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친구 이야기 1 - 애장판
야자와 아이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등장인물
                     미카코, 츠토무
                     유스케, 마리코, 지로, 피이, 아유미, 신타로,
                     세지(반짝 반짝 별인간)
            -특별출연: 나가 켄(천사가 아냐), 미와코(미카코 동생),
                          히로유키(토쿠씨 아들), 아라시(리사와 다케시의 아들)

결국 보게 되어 버린 야자와 아이의 작품. <천사가 아냐>를 들어 열어 본 순간 미도리의 함빡웃음에 눈물이 가득한 눈을 보고 그냥 덮어 버렸고(으악, 최악이야~~), 그 선입관을 가지고 <내 남자 친구이야기>를 들고서는 말도 안되는 야자교에 다시 던져 버렸던 것(학원 환타지군!--+). 그러나 <파라다이스 키스>를 든 순간, 그냥 좌라락 읽어 내리고는 야자와 아이...! 결국은 <천사가 아냐>부터 <내 남자친구 이야기>, <나나>까지 훑고야 말았다. ^^ㆀ

인물들의 진화가 놀라운...(뭐하러 등장인물들 뒤에 괄호까지 쳐서 설명하고 있겠는가..^^;)

사람의 맘을 바라보는 예리함...
패셔너블한 그림...
슬픈 듯한 등장 인물들의 입매...
적어도 기쁨만은 확실하게 그릴 수 있는 작가...

원하는 건 해피엔드가 아냐. 잘 단련된 해피 마인드다.(7권 中)

그리고자 하는 것을 확실하게 그려낼 수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 역시 자기 삶을 그렇게 만들어가는 사람이겠다는 생각도 추가! 그래서 더불어 부러움도 속에서 슬금슬금 일어났다.

-디자이너 꿈을 버린 건 아니라구. 디자이너라면 여기서도 할 수 있고... 지금도 하고 있잖아.
-미카코는 여자애니까 거기까지 할 용기는 없는 건가?
-그 말은... 세지, 지금 날 무시하는 거야?
-그럴 생각은 없는데...
-그럼 날 오해하고 있는 거야! 하기야 난 여자애고 아직 열일곱 살 어린애지만 그 정도의 근성은 있다구! 세지한테 뒤지지 않을 만큼 꿈에 대한 열정도 있어! 그저 그런 애들과 똑같이 취급하지 마!
-그런 건 말로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면 말로 하는 게 아냐. 꼴불견일 뿐이지.무슨 생각으로 유학을 그만두려고 결심했는지는 모르지만 네가 말하는 '그저 그런 애들'도 많은 걸 고민하면서 살고 있어. 똑같이 취급당하고 싶지 않다는 사고방식은 자만이야.

........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지 어떤지는 그걸 향해 얼마큼 행동을 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 그만큼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늘어나는 거야. 그걸 괴롭다고 생각한다면 그만 두는 게 나아. 장래엔 재봉을 좋아하는 아줌마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니까.
                                                                                          
(6 권 中)

그저 그런 애들로 살다가 재봉을 좋아하는 아줌마가 된다는 것! 일종의 '뜨거움' 같은 것이 없다면 자기가 만든 옷을 입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말이 아주 깊숙하게 가슴을 찌른다. 나는 지금, 그저 그런 애로 살다가 그저 끼적거리는 거 좋아하는 아줌마가 되어 있지 않은가 말이다. 아무 것도 희생시키고 싶지 않아서. 과연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이 어떤 걸까. 그걸 향해 행동한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매일 매일 이렇게 끼적이면서 닿게 되는 그곳에서 바라보면 보이는 것인가? 읽으면서 더 많이 아팠던 대사는 이거다.

싫어! 이제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유학 얘기 따위가 없었으면 이렇게 고민 안 해도 되는데!
패션쇼에서 그랑프리 받질 않았다면!
디자이너 따윌 목표로 안 삼았다면!
아, 이제 모든 게 다 어찌 되든 좋아!
점점 더 사고 방식이 소극적으로 되어 간다.
(6권 中)

언제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면 꼭 위와 같은 수순을 밟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나, 굉장히 소극적인 사람인지도.-_-++ 언제나 핑계가 있었고, 언제나 숨을 곳을 찾았다. 지금도 또한 그렇다. 그러나 야자와 아이는 다시금 이렇게 말한다.

원하는 건 해피엔드가 아냐. 잘 단련된 해피 마인드다.(7권 中)

그렇다. 잘 단련된 해피 마인드. 엄청난 리토스트(자신의 비참한 자아를 갑자기 꿰뚫어 봄으로써 생기는 고뇌)의 유일무이한 대항책! 그러나 그것 조차 핑계가 되어 버릴 수 있는 법이니 조심해야 한다. 행동이란 것은 노동. 노동을 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젊은 사람이 아니니 이젠 일부러 힘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가끔 이렇게 무지막지한 자극을 주는 젊은 만화를 읽어야 한다.

덤!
<나나>를 읽다 보니 요시모토 바나나 생각이 많이 났다. 아무래도 야자와 아이는 바나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까.. 소설을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불끈불끈해지는 이 유쾌하지 못한 심사. 그러나 시간은 지나 가니 또 이렇게 오늘 하루 끔찍한 자극 속에서 다짐을 하게 된다. 나여, 좀더 부지런해지라고! 참.. <나나>는 상당히 주목되는 작품이다. 두 사람의 나나가 엮어 가는 이야기. 스무 살 이상의 주인공들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심상치 않은 소설같은 만화가 될 것이 분명하다. 2권까지 나와 있는데 읽으면서 이거 소장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흡! 그러나 더 이상은 안된다. 아쉬운 채로 남겨 둬야 그 작품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는 것을 아는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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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버스 키스 1
요시다 아키미 지음 / 시공사(만화)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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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7월의 장마 중 어느 개인 날에 후지이 선배는 오가사와라로 떠나갔다.
후지이 선배의 마음에도
언니의--
미키언니의--
사기사와 선배의--
그리고 나와 오가타의 마음에도
태풍이 불었다.

여섯 개의 volume으로 이루어진 여섯 개의, 여섯 사람의 사랑이야기.
두 가지 사람의 세 가지 사랑이야기,
boy meets girl, boy meets boy, girl meets girl...
한 가지만이 아니라서 더 넓어지는 세계...
(변태는 세계가 넓어진다.)

구성이 멋진, 짧지만 짧지 않은 이야기, 러버스 키스. 아들을 남자로 생각하는 어머니라는 쇼킹한 소재를 가지고 태풍처럼 지나가는 한 여름을 잡아냈다. 장편의 역량을 지닌 작가의 작품이라선지 짧아도 굉장히 진지한 호흡을 느낄 수 있다. 여섯 사람의 시선을 고루 잡아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 단 두 권 속의 이야기는 여섯 권 이상의 값을 한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사랑이 있고 그 중에는 분명 동성 간의 것도 들어 있다. 남자에게든 여자에게든 반한 순간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고, 다만 그걸 사랑 그 자체로 이해하는 것만이 힘든 세상인 것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동성애의 문제가 인권 문제에 다가가 있는 것일 거다. 동성애를 이해하면 세상이 넓어진다는 작가의 메시지에 공감한다.

비록 고1, 고3의 이야기지만 이 작품은 비단 학원 만화로서만 이해되기에는 파장이 크다. 이들의 마음이 성숙되어 있기 때문이다. 몸은 성숙해 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시기의 얘기만으로 볼 수는 없다는 말. 게다가 한 동네서 그 나이에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 같기도 하고. 왜 그렇게 다 커서야 사랑다운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인지. 나만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추억의 창고에 넣어 두고 잊어 버리고 있는 것일까? 그림체는 완벽한 성숙미를 보이고 배경의 간섭없이 그려진 인물과 그에 연결된 대사가 압권인 작품이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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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우리는!! 1 - 애장판
히로유키 니시모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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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부터 날라리는 아닌 미츠하시 다카시와 이토 신지.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샌님같던 머리를, 하나는 금발로 또 하나는 삐죽머리로 바꾸고는 '오늘부터 우리는 날라리!!'가 됩니다. 그들은 사립난파고교의 같은 반으로 같은 날 전학을 와서 같은 시간에 자기 자리를 찾아 들어가게 되지요.

너무 티나는 그들의 머리. 결국 학교 깡패들의 눈에 확 띄게 되고 그들의 싸움은 시작됩니다. 꼭 이겨야 하는 싸움이라면 무슨 짓을 해서든 이겨내는 미츠하시. 의리 빼면 시체인 삐죽머리 이토. 절대 불량아는 아닌 미츠하시와 이토는 어찌어찌해서 난파고교의 투톱이 되고 연이어 밀려드는 타학교의 도전자들을 어이없이 패주하게 만들지요.

비록 제가 어찌어찌해서..라는 말로 얼버무리기는 했지만 이 둘의 싸움이란 게 보통 우스운 게 아닙니다. 소프트한 학원경파물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만화이기도 하지만 이 만화는 그야말로 개그만화입니다. 이 개그에 대해서는 다음 번에 버전업을 시키도록 하고 여기서는 일단 여러분이 입맛만 다시게 하려고 합니다. 꼭 읽어봐야 하는 만화니까요. ^ㅠ^

사실 어찌하여 애들이 이렇게 싸움을 해야 하는지, 이렇게 싸우면서 자라야만 하는지 백프로 이해는 못했지마는, 누구 말마따나 읽으면서 천백프로로 재밌었던 건 사실입니다.그런 재미를 지금까지 잊지 않을 수 있게 한 것은 물론 여기에도 짜르르 전류를 통하게 한 명장면들이 있어서겠지요?

길고 긴 이 이야기(전 38권)를 어떻게 써볼까 고민하다가 한번도 풀어나가 본 적 없는 명장면 명대사 형식으로 한번 얘기해 볼까나 하는 생각으로 명장면을 떠올리려고 머리 속 만화 장면들을 어렵게 어렵게 헤집어 보니..떠오르는 건 이 장면이 맨 먼저였습니다. 덕분에 다시금 부르르... ^^

사가라의 함정에 다소곳이(?) 찾아들어가 형편없이 당한 미츠하시가 자기 손거죽을 벋겨내 겨우 수갑에서 빠져나와 인질이 되어 묶여있는 리코를 감쌉니다. 그러곤 말하지요.

    …한심…해서…. 이 내가…. 이정도…로….
    이제…. 조금…만… 올 거야….

사가라는 비아냥댑니다. 지금 미츠하시가 기다리는 건 바로 이토. 그러나 이토는 사가라의 차에 치여 정신이 나간 상태라는 걸 사가라는 알고 있었거든요. 사가라는 미츠하시와 이토를 질투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깡패지만 그들과 자신에게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거든요. 미츠하시에게 이토가 없다면 어떻게 되나 보고 싶었던 사가라는 이토가 현재 미츠하시를 도우러 올 수 없는 상태라는 걸 알고 비웃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창고 바깥에서는 사가라의 차에 치여 팔이 부러진 채(구두 한 짝도 날아가 버리고...) 이토가 미츠하시에게 가려고 합니다. 교코는 말릴 수 밖에요. 이토는 교코에게 말합니다.

    지금 나를 구하려 오지 않는다는 건…
    나를… 기다리는 거야.
    여기서 안가는 놈은, 이토가… 아니야.

비틀비틀 헉헉 이토는 미츠하시가 사가라에게 당하고 있는 창고로 갑니다. 같이 가겠다고 가다가 같이 당한 나카노는 그 때 길 옆 수풀 속을 뒹굴고 있었지요.

    헉헉 제길!
    미친 놈. 다짜고짜 차로 밀어 버려?
    제길! 다리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간다.

풀이라도 잡고 기어올라 가려다 뒤로 나동그라지는 나카노.

    으윽. 뭘 하는 거야, 내가…. 꼴같잖게….  그 놈들은…? 그러고 얼마나 지난 거지?
    딱히 친구도 아니면서. 그래. 먼저 병원에 갔을지도 몰라….
    흔한 일이니까.

벌렁 누워 버렸지만 다시 일어나 기어오릅니다. 왜냐구요?

    그럴 놈들이 아니야.

여서요.

사가라를 눕힌 이토와 미츠하시 그리고 리코는 창고를 나옵니다.
그 모습을 나카노는 봤지요.

    !!
    훗…. 얼굴은 가관이지만 해치웠나?
    후후후…. 왜 웃는 거야, 내가…. 왜 나는…. 이런…
    그때… 교토에서… 적이었는데. 그 자식, 동정을….
    그래, 후후후. 네가 꼴사납게 당할 때 구해 줄 테다. 그래.

    응? 뭘하는 거야, 너희들?

이런 이런 금방 쓰러질 듯한 미츠하시와 이토가 나카노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습니다.

    야-. 음침보이. 와카노-. 어딨어, 임마.

그걸 보고있던 나카노, 속으로

    바보야, 내버려 둬! 네 얼굴 좀 봐라, 얼른 가!

리코도, 나카노는 먼저 갔을지도 모르니 어서 가자고 하지만 미츠하시와 이토는 여전히 나카노를 찾습니다.

    그 녀석은, 그럴 놈이 아니야. 나카노-. 죽었냐-?

여기라고 손을 들면서 나카노, 또 속으로 중얼거립니다.(역시 음침보이)

    사실은…. 너희들과…, 놀아보고 싶었어.

바로 38권, 아쉽기 그지없는, 그러나 이 정도면!! 됐다 싶은 끝권에 나오는 그 장면입니다. 니시모리 히로유키가 그리는 날라리들의 세계에 있는 것, 그리고 실제 날라리들에게도 있었으면 하는 것이 글자로 된 메시지가 아닌 정황의 감동으로 한꺼번에 밀물처럼 닥치는 장면. 사가라나 사토시도 나카노처럼 그들과 놀아보고 싶었을지도.... 이마이나 다니가와가 그들 주위에 있었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는지도...;; --a  바뜨, ^^

뭐하려고 그리도 쌈박질인지, 왜 이렇게 싸우는 것만 나오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인 수많은 만화들. 그저 재미만 있으면 되지 하다가도, 절대 뭔가 배우려고 하면 안된다 하다가도 이렇게 뭔가 배운 것같은 느낌을 주는 만화들! 우리 <니나 잘해!>의 끝도 이러하기를 기대해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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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유교수의 생활 1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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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Y대 경제학부 교수, 유택.

도로는 우측통행, 횡단보도 이외의 곳에서는 절대 건너지 않는다. 싸고 맛있는 '삼치'를 위해서라면 생선가게 무대포 아줌마의 야유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책은 도로교통법을 준수하고 자유경제법칙에 충실한 학자의 밝고 명랑한 기록이다. <속지 中>

유택은 재미있는 노교수입니다. 평생 오후 9시 취침을 어겨 본 적이 없는 사람이기도 하지요. 그가 말하고 실천하는 정도(正道)에 그 누구도 반론을 꺼낼 수 없게 만드는, 게다가 이 교수만큼 객관적인 눈으로 자기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인물이란 사실 이 세상에는 없을 듯합니다. 그만큼 그의 판단과 평가는 절대적이지 않을 수 없구요. 결국 이 얘기 속의 누구나 유택교수를 좋아하고 또 존경하며 의지합니다. 작가가 강변해서 그러냐구요? 아닙니다. 그건 강요해서 느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저절로 수긍되는 것입니다. 꾸덕. (--)(__)(--)

작가는 왜 이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을까요? 제 생각엔 '스승 없는 시대의 반증'이 그 컨셉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스승이 없는 시대라 말하고 유택교수를 떠올리면 그 말이 무색해지니까요. 하지만 실제 인물이 아니니 그냥 내쳐 버릴까요? 그러나 스승이 언제나 실제인물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허구적 인물도 현실과의 접점이 있게 마련이지요. 제 어릴 적 스승은 사실 '니나'였어요. 루이제 린저의 소설 <생의 한가운데>와 <덕성의 모험> 속 주인공 말이지요.^^;; 지금이요? 아무래도 허구 속 인물인 데다 일본인이기까지 한 이 유택교수를 스승으로 삼아야 되지 않겠나 하는 중이랍니다. ^^

비단 그의 생활만이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 노교수는 표정이 살아 있습니다. 그 의도의 진정성 때문이지요. 그것을 제대로 그려낸 작가의 실력도 빵빵한 것이구요. 사실 늙은 사람의 얼굴이 제대로 그려진 만화는 드뭅니다. 아무래도 簡略畵인데다 펜화이기 때문일 테지요.(그 면에서 요즘 다케히코 이노우에의 <배가본드>가 선전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여기서는 좀 다릅니다. 노인의 궁금함과 감탄, 안심, 기대, 만족 등을 표현함에 있어 모자란 것이 없습니다. 그런 표정을 잡아내는 작가가 존경스럽기까지...;; 그것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부분이 바로 15권입니다. 게다가 엄청 심각한 주제를...--; 그러나 참 생각을 많이 하게 해준 부분이었습니다.

-전.. 그 곳에서.... 몽골인이 될 겁니다.
- ....야베 군
-전 꼭 증명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문화(Culture)는 농경(Cultivate)을 모계로 하고, 문명(Civillization)은 도시(Civy)를 모계로 해서 근대사회가 성립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근대'는 막다른 골목에 와 있습니다. 농경과도 도시와도 무관한 '유목'이라는 태고로부터의 생활 형태는 현실에 대해 안티테제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 체험을 통해서 증명하고 싶습니다.
-음 그렇군. 하지만 태고로부터 농경민족이었던 일본인인 자네가 유목 생활을 할 수 있겠나?
-어떠한 생활 양식=하드도 결국 움직이게 하는 소프트는 인간입니다. 전 반드시 해낼 겁니다.

----몽골----

저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 거지?
구름은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그 끝은 어디에 있을까?

가보는 수 밖에 없다. 뛰어 넘어도 뛰어 넘어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물음에 등을 떠밀리 듯이 인간을 고양하는 이러한 대초원에 과연 우리 고도경제사회에 대한 해답이 있을까?

-오오, 게일(유목민의 집. 조립식이라 이동에 적합하다.))이 많이 있군.
-들렀다 가요! 교수님.
-그랬다간 너무 후한 대접 때문에 배가 불러서 움직이지도 못하게 될 거야.
-믿을 수가 없군. 우린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하지만 이 곳에선 당연한 일이에요. 어떤 게일에 들어가도 반드시 후한 대접을 해주고, 원한다면 기분 좋게 재워 주기도 하죠. 그런 호의를 사양하는 건 오히려 실례예요.
-그러지 말고 책에서 읽은 지식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의미에서.
-그것은 민족성에서 유래하는 친절한 마음에서인가?
-아니요. 모두가 함께 살기 위해서예요. 계절마다 목초를 찾아서.... 잃어버린 말과 양을 찾아서.... 유목이란 이동의 반복이거든요. 이동 중 침식은 도중에 만나는 게일 사람에게 신세지는 수 밖에 없어요. 그것이 설령 생판 모르는 남일지라도. 하지만 몇백 년씩이나 반복되어온 일이기 때문에 당연시되고 있어요. 몽골이라는 제한된 지역과 생활형태에 있어서는 고도로 합리화된 경제체제라 할 수 있죠. 교수님 식으로 말하면...
-맞는 말이야. 하지만 난 동시에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일본말이 떠오르는군. 내가 지금 호란과 이렇게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내일 헤어지고 말면 다음에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는 게 현실이야. 그런 생각을 하면, 만남이라는 건 하나 하나가 모두 소중하다고 할 수 있지.
-푸하. 의외로 감상적이시군요, 교수님. 메일, 휴대폰, 비행기.... 인간이 다시 만날 수 있는 수단은 얼마든지 있어요.
-그들은 유목민이에요. 바람처럼 어디로든 멀리 떠나 버리는.... 그들에겐 전화도 없어요. 아깐 웃었지만 이곳 몽골에서는 지금도 일기일회가 살아 있어요.
-호란. 그들이 바람을 따라갔다면 우리도 같이 바람을 따라가 보는 게 어떨까. 틀림없이 만날 수 있을 거야.

                                                                                       15권 중

멀고도 독특한 세상(몽골)에서 사랑하는 거기 여인과 살고자 하는 일본 청년 야베의 이상을 보면 그저 감상적인 얘기다 치부하고도 싶지만 유목이라는, 긴 시간 동안 우리와는 단절됐던 생활 형태에 대한 유전자의 향수(?)가 되살아나기도 합니다. 우리는 스키토 시베리안. 좀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이 반도에까지 말을 타고 달려온 유목민의 후예니까요. 또한 지금의 우리는 해결을 기다리는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고도의 경제사회를 살고 있으니 유택교수의 말처럼 어떤 대안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무시하고 굳이 이 쳅터를 인용한 것은 다름 아닌 '사이버' 세상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입니다. 웹이라는 대지 위에 드디어 생활자들이 생겨나고 서핑이라는 여행을 통해 그들의 게일을 만나고 또 헤어지는데 말이죠. 의미심장하게도 만나는 게일마다 너무나 친절하고 배불리 먹여 주고 또 이야기를 나누는 데 인색하지 않았던 것을 상기하자면, 비록 실제 몽골을 겪어 보지 않았지만 이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유목생활이 아닌가 싶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것이 일기일회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친절이라는 덕목 또한 웹이라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합리적인 생활형태임을 그 곳 생활자들이 이미 경험으로 증명해 놓았으니 말입니다. 유택교수가 찾고자 했던 것. 우리 고도경제사회에 대한 해답. 그것으로서 부상하고 있는 사이버세상의 경제. 그 미래를 현재의 몽골에 비교하는 몰역사적 기대보다는 유목에 대한 좀더 발전적인 기대가 생겨납니다. 유목생활이라는 하드로 소프트인 우리 인간은 과연 옮겨 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정말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요즘엔 모두 on이 아닌 off를 알짜배기라 하는데, IT보다는 굴뚝이라는데 말이지요. 그러나 세상의 변화는 그 시작이 언제나 미미했음을, 미심쩍었음을, 엄청나게 불안정했음을 기억합니다. 잊지 않고 유심히 주목해야 할, 그 틀을 익혀 두어야만 할, 욕심대로라면 발 한짝 담궈 놓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세상이 사이버 세상일 듯합니다.

오호호~

만화를 통해 무슨 공부를 한다는 것은 정말 우스운 일입니다. 공부하려고 만화를 집어 드는 경우도 없을 뿐더러 공부하라고 만화를 그려 내는 작가도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가끔 이렇듯 비범한 만화가로부터, 열정을 가진 만화편집자로부터 본의 아니게 많은 것을 배우게 됨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만화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는 만화 역사가 긴 일본이 가진 소프트라고도 할 수 있지요. 우리 만화가에도 이런 작가들이 속속 등장하리라 기대합니다.

일본 만화층의 두터움을 드러내 주는 <천재 유교수의 생활>. 시츄에이션 드라마라 이름을 붙일 수 있는데, 그만큼 많은 에피소드들이 들어 있고, 놀랍게도 개개가 허접한 것이라곤 없다는 것이 그 탁월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츄에이션 또는 옴니버스 스타일의 만화를 꼽으라면, <호텔 아프리카>, <닥터 스크루>, <마스터 키튼>, <못 말리는 간호사>, <아름다운 시절>, <갤러리 페이크> 등이 있지요. 이 모두가 <천재 유교수의 생활>과 같은 감동을 줄 것임을 약속합니다. 한번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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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카 Masca 1
김영희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아사렐라는 반쪽만 마스카족인 마법사. 후에 대마법사가 되는데..

스카족이란 이마에 에벤이라는 물방울같이 생긴 표식을 가지고 태어난 예언자 그룹으로 시빌라라는 땅의 기득권층입니다. (MASCA는 이태리어로 마법사라네요.) 그녀는 대마법사가 된 후에 아주 오래 전, 자기가 19세 때의 얘기를 풀어놓는데요, 그 얘기가 바로 <마스카-헤셰드의 대마법사 이야기>입니다.

아사렐라는 아주 귀여운 아가씨입니다. 초보마법사라서 아주 하찮은 마법 밖에는 쓸 줄 모르지만 그녀를 기르고 가르친 스승인 매력적인 619세의 마법사 엘리후의 총애를 받고 있어요. 사람들의 실종 사건으로 분분한 어느날, 아사렐라는 사람들의 실종원인이라는 마왕을 찾아가게 되는데요, 웬일로 스승인 엘리후가 그 앞을 막아 섭니다. 그래도 당돌하고 고집세고 순진한 아사렐라는 스승의 말을 거스르고 자기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 버릴 것이라는 마왕과의 만남을 실행하게 되지요. 사실, 마왕은 아기였던 아사렐라를 만난 적이 있고 그때 보호자였던 엘리후에게서 그녀의 심장을 예약해 둔 일이 있었거든요. 약 20년 전, 초자연의 악의없는 재해로 그들의 땅 시빌라가 황폐해지자 그걸 보다 못한 마법사 엘리후는 마왕을 찾아가게 됐지요. 마왕은 재해를 수습해 주는 대가로 엘리후에게 아기 아사렐라의 심장을 요구했고, 엘리후는 그걸 주기로 한 것입니다. 일은 그들의 운명을 증명하려고, 그 때의 아기인 줄 모르는 마왕의 시선이 아사렐라에게 향해 버리게 되고 말이지요. 결국 마법사 엘리후와 불사의 마왕 카이넨은 아사렐라를 사이에 두고 천지차인 서로의 마법을 겨룰 수 밖에 없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아사렐라의 선택에 달려 있으므로 그 둘의 마법력 차이가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 당연지사. 더구나 뜯겨져 나온 살아 있는 심장이나 찢겨지고 부서지는 육체 따위는 이미 문제라는 위치에 서질 못합니다. 부서지는 육신은 금방 다시 제 모양을 찾아 싱싱하게 살아나는 희한하고 부러운 세상이 바로 <마스카>의 세상이니까요. 엽기만발인 이 시대가 내놓은 순정환타지라서일 수도 있겠지요.  

흔한 삼각관계지만 마법사에, 1만 5000살 가량의 불사체인 마왕에다, 이천년마력에다, 망자의 사냥꾼이라는 저승의 벨리알까지 등장하는 마스카라는 공간에는 사랑이라는 감정 말고도 삶과 죽음의 성찰이 곁들여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이 만화 <마스카>의 매력입니다. 게다가 그냥 쉽게 쉽게, 진부한 삼각관계 속의 좌충우돌로만 가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여서 흥미를 더하지요. 얘기를 풀어 나가는 방법도 말이죠, 나중에 전개될 사건의 의미를 간단한 회고 형태로 미리 풀어놓고 시작하므로 독자를 거기에 몰입하게 하는 효과를 자아냅니다. 자칭 신인만화가치고는 상당히 그럴 듯한 연출이 아닐 수 없어요.

게다가 그림은 꽃미남, 냉미남 천지! 마왕 카이넨은 조연에, 악역에, 느끼남인데도 불구하고 순정만화잡지 윙크사상 역대 3위 안에 꼽히는 인기절정 캐릭터라네요.^^ 하여간 요즘 나오는 순정만화들을 보고 있으면 그림체라는 것도 분명히 진화한다,라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하기야 사람은 결국 배우면서 살게 마련이지요... 그리고, 배운 걸 응용하고 그러면서 결국 자기 것을 만들어 내고야 만다는 것도 새삼스럽게 실감했다고나 할까요?

만화 <마스카>를 보면서 제가 주목한 부분은 '不死의 몸'이라는 겁니다. 불사체인 마왕족, 벨리알들은 무엇으로 불사의 생을 살아가는가. 더불어 목숨을 건다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그들의 인생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물음들입니다. 이건 작중인물의 하나인 여자 벨리알, 하닷사의 질문이기도 하지요.

확실히 우리 족속에는 뭔가 결여된 것이 있는 모양이야. 수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어. 불사체들이 목숨을 건다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면 우린... 무엇으로 이 영원의 생을 살아야 하지?

뭐, 꼭 목숨을 걸 것이 있어야 사는 거냐, 하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게 없는 삶이 권태롭다는 건 대개가 인정한 사실. 카이넨이 권태와 싸우다 발견한 재미가 다름 아닌 당돌하고 순진한 아사렐라였던 거에 주목한다면 하닷사의 질문에 이의를 달 필요까진 없다는 생각입니다.

마스카를 읽다 보면 시몬느 드 보봐르의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소설이 생각납니다. 공간과 시간이라는 측면에서 죽음과 싸우는 개인의 문제를 다룬 소설이지요. 하나는 죽지 않았으면, 영원히 살 수 있었으면 하는 여자, 하나는 영원한 불사의 몸으로 죽을 수 있기만을 소망하는 남자. 오래 전에 읽은 것이라 희미하지만 보봐르는 분명 사람은 죽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아, 어폐가 있네요. '사람은 죽어야 한다'라니 말이나 됩니까? 보봐르가 그랬다고 사람이 모두 죽는 게 아닌데...^///^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살자'라는 주장이었다고 할까요? 불사의 몸으로 사는 남자(이름이 펠릭스...였던 거 같네요...;;;)의 절규가 <마스카>를 읽으며 되살아 나는 걸 보면 인간의 일회적 삶에 대해 저도 철저히 수긍했던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게다가 사르트르의 저작을 동시에 읽었으니 그 결과는 둘 간의 강력한 화학작용의 결실이었던 게지요. 어쨌든 본 얘기로 돌아가서, 유한한 인간 아사렐라의 질문은 저도 모르게 <모든 사람은 죽는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수없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리고 하나의 선택을 한 그 순간이 지나면 한 번쯤은 뒤돌아 보게 되는 것이다. 내가 한 선택은 옳았는가. 만약 다른 길을 택했다면 지금 나는...달라졌을까....

하여간 <마스카> 안에서 묻고 있는 불사의 몸에 관한 사색들이 어떤 대답으로 그 결실을 맺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불사의 마왕 카이넨은 아사렐라에게 닥치는 많은 시련들 속에서 아사렐라가 온전히 살아 있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데요, 그의 연적 엘리후라면 목숨을 건 사랑이란 걸 보여 줄 수 있지만 이 카이넨이란 마왕은 그럴 수가 없거든요. 불사의 몸이니 목숨이란 게 여느 목숨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야기가 되려고 그러는 것이겠지만 금방 회복될 카이넨의 상처를 보고 같이 아파하는 아사렐라가 신기할 지경이에요. 그런 마왕이 어떻게 아사렐라같은 유한한 생명을 사랑할 것인지 궁금하군요. 어쩌면 작가는, 카이넨이라는 존재, '수 천 년 동안 돌처럼 굳어 움직이지 않게 되어버린 그 심장에 아랑곳없이,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사람에게만은 약한 사람...'은 그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연민으로 인해, 그것의 변형인 것도 같은 사랑으로 인해 산화할 수 있다고 주장할까요? 벨리알도 결국 태어난 생명이니 언젠가는 거둬질 건데 그 계기가...바로 뭐?!, 이렇게...말이지요. 훗. 저야말로 폭주족...--;;;

다행히 작가는 10권 이상은 생각하지 않는 듯하네요. 그래요, 삼각관계라는 설정으로 길게 끌어 가는 것이야 일도 아니지만 그렇게 되면 결과는 3류를 면치 못하지요. <마스카>는 그리 되기엔 아까운 작품입니다. 작가의 건투를 빌어요...

하나 더!

도대체 작가는 왜 엘리후가 주인공이라고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엘리후의 비중이 카이넨에게 밀리고 있다는 걸 분명히 느끼고 있을 텐데요. 그래서 더더욱 결말이 기다려지는 건지도... 후후.  둘이서 맞장을 뜰 비장의 카드를 숨기고 있는 건가? 과연 엘리후가 내밀 카드는 무엇일까요... 기른 정이라면.. 드라마틱하지 않다구요, 그건! 그러나 어쩌면 마력이 아닌 인간의 자의지로 저승이라는 망자의 계를 벗어난 아사렐라의 힘에서 그 끝의 기미를 우리는 이미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흠...


 

덤!!!


영원히 살면서 천사로 순수하게 산다는건 참 멋진 일이야.

하지만 가끔 싫증을 느끼지...

영원한 시간속을 떠다니느니

나의 중요함을 느끼고 싶어.

내 무게를 느끼고 현재를 느끼고 싶어.

부는 바람을 느끼며 "지금" 이란 말을 하고 싶어.

지금...지금...

 

<"베를린 천사의 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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