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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종례 - 맛있는 학교생활을 위한 다정한 레시피
이경준 지음 / 푸른향기 / 2019년 6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708/pimg_7465911442238570.jpg)
매주 금요일, 선생님이 건네는 다정한 편지! 다정한 자극!
매주 금요일 종례시간, 시인이자 국어 선생님인 작가는 담임을 맡고 있는 반 학생들에게 짧은 편지를 건넵니다. 학생들은 늘 잔소리 같은 선생님의 말씀 대신 짧은 편지를 읽는 것으로 한 주를 마무리할 수 있는데, 이 편지가 아주 효과가 좋은 모양입니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학생들 앞에서, (특히 종례시간에) 선생님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온전히 할 수 있어서 좋고, 학생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대신 짧은 편지만 읽으면 되니 좋습니다. 선생님은 소란스러운 교실을 정리하고 학생들을 집중시키는데 힘 뺄 일이 줄어들고, 학생들은 종례시간이 줄고 그만큼 집에도 일찍 갈 수 있게 됐습니다.
매주 학생들에게 편지(작가는 '쪽지'라고 부르지만 분량을 보면 '편지'에 더 가깝습니다)를 쓴다는 것, 분명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말보다는 학생들에게 더 오래 각인될 수 있어서 좋겠지만, 오히려 그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을텐데 작가는 매주 정성들여 편지를 씁니다.
문득 학창시절 우리 선생님들을 떠올려봅니다. 작가처럼 좋은 선생님들이 많았지만, 나는 그 분들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늘 잔소리처럼 들렸고, (처음부터 끝까지 선생님의 말씀을 차근차근 듣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왜 그렇게 해야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때 이렇게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설명해주시는 선생님이 계셨더라면, 그때 하신 선생님의 말씀을 좀 더 귀 기울여 들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심지어 작가는 담임 선생님이 바뀌어 궁금해하는 학부모에게도 자신을 소개하는 편지를 씁니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전역 후 4년 동안 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고시를 준비했지만 잘 되지 않아서 답답한 마음에 시를 썼는데 마침 그 시가 당선되어 시인이 되었고 그해 겨울, 시험에도 합격해 경기도 국어교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작가는 빵과 책을 좋아하고, 블로그 등 SNS를 통해 소통하고 있습니다. 나 역시 블로그를 통해 작가를 알게 됐고, 그가 블로그에 꼬박꼬박 올려주는 감수성 짙고 섬세한 글들이 좋아서 반가운 마음에 책을 읽었습니다.
작가도 비슷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지만, SNS를 통해 읽는 것과 종이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읽는 글맛은 확실히 다릅니다. 같은 글이라도 매체에 따라 전해지는 느낌이 이렇게 다른데, 그래서 작가는 '편지'라는 것을 떠올렸나 봅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708/pimg_7465911442238568.jpg)
담임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인데 학부형도 아니고 주변에 학생 닮은 사람도 없는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겠어? 이렇게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작가지만, 책을 읽다보면 마치 인생 선배가 들려주는 것 같은 조언들, 지금도 하지 못해서 지금의 나에게도 여전히 유용할 것 같은 잔소리(!)들이 더러 있습니다.
올 여름에는 작은 것을 보고 처지를 상상하는 감수성을 연습해 보자. 감수성을 죽이는 가장 큰 독약은 귀찮음이니까, 주의하시고. 귀찮음은 감수성만 죽이는 게 아니라, 언젠가는 자신도 병들게 만든다. 170쪽
작가의 감수성에 반했던 나, 사실 나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이 '감수성'이라는 것인데 정말 나는 귀찮고 게을러서 감수성이 부족한 게 맞습니다. 비록 덥고 지치지만 올 여름에는 작가처럼 부지런하게 감수성을 다듬는 연습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 마지막으로 꼭 소개하고 싶은 '편지'가 있습니다. 이 책에는 '맛있는 학교생활을 위한 다정한 레시피'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데, 12월 22일에 쓴 편지에는 진짜 레시피가 등장합니다. '초코 소라빵을 맛있게 먹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편지인데, 좋아하는 빵 하나를 먹는데도 이렇게 열정 넘치는 선생님이라니. 프레즐 대신 초코 소라빵이 이 책 표지에 실렸어야 했어요.
초코 소라빵을 맛있게 먹는 방법. 113~114쪽
1. 파리바게뜨에서 비닐 포장된 초코 소라빵을 산다.
2. 사온 즉시 냉장고에 넣는다. (가장 중요함. 초콜릿을 차갑게 해야 함.)
※ 차갑게 식히지 않으면, 프라이팬을 초콜릿 범벅으로 망쳐서 부모님께 등짝 맞을 수 있음.
3. 프라이팬을 약불로 달군 뒤, 버터를 손가락 한 마디만큼 넣는다.
4. 버터가 녹아서 한두 방을 기포가 올라올 때 초코 소라빵을 팬 위에 놓는다.
5. 빵의 겉면 전체에 버터가 골고루 발라지도록 빵을 굴린다.
6. 버터 코팅이 된 빵을 겉이 노릇해질 때까지 약한 불로 굽는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708/pimg_7465911442238566.jpg)
'우리는 햇빛을 피부로 흡수하면서 행복해지는 게 아닐까.' 날이 좋으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발랄해지기도 하지만, 하늘이 궂으면 뭘 해도 진짜 미소가 나오지 않는 것 같아서.
지치지 말자. 광합성을 하는 식물처럼 견뎌보자.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즐겁게 보내면서, 어둑어둑한 날에 견딜 수 있는 힘을 길러 보자. 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