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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평점 :
우리는 결국 작가가 된다. 믿음을 잃지 않은 채,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쓴다면!
어떤 분이 30분만에 『문맹』을 완독했다고 해서, 아무리 얇다고는 하지만 과연 30분만에 읽을 수 있을까? 게다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쓴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인데? 이런 생각으로 첫장을 넘기게 되었는데, 저 역시 30분만에 완독하고 말았습니다.
일단 분량이 200자 원고지로 200매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적고, 문장이 매우 깔끔하고 간결해서 읽는데 버퍼링이 걸릴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겪어야 했던 상실감과 고독은 그대로 전해지는 책, 그녀의 자전적 소설 『문맹』을 소개합니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로 이름을 알린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1935년 헝가리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작가입니다. 독일과 소련의 지배를 받았던 헝가리에서 그녀는 모국어 대신 적국의 언어로 배우고 써야했습니다. 게다가 무언가를 읽고 있으면 어른들의 타박이 시작되었습니다.
"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 매일 읽기만 해."
"쟤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할 줄을 몰라."
"저건 소일거리 중에서도 가장 나태한 소일거리야."
"저건 게으른 거지."
"쟤는 ……을 하는 대신에 읽기만 해." 13쪽
1956년 혁명을 외쳤던 헝가리 시민들이 소련군에게 무자비하게 진압되자 그녀는 태어난지 넉 달 밖에 되지 않은 어린 딸을 데리고 헝가리의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를 거쳐 스위스로 향합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도착한 스위스에서 그녀는 한동안 읽고 말하고 쓸 줄을 몰랐습니다. 5년 정도 지나자 프랑스어는 익혔지만, 여전히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문맹'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던 그녀가 마음 붙일 구석 하나 없는 이국에서 읽고 쓰기 조차 못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고통스럽고 고독했을까요? 그녀는 어떻게 읽지 않고 5년이나 살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내 나라를 떠나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더 어렵고, 더 가난했겠지만, 내 생각에는 또 덜 외롭고, 덜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어쩌면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서건 어떤 언어로든지 나는 글을 썼으리라는 사실이다. 82쪽
아이가 학교에 가게 되자 그녀 또한 뇌샤텔 대학에서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프랑스 수업에 등록해 읽는 법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난 후 우수한 성적으로 프랑스어 교육 수료증을 받게 됩니다. 그녀는 다시 읽게 되었을 때, 특히 빅토르 위고, 루소, 볼테르, 사르트르, 카뮈, 사드와 같은 작가들의 글들을 번역없이 다시 읽게 되었을 때 프랑스어로 다시 쓰기 시작합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들처럼은 프랑스어로 글을 결코 쓰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쓸 것이다.
이 언어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운명에 의해, 우연에 의해, 상황에 의해 나에게 주어진 언어다.
프랑스어로 쓰는 것, 그것은 나에게 강제된 일이다. 이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한 문맹의 도전. 112~113쪽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과 『문맹』은 이렇게 쓰여진 책입니다. 모국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사전을 곁에 두고 한 자 한 자 써내려간 소설입니다.
우리는 작가가 된다. 우리가 쓰는 것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은 채,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쓰면서. 103쪽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쓸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쓴다면 쓸 수 있다고 합니다. 당신도 멈추지 마세요. 당신의 언어로, 당신만의 이야기를 쓰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