훨씬 짧았고 말이다. 창문으로 날아드는 깨진 판석, 집 앞에 버려지는 오물, 길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위협들이 도를 넘어섰다. 마티아스가 바란 대로였다. 아무도 그의 의도를 해득하지 못했고, 돌바닥에 깨진 그의 머리가 마지막으로 계획한 것들은 차곡차곡 실행되었다.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그가 죽이고 싶었던 것은 그 자신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도 나의 행복, 나의 예술, 나의 사랑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가 되살아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회복하지 못했으면 하는 집요한 의지의 실행이었다. 178쪽

"유명세는 모든 걸 왜곡시켜버리는 경향이 있어"(61쪽)서 사람들은 마티아스의 유서만 믿었고, 시선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는 보려하지 않았다. 시선은 그 시달림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요제프 리와 함께 도망치듯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시선으로부터,』는 시선의 10주기를 앞두고 흩어져 살고 있던 가족들이 하와이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절대 자신의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했던 시선의 뜻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10년만에 처음으로 그들만의 특별한 '제사상'을 준비한다. 그들은 한때 시선이 머물렀던 하와이를 여행하며 각자 가장 소중하고 의미있는 것들을 제사상에 올리기로 한 것. 그들은 그렇게 각자의 '시선'을 추억하며 그녀의 생각을 더듬어본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선'의 삶은, 20세기를 살았던 여느 여성들과는 달리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마티아스와의 관계가 억압적이고 폭력적이었지만, 비록 그 관계 때문에 더이상 그림은 그릴 수 없게 됐지만, 여느 여성들이 도달할 수 없었던 지점에 이르지 않았던가. 그가 없었다면 매일 육체 노동만 하는 일상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시선' 자신 또한 그 삶을 부정하지 않는다. 실제로 '심시선'이라는 이름은 정세랑 작가의 돌아가신 할머니 이름에서 한 글자를 바꾼 것이라고 하는데, "할머니가 가질 수 없었던 삶을 소설로나마 드리고자 했다"(「작가의 말」)고 한다.

20세기를 살았던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런 '운'을 가지기 힘들었다. 작가가 진짜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시선'처럼 살 수 없었던 20세기 여성들의 삶일 것이다.

가해자가 피해자인 척할 때의 역겨움

173쪽

한편, 함께 여행을 간 가족들 중에는 시선의 손자 '규림'이 있다. '규림'은 최근 친구들 사이에서 있었던 사건 때문에 학원을 그만두고 학교를 옮기고 싶어했다. 규림은 '도영'과 여사친 '한빛'이 부딪칠 때마다 특별한 입장을 취하지 않았는데, 규림의 휴대전화가 꺼져있던 사이 규림 역시 포함되어 있던 단톡방에서 사건이 터졌다. 도영이 한빛의 사진을 합성해 남자 아이들이 있던 단톡방에 올린 것이다. 도영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한 규림은 아무것도 모른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한빛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규림에게 서운함을 표현했다. 규림이 억울하다고 하자 한빛은 평소 그의 태도를 지적하며, 두 사람이 부딪칠 때마다 "무마시키는 미소였다고, 도영보다도 꼴 보기 싫었다고"(172쪽) 한다.

그 죽은 남자가 사촌 큰누나에게 염산을 던졌을 때, 가해자가 피해자인 척할 때의 역겨움을 온 가족이 똑똑히 이해할 수밖에 없었고 규림 자신은 도저히 같은 짓을 할 수 없었다. 가해와 피해의 스펙트럼에서 스스로가 가해에 더 가까웠음을 인정해야 했다. 방전된 배터리와 나쁜 타이밍 이전에 멍청하고 멍하게 방조하고 있었음을 말이다. 173~174쪽

어떤 인과는 명확히 기억되어야 한다.

303쪽

최근 정치, 문학 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에서, 아직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균형적인 시각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피해자 대신 "피해 호소인" 혹은 "문제 제기하신 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 또한 이런 쪽이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됐다. 여기저기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냉정함을 유지한다는 명목 하에 판단을 유보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2차 가해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한 권의 책에, 최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던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모든 입장이 담겨 있는 것 같아 반갑다. 당연히 그 입장은 내가 조리있게 정리할 수 없었던 내 생각들과 일치하는 것이다.

"쓰는 게 뭐 대단한 것 같지? 그건 웬만큼 뻔뻔한 인간이면 다 할 수 있어. 뻔뻔한 것들이 세상에 잔뜩 내놓은 허섭스레기들 사이에서 길을 찾고 진짜 읽을 만한 걸 찾아내는 게 더 어려운 거야." 166쪽

이런 문장도 마음에 들었고, 세심하게 출처를 밝힌 작가의 태도도 마음에 들었다. 이 소설 속에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직업들이 여럿 등장하는데, "직업과 관련하여 인터뷰를 해주신 분들께 감사를 전하고 싶지만 혹 누가 될까 소중한 이름들을 가려두고자 한다"(「작가의 말」)는 이런 마음 씀씀이도 좋았다. 사적으로 나눈 대화를 그대로 소설에 쓰거나 소설로 타인의 삶을 강제로 아웃팅한 작가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던 부분들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작가로서 그녀의 문장들이 아직 완숙되지 않았다는 것. 읽다보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고, 이해할 수 없는 표현들이 튀어나왔다. 지금껏 조금 다른 장르의 글들을 써왔고, 나와 관심사가 달라서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아무래도 영화와 미디어를 즐기지 않는 탓일까.) 앞으로 나아갈 그녀의 행보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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