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지종례 - 맛있는 학교생활을 위한 다정한 레시피
이경준 지음 / 푸른향기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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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 선생님이 건네는 다정한 편지! 다정한 자극!

매주 금요일 종례시간, 시인이자 국어 선생님인 작가는 담임을 맡고 있는 반 학생들에게 짧은 편지를 건넵니다. 학생들은 늘 잔소리 같은 선생님의 말씀 대신 짧은 편지를 읽는 것으로 한 주를 마무리할 수 있는데, 이 편지가 아주 효과가 좋은 모양입니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학생들 앞에서, (특히 종례시간에) 선생님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온전히 할 수 있어서 좋고, 학생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대신 짧은 편지만 읽으면 되니 좋습니다. 선생님은 소란스러운 교실을 정리하고 학생들을 집중시키는데 힘 뺄 일이 줄어들고, 학생들은 종례시간이 줄고 그만큼 집에도 일찍 갈 수 있게 됐습니다.

매주 학생들에게 편지(작가는 '쪽지'라고 부르지만 분량을 보면 '편지'에 더 가깝습니다)를 쓴다는 것, 분명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말보다는 학생들에게 더 오래 각인될 수 있어서 좋겠지만, 오히려 그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을텐데 작가는 매주 정성들여 편지를 씁니다.

문득 학창시절 우리 선생님들을 떠올려봅니다. 작가처럼 좋은 선생님들이 많았지만, 나는 그 분들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늘 잔소리처럼 들렸고, (처음부터 끝까지 선생님의 말씀을 차근차근 듣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왜 그렇게 해야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때 이렇게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설명해주시는 선생님이 계셨더라면, 그때 하신 선생님의 말씀을 좀 더 귀 기울여 들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심지어 작가는 담임 선생님이 바뀌어 궁금해하는 학부모에게도 자신을 소개하는 편지를 씁니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전역 후 4년 동안 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고시를 준비했지만 잘 되지 않아서 답답한 마음에 시를 썼는데 마침 그 시가 당선되어 시인이 되었고 그해 겨울, 시험에도 합격해 경기도 국어교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작가는 빵과 책을 좋아하고, 블로그 등 SNS를 통해 소통하고 있습니다. 나 역시 블로그를 통해 작가를 알게 됐고, 그가 블로그에 꼬박꼬박 올려주는 감수성 짙고 섬세한 글들이 좋아서 반가운 마음에 책을 읽었습니다.

작가도 비슷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지만, SNS를 통해 읽는 것과 종이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읽는 글맛은 확실히 다릅니다. 같은 글이라도 매체에 따라 전해지는 느낌이 이렇게 다른데, 그래서 작가는 '편지'라는 것을 떠올렸나 봅니다.

 

담임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인데 학부형도 아니고 주변에 학생 닮은 사람도 없는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겠어? 이렇게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작가지만, 책을 읽다보면 마치 인생 선배가 들려주는 것 같은 조언들, 지금도 하지 못해서 지금의 나에게도 여전히 유용할 것 같은 잔소리(!)들이 더러 있습니다.

올 여름에는 작은 것을 보고 처지를 상상하는 감수성을 연습해 보자. 감수성을 죽이는 가장 큰 독약은 귀찮음이니까, 주의하시고. 귀찮음은 감수성만 죽이는 게 아니라, 언젠가는 자신도 병들게 만든다. 170쪽

작가의 감수성에 반했던 나, 사실 나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이 '감수성'이라는 것인데 정말 나는 귀찮고 게을러서 감수성이 부족한 게 맞습니다. 비록 덥고 지치지만 올 여름에는 작가처럼 부지런하게 감수성을 다듬는 연습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 마지막으로 꼭 소개하고 싶은 '편지'가 있습니다. 이 책에는 '맛있는 학교생활을 위한 다정한 레시피'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데, 12월 22일에 쓴 편지에는 진짜 레시피가 등장합니다. '초코 소라빵을 맛있게 먹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편지인데, 좋아하는 빵 하나를 먹는데도 이렇게 열정 넘치는 선생님이라니. 프레즐 대신 초코 소라빵이 이 책 표지에 실렸어야 했어요.

초코 소라빵을 맛있게 먹는 방법. 113~114쪽

1. 파리바게뜨에서 비닐 포장된 초코 소라빵을 산다.

2. 사온 즉시 냉장고에 넣는다. (가장 중요함. 초콜릿을 차갑게 해야 함.)

※ 차갑게 식히지 않으면, 프라이팬을 초콜릿 범벅으로 망쳐서 부모님께 등짝 맞을 수 있음.

3. 프라이팬을 약불로 달군 뒤, 버터를 손가락 한 마디만큼 넣는다.

4. 버터가 녹아서 한두 방을 기포가 올라올 때 초코 소라빵을 팬 위에 놓는다.

5. 빵의 겉면 전체에 버터가 골고루 발라지도록 빵을 굴린다.

6. 버터 코팅이 된 빵을 겉이 노릇해질 때까지 약한 불로 굽는다.

 

'우리는 햇빛을 피부로 흡수하면서 행복해지는 게 아닐까.' 날이 좋으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발랄해지기도 하지만, 하늘이 궂으면 뭘 해도 진짜 미소가 나오지 않는 것 같아서.

지치지 말자. 광합성을 하는 식물처럼 견뎌보자.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즐겁게 보내면서, 어둑어둑한 날에 견딜 수 있는 힘을 길러 보자.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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