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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용도 ㅣ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마크 마리 지음 / 1984Books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에로티즘은 죽음 속까지 파고드는 생(生)이다!
그녀가 사진을 찍습니다. 우리가 흔히 찍는, 사랑하는 이의 얼굴, 놓치고 싶지 않은 풍경, 맛있는 음식을 담은 사진이 아닙니다. 그녀가 찍은 사진 속에는 '저녁 식사 후에 치우지 않은 식탁, 옮겨진 의자, 전날 밤 섹스를 하다가 아무 데나 벗어던져 엉켜 버린 옷들'(9쪽)이 있습니다.
어느 날 아침, M이 떠난 후 잠에서 깨어났다. 계단을 내려와 햇살 속에서 옷가지들과 속옷, 신발이 복도 타일 위에 흩어져 있는 것을 봤을 때, 나는 고통스러운 감정과 아름다움을 느꼈다. 처음으로 그 모든 것을 사진으로 찍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욕망과 우연이 낳은, 결국 사라져 버릴 이 배열을, 나는 카메라를 가지러 갔다. 내가 했던 일을 M에게 말했을 때, 그 역시 이미 그런 욕구를 느꼈음을 털어놓았다.
우리는 암묵적으로 사진 찍기를 계속했다. 섹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물질적인 표상을 보존해야만 했다. 어떤 것들은 관계 직후에 찍었고, 또 어떤 것들은 다음 날 아침에 찍기도 했다. 그 마지막 순간은 가장 감격스러웠다. 우리의 몸에서 벗겨져 나간 것들은 그들이 쓰러져 장소에서 추락한 자세 그대로 밤을 보냈다. 그것은 이미 멀어진 축제의 허물이었고, 낮에 그것들을 다시 본다는 것은 시간을 체감하는 일이었다. 아니 에르노, 9~10쪽
늘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끄집어내 글을 써왔던 아니 에르노. 그녀가 이번에는 사진을 꺼내놓고, 그와 함께 글을 썼습니다. M과의 관계 후 남겨진 흔적들을 카메라로 찍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는 인위적으로 옷이나 신발의 위치를 바꾸지 않고, 벗어놓은 그대로 찍습니다. 그렇게 찍은 40장의 사진 중 14장을 골라낸 뒤 각자의 글을 씁니다. 그 글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절대 서로에게 공유하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우리 둘 사이에 규칙이 생겼다. 옷의 배치에 손대지 않을 것. 하이힐이나 티셔츠의 위치를 바꾼다는 것은 거짓을 조작하는 일이고 ─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일기장 속 단어의 순서를 바꾸는 것만큼 불가능한 일이다 ─, 우리 사랑 행위의 실재를 해치는 방식이었다. 아니 에르노, 10쪽
사진 속 피사체들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들입니다. 낡은 부츠, 하이힐, 청바지, 셔츠, 원피스, 속옷... 그러나 그것들의 무질서한 배열을 보고 있으면, 격렬했던 그들의 지난밤이 그려집니다. 침실도 아닌 현관 복도 앞에 흩어져 있는 옷들을 보며 그들이 얼마나 격정적이었는지, 신발끈을 풀지 않으면 벗을 수 없는 부츠 때문에 그의 마음은 또 얼마나 조급했을지.
그들은 이렇게 내밀한 부분을 보여주는 것이 두렵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일상적인 물건들만 사진 속에 담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보고 있는 우리들은 더 에로틱한 장면을 상상할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상대방이 어떤 글을 썼는지도 알 수 없으니 말입니다.
나는 우리가 그보다 더 나은 것을 함께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쓰기, 그것은 하나가 되었다가 또다시 분리되는 행위다. 가끔 두렵기도 하다. 글이라는 자신의 공간을 내놓은 일은 자신의 성기를 내놓는 것보다 더 폭력적이다. 그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기 위해 어떤 무의식적인 전략이 이미 실행되었을까. 단어와 문장을 견고하게, 꿈적이지 않는 문단을 만드는 것. 어린 시절 가끔 내 몸이 돌이 되었던 것처럼, 그리고 방의 벽들이 끝없이 멀어졌던 것처럼 ─ 나중에 철학 수업 시간 이것이 조현병 증상이란 것을 배우게 됐는데, 놀라기는 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아니 에르노, 49쪽
M을 만났을 때, 그녀는 유방암 때문에 항암치료를 받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녀는 가발을 쓰지 않은 머리도, 치료 때문에 기구를 끼고 있는 가슴도 M에게 보여줬습니다. 그녀는 "그가 암을 뛰어넘는 삶을 살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70쪽)했습니다. 그러면서 "옛날 결핵이 그러했듯이 암도 로맨틱한 병이 되어야 한다고"(101쪽)도 말합니다. M과 함께했던 그 시절의 그녀는, 분명 로맨틱했습니다. 그녀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이 사진들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무엇을 구현하는지는 알지만 용도는 알지 못한다. 마크 마리, 168쪽
사진을 찍은 당사자도 모르겠다고 한 『사진의 용도』에 대한 의문점은 일단 접어두겠습니다. 그렇다면, 아니 에르노(1940~)와 마크 마리(1962~)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이 이야기도 언젠가는 그녀의 글을 통해 엿볼 수 있을까요? 사실 근황보다는 어떻게 만났는지가 더 궁금하긴 합니다만.
에로티즘은 죽음 속까지 파고드는 생(生)이다! ─ 조르주 바타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