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동쪽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1
존 스타인벡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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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앞부분을 읽다가 무슨 일이 있었던가 그만 읽기를 접은 작가였다. 그때가 아마 카슨 매칼러스에 푹 빠져 있던 때였던가.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을 읽고 감동한 나머지 미국 소설가를 찾아 도서관을 뒤지고 있었던 때였기도 했다. 분노의 포도 앞부분의 피폐함이 거슬렸을 수도 있다. 그때 내가 스타인벡 대신 들었던 작가가 바로 토마스 울프였을 것이다. 이후로 존 스타인벡은 영화로만 만났다. 영화를 보면서 원작소설을 탐하지 않았던 작가. 그만큼 내 흥미도 관심도 끌지 않았던 작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유는 단 하나다. 화려하지 않았다는 것. 궁핍한 시대의 내핍과 그만큼 풍부하지 않은 정신적 여유는 그 시절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것이라 외면하고 싶은 것들 중의 하나였다. 1000p.를 넘어가는 이 소설을 한번 싫증도 없이 잘도 읽어버린 지금에도 사실 분노의 포도를 읽고 싶은 생각은 없다. 마치 이 작가에 대해, 이 작가가 보여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본 것같은 느낌이 들어서 다른 작품을 더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그만큼 이 소설은 풍부하고 방대하고 유려하며 깊이있다. 

형제 이야기. 인간의 갈등 중 으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관계가 바로 형제간. 성서 속 카인과 아벨을 모티브로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살리나스계곡을 배경으로, 전체적으로는 3代의 남자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즈음의 소설들처럼 머릿속으로부터 가슴으로가 아닌 몸으로부터 나와 삶에 이르는 이야기. 등장하는 사람들 하나 하나가 실제 어딘가에서 이렇게 살고 있었을 것같은 생동감이 넘친다.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아주 많이 개입된 소설이어서 얻은 결과일 것이다.  

1. 캐릭터의 향연
인물의 생기란 사실 개성의 다른 이름이다. 개성은 성격. 아주 다양하고도 섭외가 불가능한 개성적 인물들이 등장한다. 각개 인물 하나 하나가 평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적이라기에는 이미 획득한 성격적 보편성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할까. 대개는 그래, 이런 사람 있어, 이런 사람 봤다, 정도의 감흥으로 충분했었다. 어찌보면 소설에서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은 인물을 본 지가 하도 오래되서 여기 등장하는 캐릭터들에 몰입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새뮤얼과 라이자 부부는 내 사랑을 독차지하고도 남았지만 그들만 사랑하기에는 이 소설 안에 든 사람들이 너무나 매혹적이다. 애덤 같은 남자, 찰스 같은 남자, 캐시 같은 여자, 같은 남자, 아론 같은 남자, 같은 남자, 새뮤얼 같은 남자, 라이자 같은 여자, 레시 같은 여자, 같은 남자, 올리브 같은 여자 등등등. 아 끝이 없다. 진정 캐릭터 은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화 에덴의 동쪽에 무엇이 들어 있었던가. 그저 단면적인 반항아 하나가 들어 있었을 뿐. 소설 원작이 있는 경우 영화 서사에 그저 그런 느낌이 든다면 반드시 그 원작을 찾아 읽어보아야 한다. 왜 영화와까지 되었는가는 정작 영화 자체로는 보여줄 수 없는 것이 다반사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 원죄 또는 운명
서구의 창작물을 접할 때는 언제나 답답했다. 예외없이 성서가 언급한 원죄의 카테고리 안에서 인간을 다루므로 이단이 아닌 이상 결론에 대해서는 충분한 납득이 항상 어렵다. 그래서 이방인들의 팀셸이었을 것이다.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운명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은 것이라는 주제의 울림이 꽤나 크다. 이는 분명 내가 가진 개인적 편견, 저들의 운명관이라는 게 원죄의식이지, 에 든 그것을 깨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3. 창세기와 팀셸

 

 

4. 악인에 대하여

 

 

5. 중국인 리이

 

 

6. 경험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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