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1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자기 이름

이름의 유래를 설명해달라는 수법이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은 구치외래에서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자기 이름은 그 사람이 가장 많이 듣는 단어다. 그 특별한 단어에 대해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은 그 사람의 생생한 세부사항을 알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답을 거부당해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거주 그 자체에도 그 사람의 자세가 드러나는 법이니까.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을 함부로 알려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96)

 

코코넛게임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을 서로 미루고 있는 꼴이다. 이런 것을 아마 코코넛 게임이라고 하던가?(169) 

소문
소문은 담쟁이넝쿨과에 속하는 악질적인 잡초다. 신경쓰기 시작하면 골치아프고, 깜빡 무시하고 있다 보면 손발이 엉망으로 뒤엉켜버린다.(211)


액티브 페이즈(active phase밀어붙이기)조사의 비결
1. 상대가 화내느냐 화내지 않느냐,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유지한다.
2. 탁 치고 재빨리 빠져나가기. 탁 치기 전에 숨을 장소를 확보해둘 것.
3. 용건이 끝나면 오래 머무는 것은 금물.
4. 복수 동시 면담을 통해 반사정보를 포착하라.
5. 온몸을 던져 정보를 얻는다.
6. 아마노이와토 작전
7. 반사소거법.
8. 약점을 철저하게 공략하라.
9. 최후에 믿을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다.
10. 모든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 (2부)

응용심리학(일상생활에 필요한 심리학)

┌설득 - active phase 조사법(밀어붙이기)-진심토크
│       - 상대의 심장을 움켜쥐고 곪아있는 병소(病巢)에 메스를 들이댄다.
└심리분석 - passive phase 조사법(관찰면담)-셀프 포트레이트 토크
                   - 대상을 자신의 테두리 안에 끌고 들어와 거기서 털어놓게 한다.
                   - 원인 ┌착한 성정
                             ├공격성의 광도한 억제
                             └트라우마에 대한 보상작용


면담조사
- 오펜시브 히어링 공격적인 면담조사 ↔ 디펜시브 토크 수비적인 대화
- 조사하는 사람이 오펜스라면 조사 대상은 당연히 디펜스.
- 셀프 포트레이트 히어링-상대에 따라 달라지고
  예: 상대가적극적이고 과감하다면 오펜시브 토크, 
       상대가 소극적이라면, 
                  그 이유가 비밀유지를 위해서라면 스네일 토크 snail talk, 
                  고민이 원인이라면 시아네모네 토크 sea anemone talk.(267) 

※ 페시브 페이즈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 바깥쪽에 아주 약간이라도, 풀칠을 하기 위해 남겨놓은 부분 같은 액티브 페이즈가 필요하다.(239) 

미숙하고 독선적인 성격의 인간은 패시브 페이즈와 액티브 페이즈 사이에서 이미지 변화가 일어나기 쉽다. 액티브 페이즈에서 숨기도 있던 본질이 나온다.(289) 

액티브 페이즈와 패시브 페이즈의 차이는 시제(時制)에 있다. 과거를 간파하는 패시브 페이즈. 미래를 창조하는 액티브 페이즈.  

아마노이와토 작전(天노巖戶작전)=가제오케(風桶)
- 상대방이 저절로 이쪽 의도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작전. 
- 액티브 디펜시브 변칙 사용을 통해 패시브를 달성한다는 고도한 응용기술.
- 바람이 불면 통 만드는 집이 돈을 버는 법.
예 : 내가 오토모씨를 괴롭혔습니다.오토모씨가 울었죠. 사카이군에게 얻어맞았습니다. 하바씨는 내게 적개심을 느꼈습니다. 내가 빡빡하게 굴자 히무로 선생이 숨어 있던 굴에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298)

대화와 야구
시구식에서 던지는 공은 헛스윙하는 것이 서로의 약속이다.
(271, 시라토리처럼, 직구를 받아서 바로 백스크린으로 넘겨버리는 짓은 안 한다)
-가키타니

나처럼 뒤가 구린 사람은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많아. 너무 겁주지 마셔. (305)

  

::: 내용도 질이 높고, 주인공 시라토리의 패기도 사람을 도발하는 맛이 살아있고, 현직 의사의 글이라서 신뢰도도 높고, 끝에 붙인 번역자의 자세는 그야말로 흐뭇하고. 즐거운 읽기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덴의 동쪽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1
존 스타인벡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앞부분을 읽다가 무슨 일이 있었던가 그만 읽기를 접은 작가였다. 그때가 아마 카슨 매칼러스에 푹 빠져 있던 때였던가.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을 읽고 감동한 나머지 미국 소설가를 찾아 도서관을 뒤지고 있었던 때였기도 했다. 분노의 포도 앞부분의 피폐함이 거슬렸을 수도 있다. 그때 내가 스타인벡 대신 들었던 작가가 바로 토마스 울프였을 것이다. 이후로 존 스타인벡은 영화로만 만났다. 영화를 보면서 원작소설을 탐하지 않았던 작가. 그만큼 내 흥미도 관심도 끌지 않았던 작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유는 단 하나다. 화려하지 않았다는 것. 궁핍한 시대의 내핍과 그만큼 풍부하지 않은 정신적 여유는 그 시절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것이라 외면하고 싶은 것들 중의 하나였다. 1000p.를 넘어가는 이 소설을 한번 싫증도 없이 잘도 읽어버린 지금에도 사실 분노의 포도를 읽고 싶은 생각은 없다. 마치 이 작가에 대해, 이 작가가 보여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본 것같은 느낌이 들어서 다른 작품을 더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그만큼 이 소설은 풍부하고 방대하고 유려하며 깊이있다. 

형제 이야기. 인간의 갈등 중 으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관계가 바로 형제간. 성서 속 카인과 아벨을 모티브로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살리나스계곡을 배경으로, 전체적으로는 3代의 남자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즈음의 소설들처럼 머릿속으로부터 가슴으로가 아닌 몸으로부터 나와 삶에 이르는 이야기. 등장하는 사람들 하나 하나가 실제 어딘가에서 이렇게 살고 있었을 것같은 생동감이 넘친다.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아주 많이 개입된 소설이어서 얻은 결과일 것이다.  

1. 캐릭터의 향연
인물의 생기란 사실 개성의 다른 이름이다. 개성은 성격. 아주 다양하고도 섭외가 불가능한 개성적 인물들이 등장한다. 각개 인물 하나 하나가 평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적이라기에는 이미 획득한 성격적 보편성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할까. 대개는 그래, 이런 사람 있어, 이런 사람 봤다, 정도의 감흥으로 충분했었다. 어찌보면 소설에서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은 인물을 본 지가 하도 오래되서 여기 등장하는 캐릭터들에 몰입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새뮤얼과 라이자 부부는 내 사랑을 독차지하고도 남았지만 그들만 사랑하기에는 이 소설 안에 든 사람들이 너무나 매혹적이다. 애덤 같은 남자, 찰스 같은 남자, 캐시 같은 여자, 같은 남자, 아론 같은 남자, 같은 남자, 새뮤얼 같은 남자, 라이자 같은 여자, 레시 같은 여자, 같은 남자, 올리브 같은 여자 등등등. 아 끝이 없다. 진정 캐릭터 은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화 에덴의 동쪽에 무엇이 들어 있었던가. 그저 단면적인 반항아 하나가 들어 있었을 뿐. 소설 원작이 있는 경우 영화 서사에 그저 그런 느낌이 든다면 반드시 그 원작을 찾아 읽어보아야 한다. 왜 영화와까지 되었는가는 정작 영화 자체로는 보여줄 수 없는 것이 다반사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 원죄 또는 운명
서구의 창작물을 접할 때는 언제나 답답했다. 예외없이 성서가 언급한 원죄의 카테고리 안에서 인간을 다루므로 이단이 아닌 이상 결론에 대해서는 충분한 납득이 항상 어렵다. 그래서 이방인들의 팀셸이었을 것이다.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운명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은 것이라는 주제의 울림이 꽤나 크다. 이는 분명 내가 가진 개인적 편견, 저들의 운명관이라는 게 원죄의식이지, 에 든 그것을 깨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3. 창세기와 팀셸

 

 

4. 악인에 대하여

 

 

5. 중국인 리이

 

 

6. 경험과 소설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이 시스터즈 키퍼 - 쌍둥이별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왜 작가가 이 결말을 취했는지 곰곰 생각하게 만든다. 우연이라니. 이토록 리얼한 이야기의 끝을 우연성에 매달리게 하다니. 영화조차 거부하게 만든 이 결말을 작가는 왜 선택한 것일까. 그야말로 작품성을 100% 떨어뜨린다는 걸 작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을텐데. 그런 생각으로 한 사흘 있다보니 얼추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어떤 결말이든 이 가족은 슬픔 속에 남아 있게 되었을 것이다. 이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도 그 곳을 떠나지 않은 것이 슬픔이었다.  

아마도 그 슬픔을 뒤집고 싶었을 것이다. 슬픔 속에서도 도덕적이고 옳은 일을 한다 주장하는 그 누군가를 뒤집고 싶었을 수도 있다. 나아가 어쩌면 죄책감으로 죽을 때까지 불행했을 수도 있는 아이를 얼른 그 잔인한 세상에서 건져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독자만은 편하게 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가적인 도의 뭐 그런 거. 그렇게 독자가 제일 먼저 잊고, 어린아이들이 그 다음 잊고, 친구들이 그 다음으로 그 아이를 잊어 버리고, 아버지가 드디어 아이를 잊어 버리는 때가 오겠지. 그러나 가장 마지막까지 울고 또 울어야만 하는 사람은 엄마다. 영원히 잊지 못해야 하는 사람도 엄마다. 자신이 낳은 모든 자식을 똑같이 못 잊어할 사람이 바로 엄마. 작가도 그런 엄마를 용서하지 않은 것 같아서 한편으론 마음이 놓이고 한편으로는 그지없이 마음이 무겁다. 

여하간, 작가가 선택한 이 결말에 든 의도가 무엇이든 나는 영화의 결론이 훨씬 좋았다. 끝나기 1분 앞두고 전쟁, 재해, 사고 같은 건 막장드라마들이나 택하는 결말이다. 물론 그래서 이 작가의 작품들이 문학성과 대중성 모두를 거머쥐었다 얘기하는지는 몰라도. 신파성이 작품성을 확 낮췄다고나 할까. 그 혐의는 캠밸에 가면 거의 폭포 수준이지만. 그렇게 줄리아가 사라져 간 것이었을 것이므로 영화는 영화답게 하나의 이야기만 가지고 눈물을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이리라.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 1분 전까지 별 다섯 개였다가 1분 후 별 네 개. 이런 소설도 참 오랜만이다.
 

밑줄 

나는 아주 특수한 목적으로 태어났다. 나는 값싼 포도주나 보름달이나 순간의 흥분에 따른 결과물이 아니었다. 어떤 과학자가 귀중한 유전 물질의 특수한 조합을 만들어내기 위해 엄마의 난자와 아빠의 정자를 연결해서 태어난 것이다. 부모님이 작은 태아인 날 선택하게 된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내가 케이트 언니를 살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 그러나 만약 케이트 언니가 건강했더라면 난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지상에서의 한때를 보내기 위해 누군가의 몸에 들러붙기만을 기다리며 지금도 천국이나 어딘가를 부유하고 있지 않을까? 분명한 건, 내가 이 가족의 구성원은 아닐 거라는 거다. 알겠는가, 이 자유로운 세상의 다른 아이들과 달리 나는 우연히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 만약 부모가 어떤 이유가 있어 아이를 가진다면 그 이유는 더욱 두드러진다. 그 이유가 사라지면, 나란 존재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9

설명할 게 너무 많다. 내 피가 언니의 혈관으로 스며들고 있다는 것, 언니에게 줄 백혈구를 뽑기 위해 간호사들이 날 꼼짝없이 누른다는 것, 의사가 한 번만 갖고는 안 된다고 말한 것. 또 골수를 뽑고 나면 멍이 들고 뼈가 욱신댄다는 것, 언니에게 줄 여분을 만들려고 내 몸속 줄기세포를 더 많이 발화시키는 주사를 맞는다는 것. 나는 아프지 않지만 차라리 아픈 게 낫겠다는 사실. 내가 태어난 이유는 언니를 위한 결과물일 뿐이라는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에 대한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의견을 말할 자격이 있는 당사자에게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는 사실.
설명할 게 너무 많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설명을 한다. “신이 아니에요. 제 부모님이에요.” 내가 말한다. “내 몸의 권리를 찾기 위해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25

안나는 우리에게 신나는 리듬을 주는 아이다. 그런 애가 묵묵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까 침묵에도 소리가 있다는 걸 알겠다. 53 

방화는 우리가 불과 싸울 때 이용하는 과학을 그대로 따르지 않기 때문에 위험하다. 방화는 우리가 안에서 불과 싸우고 있을 때 건물이 붕괴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위험하다. 58 

초신성들은 가장 밝은 은하수보다도 더 밝다. 초신성들은 죽지만, 사라지는 모습은 누구나 볼 수 있다. 60

너무 빨라 보지도 못한 엄마의 손이 머리가 홱 돌아갈 정도로 내 얼굴을 세차게 때린다. 엄마는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을 자국을 새긴다. 다섯 손가락은 치욕이다. 74 

어둠 속에 있으면 침묵이 고막을 밀고 들어와 귀를 먹게 하는 것을 알고 있는가? 79 

서로 한 시간 거리도 안 되는 곳에 살지만 서로간의 철학적 소신은 천 리나 된다. 83 

알아야 할 게 끝이 없다. 무수한 침들이 어찌나 빠르게 날아드는지 이제는 찔리고 있다는 느낌조차 없다. 결국은 이거다. 생각하지 말라. 87  

상륙거점을 모래주머니로 막는 일에 열중하다 보면 멀리서 오고 있는 해일은 잊을 수 있다. 그렇지 않고 해일에만 열중한다면, 미쳐버리고 말 거다. 90

자신의 세계가 완전히 멈춰버린 동안에는 다른 사람의 세계도 그렇다고 가정하기가 쉽다. 93

이제 와서 나란 녀석도 뭔가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는 건 왜였을까? 나 자신조차 살릴 수 없는 주제에 뭐 때문에 동생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135 

나는 방탄 유리벽을 통해 케이트를 응시한다. 감마선, 백혈병, 부모라는 것. 우리를 죽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것들이지만, 우리는 그들이 오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 144 

내 반쪽은 이미 안나가 신중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 애는 어떤 상황으로 무모하게 뛰어드는 아이가 아니다. 나와 함께 가는 것에 대해서도 이렇게 오래 생각하는 아이라면, 가족의 그물에서 풀려나는 문제에 대해서도 틀림없이 오래 열심히 생각했을 것이다. 150 

전통적으로, 부모는 아마도 자식을 위한 최선이라는 명목으로 자식에 대한 결정을 할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들 중 한 아이만 위하다 보면 그 질서는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그 무너진 돌덩이들 밑에는 안나 같은 희생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 최근에 북극곰 새끼가 태어 났는데, 다른 동물원에 줬대요.
- 새끼는 자기가 무슨 잘못을 해서 멀리 떨어지게 됐다고 생각할까요? 154 

입가에는 미세한 주름들이 나있다. 내가 가까이서 들을 수 없었던 세월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괄호처럼. 161 

서커스에서 줄타기 곡예사는 관중들이 자신의 공연을 예술이라 믿어주길 원하지만, 사실 깊이 들여다 보면 저기까지 무사히 건너가기만을 바란다는 걸 아세요? 171 

자기가 누구건 간에, 사람에겐 늘 자기 아닌 딴 사람이길 바라는 반쪽이 있다. 그리고 찰나일지라도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건 기적이다. 189 

제시 오빠가 틀렸다. 나는 내 마음이 편해지려고 언니를 보러 온 것이 아니다. 나는 언니가 없으면 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하기 힘들기 때문에 왔다. 190 

구조물 화재가 났을 땐 내가 불을 이길지, 아니면 불이 나를 이길지 알 수 있는 순간이 있다. (......) 모든 것이 나를 압도할 때, 모든 불은 내 도움 없이도 스스로 타버린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야 할 때, 그때가 바로 철수할 때다. 195 

갇힌 모든 것이 그렇듯, 붕 또한 달아나려는 자연스러운 본능을 가지고 있다. 196 

아이들은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다. 두리번 두리번 아이를 찾지만 아이는 방에 있지 않고 벽장에 숨어 있다. 두리번거리고 찾고 보니 아이는 세 살이 아니고 열세 살이다. 부모 노릇은 사실 추적의 문제다. 다음 움직임을 볼 수 있도록 내 아이가 너무 앞서 가지만 않기만를 바라면서 말이다. 200 

보석은 엄청난 열과 압력을 가한 돌에 불과해. 비범한 것들은 언제나 사람들이 결코 볼 생각을 하지 않는 곳에 숨어 있어. 207

나는 그 애의 머리카락을 만진다. 혹 내가 기적을 써버린 건 아닐까. 242 

일곱 살 때 땅굴을 파서 중국으로 가버릴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263 

아는가, 어둠이란 상대적이라는 걸. 263 

안나는 바로 눕더니 내 어깨 위에 머리를 기댄다. 매 순간, 은빛 광선이 타오른다. 괄호, 감타부호, 콤마. 말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빛으로 이루어진 문법이다. 274 

변호사들에게 통하는 윤리는 세상 사람들의 윤리와는 다르다. 사실 우리는 읽고, 시험 보고, 관행을 유지하기 위해 따라야 하는 성문화된 규약-- 법조윤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 규범들이 우리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도덕적이라고 하는 짓들을 하게 만든다. 가령 누군가 내 사무실을 찾아와퓨"린드버그 아기를 죽였어요." 하고 말하면, 나는 시신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그 사람은 내게 "제 방 밑에, 주춧돌 아래 1미터쯤 되는 곳에요." 하고 말한다. 내 일을 제대로 하려면 아기가 어디 있는냐고 말해서는 안 된다. 사실 그렇게 했다간 법조계에서 추방당할 수도 있다. 292 

다들 알듯이 불과 희망은 연결되어 있다. 그리스 신화를 따르자면 (......) 그는 인간을 똑바로 걷게 해 주었고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주었다 (......) 인간을 벌하기 위해 제우스는 최초의 여자--판도라--를 창조해 그녀에게 선물을 주었다. 절대 열너보아서는 안 되는 상자를. (......) 희망이 달아나기 전에 간신히 뚜껑을 닫았다. 그것이 우리가 다른 것들과 싸우기 위해 남긴 유일한 무기다.
소방관들에게 물어보라. 그 이야기는 진실이라고 말할 것이다. 흠. 아버지들한테도 물어보라. 299

내가 하고싶은 질문은 이렇다. 당신은 하늘 나라에 있을 때 몇 살로 있고 싶은가? 내 말은, 하늘나라라면 가장 예쁜 모습으로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사람이 늙어서 죽으면 이도 없고 머리도 벗겨진 채 돌아다닐까? 이 질문은 고에 꼬리를 문 질문들로 펼쳐진다. 목매달아 죽으면 혀를 토해낸 채 추하고 창백한 모습으로 돌아다닐까? 전쟁터에서 죽으면 지뢰 폭발로 날아가버린 다리 한 짝이 없이 영원을 보내게 될까?
당신은 아마 선택을 할 것이다. 별이 되고 싶은지, 구름이 되고 싶은지, 저녁으로 치킨이나 생선이나 만나(신이 내린 양식) 중 뭘 먹고 싶은지, 다른 사람들에게 몇 살 때 모습을 보이고 싶은지 답을 할 것이다. 가령 내 경우엔 열일곱 살을 택할 거다. 그때쯤이면 가슴이 제법 커져 있을 것이고, 쭈글쭈글한 100세 할머니로 죽는다 해도 천국에서는 어리고 예쁠 테니까.
한번은 어떤 만찬 중에 아빠가 자신은 아무리 나이를 먹고 또 먹어도 마음은 늘 스물 한 살이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의 인생에는 바퀴 자국처럼, 아니 그보단 소파의 꺼진 부위처럼 마모되는 지점이 있는 듯하다. 자신에게 어떤일이 있든 늘 거기로 회귀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 문제는 모든 사람이 달라진다는 거다. 만약 이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세월을 떨어져 있다 서로를 찾으려고 하면 하늘나라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당신이 죽어서 5년 전에 죽은 남편을 찾아다닌다고 해보자. 당신은 일흔살의 남편 모습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 남편은 최고로 멋진 열여섯살로 돌아가 더할 수 없이 신나게 돌아다니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니면 당신은 케이트고 열여섯 살에 죽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이 세상에서 결코 도달하지 못한 서른다섯 살의 모습으로 있겠다고 선택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럼 도대체 어떻게 당신을 찾을 수 있을까? 364-365  

시간은 착시다.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견고하거나 강하지 않다. 416 

남편에게는 늘 내가 바라왔으며, 나에게도 전염되는 단호함, 조용한 의지, 한결같은 평화가 있다. 461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완벽해서가 아니잖아. 완벽하지 않은데도 사랑하는 거잖아. 502 

사람들은 집이 영원할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세찬 바람이나 위력적인 공에도 황폐화될 수 있다. 그 안에 사는 가족도 다르지 않다. 513 

영어에는 고아와 과부라는 말은 있지만, 아이를 잃은 부모에 해당하는 말은 없다. 541 

슬픔에도 유통기한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 울다 깨어나도 괜찮지만 한 달을 넘기면 안 된다고 정해놓은 법령 같은 게 말이다. 544 

슬픔은 예기치 않게 일어날 때 좀 기묘해진다. 마치 가족의 상층부만 감싼 채 벗겨지고 있는 반창고 같다. 그 하복부를 보면 결코 아름답지 않은데, 우리 가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는 헤드폰을 낀 채 며칠째 방에 만 처박혀 있었다. 그래야 엄마가 우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아빠는 몇 주 동안 24시간 근무를 했다. 그래야 우리끼리만 있기엔 너무 넓기만 한 집으로 오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5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추노(推奴) O.S.T
엠씨 스나이퍼 (MC Sniper) 외 노래 / 포니캐년(Pony Canyon)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드라마보다도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이름은 빨강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근 5년 동안 이 소설을 꺼내 읽다 말다를 얼마나 했는지... 그동안 소설 아닌 것에 눈길이 가 있었고, 눈길 가는 곳에만 집중하는 내 습벽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책꽂이에서 홀대를 받았던 그 소설. 읽은 앞 부분의 몇 개 챕터만으로도 이 소설의 무게가 어느 정도일 거라는 견적 정도는 뽑아지는 게 애초의 내 깜냥이라서 이제야 소설로 돌아온 내 눈길이 되었기에 정독할 수 있었던 소설이다. 내게 있어서는 지금의 이 눈길로만 소설읽기가 가능하다. 

그래. 이럴 줄 알았던 것이다. 이 소설을 쓰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했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 소설을 쓰는 데 바쳤을까. 그는 이 소설을 쓰며 얼마나 진지했을까. 스토리보다 소재에 마음이 끌려 그 넓고도 협소한 바운더리에서 도통 벗어날 수 없었을 것임은 명약관화다. 세밀화를 세밀하게 그려내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기안을 그려야 했을까. 얼마나 많은 기안을 그리고 지우고 그리고 찢어 버려야 했을까.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선택했을 이 소설의 구성법은 그야말로 탁월하다. 빌리고 싶은 생각이 정말 꿀떡같다. 그동안 그리고 지금에도 수도 없이 시안을 잡고 버리고 또 잡고 하는 중이라서 소설을 읽을 때마다  그 소설의 고유한 구성법에 매료되고 만다. 물론 그것을 완독한 이후 나도 모르게 잊혀지는 것이 상례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구성법은 잊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파워풀해서이다. 사건은 분명히 진행되고 진행의 나레이터는 등장인물. 한 사람에게 한 개 챕터가 할애된다. 왜 그 부분의 진행을 그가 맡았는지는 모른다. 왜 그를 통해 그 부분을 이해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그 부분을 그 아닌 다른 인물의 시점으로 들었다면 얘기는 어떤 이면을 새로 보여주게 될까. 그런 상상을 하고 있으면 두 권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의 분량은 열 권의 부피를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 때 역사에 대한 풍부한 이해가 바탕이 된 소설이기도 한 것이다. 

나는 대체로 독자를 도발하는 소설을 제일급으로 친다. 같이 터키소설인 <에프라시압 이야기>에서도 느꼈지만 그 문화의 기저가 참으로 오래되고 튼튼하고 풍성한 나라의 소설답다. 후반의 달리기가 워낙 빨라서 왜 그 사람인가, 왜 그여야 하는가를 한눈에 깨닫기가 쉽지 않았다. 앞부분, 반복에 반복을 하는 읽기를 해야만 했다. 그래도 훗날 언젠가 다시 한번 읽어보리라 생각하고 있다. 도발된 상태가 아닌 상태가 되어서 읽는 맛도 보고 싶어지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