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3 - 1부 3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3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토지』 3권은 살인자 김평산의 아내 함안댁의 자살로 시작한다. 그저 인간 노릇 못하는 남편을 둔 죄로 죽은 함안댁이 안쓰럽긴 하지만 눈길을 끄는 것은 따로 있었다. 죽은 함안댁이 목을 맨 나무에서 내려지자 사람들은 목을 맨 새끼줄부터 시작해서 나뭇가지를 하나씩 꺾어 간다. 죽은 사람의 정기를 받아 약물(藥物)이 된다는 믿음 때문이라는데, 그 모습이 살풍경하다. 아마도 사람이 목을 매 죽은 나무를 꺼려하거나 무서워할까봐 만든 말일텐데.

   옮겨지는 시체를 따라 사람들이 방 앞으로 몰릴 때 봉기는 짚세기를 벗어던지고 원숭이같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목맨 새끼줄을 걷어 차근차근 감아 손목에 끼고 난 다음 나뭇가지를 휘어잡으며 툭툭 분지른다. 그 소리에 돌아본 몇몇 아낙들이 머쓱해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잠시였다. 어느새 나무 밑으로 몰려들었다. 바우랑 붙들이, 마을의 젊은치들도 덤비듯이 쫓아왔다. 모두 엉겨붙어 나뭇가지를 꺾어 간수하기에 바쁘다. 순식간에 나무는 한 개의 기둥이 되고 말았다. 넋빠진 것처럼 강청댁이 그 광경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서 서방은 주저주저하다가 두만네와 마주보고 서서 눈물을 짜고 있는 마누라를 힐끗 쳐다본다. 그는 살며시 땅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옷소매 속에 밀어 넣는다. 노상 횟배를 앓는 마누라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이기이 만병에 다 좋다 카지마는 그 중에서도 하늘병(간질병)에는 떨어지게 듣는다 카더마."
   몽톡하게 된 나무를 올려다보며 봉기는 의기양양해서 말했다
.
  
"죽은 나무라서 우떨란고? 효험이 있이까?"
   아낙 한 사람이 미심쩍게 말했다. 봉기는 씩 웃는다.
죽은 사람의 정기를 받아 약물(藥物)이 된다는 믿음에서 모두들 덤벼들어 꺾은 것인데 죽은 나무여서 과연 정기가 통하겠느냐는 아낙의 의심이다. 병에 효험이 있기로는 목을 매단 끈이나 새끼줄이 제일이라는 것이 예부터 전해져 내려온 말이었다. 『토지』 1부3권 11쪽

   3권에서는 함안댁을 시작으로 여러 사람들이 죽는다. 호열자가 유행해 김 서방과 강청댁이 죽고, 봉순네와 윤씨 부인까지 죽는다. 심지어 문 의원을 호열자도 피했는데, 낙상해서 죽는다. 신난 건 조준구뿐이다. 그는 서울에서 부인과 아들까지 대동해 내려왔다. 집안을 추스릴 사람이 없어진 최 참판댁에서 조준구는 사랑방을, 그의 부인은 안방을 차지하고 주인 노릇을 한다. 그나마 멀리 떠났던 최치수의 지기 이동진이 돌아왔지만 이내 떠나버려, 서희는 다리 병신이 된 수동과 길상, 어머니를 잃은 봉순이 밖에 의지할 곳이 없다.

  
최 참판댁에서는 김 서방이 죽은 뒤 돌이와 봉순네는 동시에 발병하여 죽었다. 그 다음의 희생자는 윤씨 부인이었다. 길상은 밤길을 타고 읍내까지 문 의원을 데리러 갔다. 문 의원이 와도 이미 허사인 것을 모르지는 않았으나 길상은 앉아서 부인의 죽음을 기다릴 수 없었고 수동이도 동의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읍내에 가서 길상이 들은 소식은 문 의원도 죽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집에서 말고 출타한 곳, 그러니까 우관스님을 찾아 절에 갔다는 것은 착오였었고 진주에 갔었다가 그곳에서 변을 당하였다는 것이다. 돌아온 길상이 그 사실을 알렸을 때 윤씨 부인은 힘없는 팔을 들어 자기 가슴을 두 번인가 두드렸다. 그리고 숨을 거둘 때는 손목을 잡고 길상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토지』 1부3권 251~252쪽

  
무엇보다도 윤씨 부인의 죽음이 허망했다. 그렇게 단단히 최 참판댁을 부여잡고 있었는데, 죽음에 이르는 길은 순간이었다. 게다가 책에서는 단 몇 줄로만 묘사하고 있다. 사람의 일이란, 사람의 생이란 그런 것이다. 
   3권에서도 역시 용이의 우유부단한 처신은 끝나질 않는다. 호열자로 강청댁이 죽고, 임이네는 용이의 아들을 낳았지만 용이는 다시 돌아온 월선을 찾아간다. 임이네는 호열자로 두 아들을 잃었지만 용이의 마음이 월선이에게 향할까봐 전전긍긍이다. 아무리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지만, 어미로서 자신을 잃은 안타까움을 전혀 보여주지 않아 정이 가지 않는다. 우악스럽긴 하지만, 강청댁의 죽음에 마음이 쓰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1~3권 주요 사건별 인물 정리

■ 윤씨 부인 : 최 참판가의 안주인이며 최치수의 어머니. 큰 키, 곧은 상체, 두드러진 뼈대에 선비 같은 느낌을 주는 여성으로 당당하게 집안의 권위와 재산을 지켜나간다. 요절한 남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연곡사에 기도드리러 갔다가 휴양차 와 있던 김개주에게 겁탈당한다. 문 의원과 월선네의 도움으로 무사히 김환을 낳고 이 사건은 집안의 비밀로 묻어버린다. 불륜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최치수에게 냉정한 어머니가 되며, 김환에 대한 어미로서의 죄책감 때문에 찾아온 그를 하인으로 곁에 두며, 며느리 별당아씨와의 불륜을 용인한다. 두 아들에 대한 사랑은 저울의 추처럼 갈등을 안겨주어 평생의 한으로 간직하며, 김개주의 처형 소식을 듣고는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조준구의 장기 거주에 불안을 느껴 비밀리에 서희에게 금, 은괴를 남겨주고 호열자로 죽는다.

■ 최치수 : 호는 석운. 최 참판가의 당주. 불륜에 대한 죄의식으로 냉엄한 어머니에 의해 신경질적이고 잔인하며 방약무인한 젊은이로 성장한다. 또한 부정적이고 인간혐오적인 선비 장암 선생의 영향을 깊게 받아 매사에 냉소적이다. '온갖 신경질과 우수가 감도는 모습', '당장에 눈을 부릅뜨고 고함칠 것 같은 위태위태한 분위기', '어떤 일에도 감동되지 않을 눈빛, 철저하게 스스로를 거부하는 눈빛'을 가진 인물로 표현된다. 어머니에 대한 반항으로 여자를 혐오하여 별당아씨를 냉정하게 대하며, 조준구와 어울려 자학적으로 여자들을 상대함으로써 남성을 잃는다. 또한 속박 당하지 않기 위해 집안의 재산관리를 의식적으로 피한다. 별당아씨가 구천과 도망한 후, 총을 구해 그들을 찾아나서지만 결국 그냥 돌아오고 만다. 귀녀의 음모를 눈치채고 강 포수와 결혼시키려 했으나 김평산에게 살해되고 만다.

■ 김환 : 구천. 윤씨 부인이 김개주에게 겁탈당하여 낳은 아들. 준수한 용모에 고귀한 풍모와 인품을 지녔으며, 우관은 '삭발 안 한 비구요 투구 없는 장수'로 비유한다. 연곡사에서 성장하다 동학혁명 당시 아버지인 김개주를 따라다닌다. 혁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추척의 눈을 피해 방랑하다가 윤씨 부인에 대한 복수심을 가지고 최 참판가에 찾아간다. 최 참판가의 하인으로 갔을 때 성만을 말하고 이름을 말하지 않은 채 무주구천동에서 왔다 하여 구천이로 불린다. 별당아씨와 비밀리에 사랑을 나누다가 윤씨 부인의 도움을 얻어 산으로 도망한다.

■ 김개주 : 호는 해월(海月). 중인출신이며 우관 스님의 동생. 형인 우관 선사가 있는 연곡사에 휴양차 와 있는 동안, 그곳에 불공드리러 온 윤씨 부인을 겁탈하여 아들 김환을 얻는다.

■ 간난 할매 : 바우 할아범의 처. 윤씨 부인의 몸종으로 최 참판가에 와서 일생을 보낸다. 자식이 없어 조카뻘이 되는 김이평의 둘째 영만을 양자로 삼아 대를 잇는다. 최치수 부친의 죽음과 삼수 할아버지(쇠돌)의 죽음, 최 참판가의 손이 귀하게 된 까닭 등의 내력을 마을 사람들에게 전달해 준다. 윤씨 부인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으며, 독자에게 김환의 정체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

■ 김길상 : 고아로 구례 연곡사 우관 스님에게 거두어져 자라며, 금어(金魚)인 혜관에게서 그림을 배워 자신도 금어가 될 꿈을 키운다. 최 참판댁의 심부름꾼으로 소년기를 보낸다.

■ 귀녀 : 최 참판댁의 계집종. 상전인 어린 서희의 모욕에 '원한과 저주가 이글이글 피어오르는 눈길'을 쏟을 만큼 노비 신분에 대한 열등감과 양반에 대한 원한이 가득하다. 별당 아씨가 사라지자 최치수의 사랑을 얻어 아이를 낳음으로써 면천하려 했으나 거절당하자 김평산, 칠성과 모의하여 보복의 의지를 불태운다. 임신을 위해 자수당에서 칠성과 '추악하고 비인간적인' 밀회를 거듭하던 중, 뒤따라 온 강 포수와 하룻밤을 보낸다. 귀녀의 임신사실과 음모를 눈치 챈 최치수가 강 포수와 강제로 결혼을 시키려고 하자, '여자로서 물리침을 당한 원한', '노비로서 짓밟힘을 당한 원한'에 사무쳐, 서둘러 김평산으로 하여금 최치수를 교살하게 한다. 최치수가 성불구라는 사실을 모른 채 최치수의 아이를 가졌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결국 윤씨 부인에게 모든 사실이 발각되자 당당하게 사실을 실토한다. 강포수의 헌신적인 옥바라지에 감동하여 모든 죄를 뉘우치고 옥중에서 아들 강두메를 낳은 후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죽는다.

■ 김평산 : '개다리'(무반) 출신의 몰락양반으로 학식도 경제력도 없으면서, 일은 하지 않고 노름판이나 기웃거리는 인물. 게으르며 탐욕스러울 뿐 아니라, 중인출신의 아내 함안댁을 수시로 구타하고, 손버릇이 나쁜 큰아들 거복의 행동을 은근히 조장하는 등 악행을 일삼아 마을사람들로부터 천시당한다. 최치수에 대해 같은 양반 출신으로서의 이상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조준구의 암시를 받아 물질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귀녀와 함께 최치수 살해모의를 하고 삼끈으로 교살하나, 윤씨 부인에게 발각되어 처형당한다. 잡힌 후에 자신의 죄를 끝까지 부인하며 떠넘기는 등 비굴한 모습을 보인다.

■ 조준구 : 몰락양반의 후예로 최치수의 재종형. 작가가 지적한, 『토지』의 가장 속악한 인물이다. 기질적으로 간교하고 음험하며 교만하다. 먼 친척인 최 참판가에 유하면서 김평산에게 최치수의 살해를 넘지시 암시하여 최치수 살해에 간접적으로 관여한다.

홍씨 : 조준구의 처. 사나운 눈꼬리에 희미한 눈빛, 번들거리는 입술과 어딘지 모르게 불결한 느낌을 주는 외모를 가졌다. 패악스럽고 욕심이 강하며 사치스럽다.

삼월 : 최 참판가의 계집종. 구천을 사모했으나 별당 아씨와 도망간 후 상실감에 젖는다. 조준구가 득세한 후, 그에게 몸을 버리고 홍씨에게 핍박받는다.

삼수 : 최 참판가의 하인. 할아버지 쇠돌이 권한 노루고기를 먹고 최치수의 부친이 죽은 사건 때문에 내내 '천덕꾸러기'로 자란다. 조준구가 득세하자 그의 하수인으로 최 참판가에 복수하고 신분상승할 욕망을 가진다.

수동 : 최 참판가의 하인으로 우직하고 정이 깊으며 사려 깊다. 마음이 혼란한 구천에게 충고를 하기도 했으나, 구천이 달아나자 그를 잡으러 최치수의 산행에 따라가는 운명에 처한다. 산행중에는 젊은이로서의 욕정에 시달리기도 한다. 구천을 발견하자 놓아주고 강 포수의 오발사고로 성난 산돼지에게 다리를 다친다. 최치수와 윤씨 부인이 죽은 후 조준구로부터 서희를 지키려 한다.


강포수 : 지리산 일대에 이름난 명포수. 무성한 구레나룻에 완강한 골격, 힘줄이 솟은 큰 손등을 가졌다. 이 빠진 주막집 할머니가 주어다 길러 그 성을 따라 강씨이다. 노루사냥설화로 생명의 존귀함을 깨닫고 함부로 사냥하지 않는다. 최치수가 구천을 쫓으러 산에 갈 때 수동과 함께 동행하며, 오발사고로 수동을 다치게 한다. 이 일로 최 참판가에 머물면서 귀녀를 짝사랑하게 된다. 귀녀가 옥에 갇힌 후 헌신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바치다가 옥중에서 출생한 아이를 거두어 사라진다.

박수동 : 최 참판가의 하인으로 우직하고 정이 깊으며 사려 깊다. 마음이 혼란한 구천에게 충고를 하기도 했으나, 구천이 달아나자 그를 잡으러 최치수의 산행에 따라가는 운명에 처한다. 산행중에는 젊은이로서의 욕정에 시달리기도 한다. 구천을 발견하자 놓아주고 강 포수의 오발사고로 성난 산돼지에게 다리를 다친다.

또출네 : 평사리의 미친 여자. 아들이 동학당으로 포살되자 실성하여 마을을 떠돈다. 최치수가 살해당하던 날 그곳에 불을 질러 함께 죽는다.


■ 이용 : 평사리의 상민. 부드럽고 자상하며 인색하지 않고 여자를 위해 주는 성품. 월선을 사랑하나 신분차이로 헤어지고, 강청댁과 결혼하나 정을 못 붙이고 자식도 없이 살아간다. 조강지처를 박대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말을 거역하지 못해 결혼에 실패하고 돌아온 월선을 바라보고만 사낟. 하동에서 주막을 하던 월선이 강청댁의 질투로 떠나버리자 심한 갈등을 겪으며 일시적인 무력감에 빠진다.

■ 공월선 : 무당 월선네의 딸로, 백부 공 노인이 사는 용정으로 서희 일행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이용과 평생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는 인물로서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다. 이용과 서로 사랑하나 천민의 딸이라는 이유로 헤어지고, 이용은 강청댁과 결혼한다. 20살 연상의 봇짐장수에게 시집갔으나 살지 못하고 돌아와, 하동 읍네에서 주막집을 하며,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이웃집 사내아이인 천석을 양자로 삼으려고 하기도 한다. 가끔 용이의 얼굴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던 중, 강청댁의 행패에 못 이겨 백부인 공 노인을 따라 용정에 가기도 한다.

※ 출처 : 『박경리대하소설 토지 인물사전』
이 인물 사전에는 더 많은 내용들이 실려 있지만, 2권에 나왔던 내용들로만 정리했다. 왜냐하면 이 인물 사전에는 엄청난 스포일러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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