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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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오만과 편견』을 '연애소설'로만 읽을 수 없는 이유!
   1999년 말 영국 BBC 방송에서 '지난 천 년간 최고의 문학가는 누구인가'에 관한 설문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물론 1위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영국이 '인도하고도 바꿀 수 없다.'는 셰익스피어였다.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한 인물이 다소 의외였다. 그 수많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 여왕에게 작위를 받은 대문호들을 제치고 제인 오스틴이었던 것이다.
   제인 오스틴은 사실 평생 단 여섯 편의 작품만 쓴 작가다. 게다가 그 여섯 편의 작품도 모두 자신의 이름이 아닌 가명으로 세상에 내놓았기 때문에,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야 사람들은 그 작품들을 제인 오스틴이라는 작가가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생전에도 그다지 인기를 끈 작가는 아니어서 수십 년의 작품 활동으로 번 돈이 고작 700파운드 밖에 되지 않았다. 사후에도 한동안은 그 유명한 찰스 디킨스나 T.S 엘리엇 등의 빅토리아 시대 소설가들의 유명세에 밀려, 영문학사에 그다지 이름을 올리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소설가 헨리 제임스가 그녀의 작품들을 격찬하면서부터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이 조금씩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20세기에 이르자 신기하게도, 200년이나 묵은 그녀의 작품들이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인기의 대상이 되었다. 서수경의 『영문학 스캔들』, 262~263쪽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 『오만과 편견』은 그녀가 23세 때인 1797년에 『첫인상』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쓰여졌지만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오만과 편견』은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1813년에 제인 오스틴이 개작해 발표한 것입니다.

   베넷 家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엄청난 재산과 지위를 가진 다아시에게 청혼을 받지만 그의 오만하고 냉랭한 첫인상과 청혼하는 태도 때문에 그의 청혼을 거절합니다. 다아시는 그녀의 거절을 상상 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영국 사회에서 여자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었는데, 게다가 자신은 부유하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애를 써보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 봤자 안 될 것 같습니다. 제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습니다. 제가 당신을 얼마나 열렬히 사모하고 사랑하는지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267쪽

그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감정 외에 다른 감정에 대해서도 자세히 이야기해야 했다. 애정에 대해서보다도 자존심에 대해 말할 때 더 열변이었다. 그녀의 신분이 열등하다는 것, 그런 결혼은 집안에 수치라는 것, 그녀의 집안을 생각하면 이성은 언제나 감정에 제동을 걸었다는 것 등을 하나하나 열심히 설명했는데, 그렇게 열을 올리는 것은 지금 자신이 스스로 손상시키고 있는 그 신분 때문인 듯했지만, 그의 청혼에는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268쪽

   "당신이 어떤 태도로 청혼을 하셨다 해도 그걸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았을 거예요." 273쪽


   영국에서는 장남에게만 부모의 재산과 지위를 물려주게 되어 있었고, 만약 그 가족에게 남자가 없다면 집안의 다른 남자에게 물려주도록 상속을 한정시킨 법적 장치가 있었습니다. 베넷 家에는 딸만 다섯이었고, 따라서 베넷 씨가 죽으면 그의 모든 재산은 먼 친척인 콜린스에게 상속되어질 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자신 뿐만아니라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 재산 한 푼 상속 받지 못하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부유한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재산이 없는 아가씨에겐 오직 결혼만이 명예로운 생활 대책이었고, 결혼이 가져다줄 행복 여부가 아무리 불확실하다 해도 결혼만이 가장 좋은 가난 예방책임이 분명했다. 177쪽

   "당신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처음 알게 된 바로 그 순간이라 해도 좋을 것 같군요, 저는 이미 당신의 태도를 보고 당신이 거만하고 잘난 체하며 자기 생각만 하면서 남의 감정은 무시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 뒤로 다른 일들이 쌓이면서 그런 좋지 않은 인상이라는 토대 위에 단단한 혐오감이 자리 잡았다고 할까요. 그랬기 때문에 당신을 알게 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누가 뭐라고 해도 저는 당신 같은 사람과 결혼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말씀 충분히 잘 들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양. 당신의 감정을 완벽하게 이해하며, 지금은 다만 제 감정을 부끄러워할 일만 남았습니다.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은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당신의 건강과 행복을 빌겠습니다." 273~274쪽


   오만한 다아시와 편견으로 가득 찬 엘리자베스. 다아시의 사랑도 가시 돋친 엘리자베스의 거절 때문에 끝나버리는 것 같지만, 다아시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이성적이고 신사적인 남자였습니다. 엘리자베스로부터 거절 이유를 들은 다아시는 이성적으로 자기 자신을 반성하며 개선하려고 노력합니다. 오만하고 차가워보이는 인상 때문에 사람들과 쉽게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친절을 베풀려고 노력합니다. 엘리자베스는 우연히 들른 그의 영지에서 그의 평판을 듣고는 그동안 자신이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특히, 엘리자베스의 막냇동생 리디아의 철없는 행동 때문에 온가족이 힘들어하자, 가족들 모르게 리디아를 도와 사건을 해결해 줬다는 사실까지 알게되자 그를 향한 엘리자베스의 호감은 점점 더 커져버립니다.

   이제 그녀는 자기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다아시를 생각하든 위컴을 생각하든 자기가 눈이 멀었고 편파적이었으며 편견에 가득 차고 어리석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 한 사람은 나를 무시해서 기분이 나빴고, 다른 한 사람은 특별한 호감을 표시했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서, 난 두 사람에 관해서는 선입관과 무지를 따르고 이성을 쫓아낸 거야." 293~294쪽


   그의 태도가 놀랍도록 변해 있었던 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자기에게 먼저 말을 건 것부터가 놀라운 일이었다. 거기다 그렇게도 정중한 말투로 가족들의 안부까지 묻다니! 이 예기치 않은 만남에서만큼 그가 위엄을 부리지 않는 것을 그녀는 여태까지 본 적이 없었고, 그렇게 부드러운 말투로 말을 한 적도 없었다. 350쪽


   존경과 존중보다도 더욱더 그녀 마음속에 간과할 수 없는 호감의 동기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감사였다. 한때 자기를 사랑했다는 데 대한 것뿐 아니라, 그를 거절할 때 토라져서 톡톡 쏘아대던 무례함이라든가 그러면서 퍼부은 모든 부당한 비난들을 용서해 줄 정도로 자기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데 대한 감사였다. 366쪽


   『오만과 편견』에는 네 커플이 등장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너무 소극적이라 상대를 놓칠뻔한 제인과 빙리, 순식간에 휩싸인 사랑의 감정 때문에 집을 뛰쳐나간 리디아와 위컴,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사랑 없이 결합한 샬럿과 콜린스, 오만과 편견 때문에 상대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제인 오스틴은 네 커플이 사랑하는 방식을 통해 당시 영국의 사회상과 가치관은 물론, 각 캐릭터들의 성격까지 정확하게 분석해 보여줍니다.
   이런 제인 오스틴을 혹자들은 비판합니다. 그녀가 작품의 소재나 주제면에서 동시대 남성 작가들과는 달리 너무 소소한 가정사나 남녀 간의 사랑, 결혼만을 다루고 있는게 아니냐고 말입니다.
"얼핏 보면 제인 오스틴의 방식과 소재는 낡고 과장되고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나쁜 독자들이 범하는 착각"이라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말했듯이, 20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전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을만큼 그녀의 소설은 세련되고 섬세합니다.
   흔히들 그녀의 소설을 '연애소설'의 원조라고 하는데,
단순히 '연애소설'로만 읽는다면 제인 오스틴과 엘리자베스가 지하에서 가시 돋친 편지를 보내오지 않을까요.

   "여성의 평판이란 아름다움만큼이나 부서지기 쉽다는 것. 무가치한 남성에 대해서 여성은 아무리 몸가짐을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 398쪽

   "뭐 이런 일이 다 있어! 이따위 일에 우리가 감사해야 하니 말이야. 행복할 가망이 거의 없는데도 결혼해야 하고, 남자의 성격이 형편없는데도 우린 기뻐해야 한다는 거지!" 417쪽


   제인 오스틴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와 결혼하지 않은 언니를 부양해야 했습니다. 결혼을 할 기회도 있었지만, 단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느니 차라리 가난한 작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글을 써서 얻을 수 있는 수입이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버지니아 울프가 그렇게 외쳤던 "자기만의 방" 하나 없이 틈틈히 바느질이며 집안일까지 하며 글을 써야 했고, 끝내 작가로서의 그녀의 이름을 알리지 못한채 마흔셋이라는 나이에 쓸쓸하게 죽었습니다.

   만약 그녀가 남자들과 똑같이 교육받고 사회에 나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더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겠죠.
  
책을 읽다보면 '엘리자베스'라는 인물에 제인 오스틴이 겹쳐집니다. 작가 스스로도 자신이 만들어낸 인물들 가운데 '엘리자베스'를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로 꼽기도 했습니다. 그럼, '엘리자베스' 아니 제인 오스틴을 만나보러 갈까요?

 

 

오만이란 실제로 아주 일반적이라는 것, 인간 본성은 오만에 기울어지기 쉽다는 것, 실재건 상상이건 자신이 지닌 이런저런 자질에 대해 자만심을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은 우리들 가운데 거의 없다는 것이 확실해. 허영과 오만은 종종 동의어로 쓰이긴 하지만 그 뜻이 달라. 허영심이 강하지 않더라도 오만할 수 있지.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더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과 더 관계되거든. 31쪽

"결혼에서 행복이란 순전히 운에 달려 있어. 서로의 취향을 아주 잘 알거나, 혹은 서로 아주 비슷하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둘의 행복이 더 커지는 건 결코 아니야. 취향이란 건 계속 변하게 마련이라 나중엔 누구든 짜증이 날 만큼 달라지게 마련이야. 평생을 같이 살 사람의 결점은 될수록 적게 아는 것이 더 나아." 35쪽

"자신의 견해를 절대 바꾸지 않는 사람들은 처음에 판단을 잘해야 할 특별한 의무가 있지요." 135쪽

"그 ‘열렬하게 사랑한다‘는 표현은 너무나 진부하고 의심스럽고 막연해서 감이 잘 안 잡혀. 진정으로 탄탄한 애정만이 아니라 단 반시간 동안의 만남에서 생겨난 감정에도 종종 그런 표현을 쓰곤 하니까 말이야. 빙리 씨의 사랑이 도대체 얼마나 열렬했는데?" 202쪽

조바심치며 기대했던 일이 일어나더라도 예상한만큼의 만족을 오롯이 얻지는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진짜 행복의 출발점으로 다른 시기를 지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의 소망과 희망이 이루어질 그 시점을 정하고, 다시 그것을 기대하는 즐거움을 누림으로써 현재의 자신을 위로하고, 또 다른 실망에 대비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330쪽

마음 맞는 여행 동반자와 함께한다는 점이었다. 마음이 맞는다는 것은 불편함을 견딜 수 있는 건강한 체질, 즐거움을 더해 주는 명랑한 성격, 밖에서 실망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서로 간에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애정과 슬기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3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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