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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 살인
아르노 들랄랑드 지음, 권수연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 단테의 『신곡』
그의 명성을 풍문으로 익히 들어는 왔지만 '시'라는 장르의 벽 때문에 차마 한번도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시'라는 장르와 베아트리체를 사랑한 단테의 이력, 그리고 '신곡'이라는 제목을 미루어 짐작컨대 『신곡』은 분명 사랑을 노래한 시일 것이라고 어림잡아 짐작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전 답사 겸 살펴본 『신곡』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었다. 단테의 『신곡』은 주인공이 베르길리우스라는 안내자를 따라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었다. 『신곡』이 사랑을 노래한 시라니, 정말 무식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 아르노 들랄랑드의 『단테의 신곡 살인』
'흑란'이라는 멋진 닉네임을 가진 피에트로는 자신의 상관의 여자를 탐한 죄로 '납지붕'에 갇힌다. 하루하루 죽을 날을 기다리던 '흑란'에게 희망을 안겨준 것은 베네치아를 위협에 빠뜨리려 한 살인 사건이었다.
그는 예전처럼 10인 위원회의 우두머리인 빈디카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살인 사건에 뛰어든다. 한명, 두명 희생자가 늘어나면서 '흑란'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자, 불새들의 우두머리이자 일 디아볼로 혹은 키마이라가 단테의 『신곡』-지옥편에 등장하는 모습대로 사람들을 죽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배교, 육욕, 식탐, 낭비와 인색함, 분노, 이단, 폭력, 사기, 분열 및 불화... 배반을 한 사람들이 차례차례 죽음을 당하면서 결코 짧지 않은 이야기를 긴박하게 풀어 나간다. 그리고 추리 소설이면 으레 등장하는 반전을 마지막에 잊지 않고 심어 두었다.
# 지옥과 천국
'지옥'과 '천국'은 지극히 상대적인 개념일 수 밖에 없다. 누군가에게는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천국'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고통으로 들끓는 '지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불새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베네치아를 지옥이라 부르며 총독을 죽이고 새로운 정권을 세우려고 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토록 그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기에 스스로를 지옥에 사는 악마라 칭했을까. 결국은 개개인의 욕심이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울 수 없는 베네치아, 당연히 '지옥'처럼 느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은 지옥에서 벌하는 방법대로 한명씩 한명씩 죽임을 당하고 만다.
# 불새들 VS 오적들
외세의 힘을 빌려 제 나라를 뒤엎으려고 한 불새들을 보면서 생뚱맞은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100여년 전 일제의 힘을 빌려 조선을 뒤엎으려한 그들이 떠올랐다. 실패한 개혁자이자 실패한 반역자들. 어떻게 보면 매우 다른 문화권이지만, 외세의 힘을 빌려 제 나라를 뒤엎으려한 반역자들을 세계 곳곳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역사는 되풀이되며, 비슷한 모습을 가진다는 점.
비록 남의 나라가 배경이 된 이야기, 게다가 허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밑줄긋기>
간혹 생각이란 것은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 제 스스로 길을 뚫어 우리에게 빛나는 통찰을 안겨 줄 때가 있다. 살면서 이처럼 느닷없는 영감의 선물을 받는 일은 극히 드물다. (p. 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