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시스터즈 키퍼 - 쌍둥이별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왜 작가가 이 결말을 취했는지 곰곰 생각하게 만든다. 우연이라니. 이토록 리얼한 이야기의 끝을 우연성에 매달리게 하다니. 영화조차 거부하게 만든 이 결말을 작가는 왜 선택한 것일까. 그야말로 작품성을 100% 떨어뜨린다는 걸 작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을텐데. 그런 생각으로 한 사흘 있다보니 얼추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어떤 결말이든 이 가족은 슬픔 속에 남아 있게 되었을 것이다. 이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도 그 곳을 떠나지 않은 것이 슬픔이었다.  

아마도 그 슬픔을 뒤집고 싶었을 것이다. 슬픔 속에서도 도덕적이고 옳은 일을 한다 주장하는 그 누군가를 뒤집고 싶었을 수도 있다. 나아가 어쩌면 죄책감으로 죽을 때까지 불행했을 수도 있는 아이를 얼른 그 잔인한 세상에서 건져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독자만은 편하게 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가적인 도의 뭐 그런 거. 그렇게 독자가 제일 먼저 잊고, 어린아이들이 그 다음 잊고, 친구들이 그 다음으로 그 아이를 잊어 버리고, 아버지가 드디어 아이를 잊어 버리는 때가 오겠지. 그러나 가장 마지막까지 울고 또 울어야만 하는 사람은 엄마다. 영원히 잊지 못해야 하는 사람도 엄마다. 자신이 낳은 모든 자식을 똑같이 못 잊어할 사람이 바로 엄마. 작가도 그런 엄마를 용서하지 않은 것 같아서 한편으론 마음이 놓이고 한편으로는 그지없이 마음이 무겁다. 

여하간, 작가가 선택한 이 결말에 든 의도가 무엇이든 나는 영화의 결론이 훨씬 좋았다. 끝나기 1분 앞두고 전쟁, 재해, 사고 같은 건 막장드라마들이나 택하는 결말이다. 물론 그래서 이 작가의 작품들이 문학성과 대중성 모두를 거머쥐었다 얘기하는지는 몰라도. 신파성이 작품성을 확 낮췄다고나 할까. 그 혐의는 캠밸에 가면 거의 폭포 수준이지만. 그렇게 줄리아가 사라져 간 것이었을 것이므로 영화는 영화답게 하나의 이야기만 가지고 눈물을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이리라.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 1분 전까지 별 다섯 개였다가 1분 후 별 네 개. 이런 소설도 참 오랜만이다.
 

밑줄 

나는 아주 특수한 목적으로 태어났다. 나는 값싼 포도주나 보름달이나 순간의 흥분에 따른 결과물이 아니었다. 어떤 과학자가 귀중한 유전 물질의 특수한 조합을 만들어내기 위해 엄마의 난자와 아빠의 정자를 연결해서 태어난 것이다. 부모님이 작은 태아인 날 선택하게 된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내가 케이트 언니를 살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 그러나 만약 케이트 언니가 건강했더라면 난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지상에서의 한때를 보내기 위해 누군가의 몸에 들러붙기만을 기다리며 지금도 천국이나 어딘가를 부유하고 있지 않을까? 분명한 건, 내가 이 가족의 구성원은 아닐 거라는 거다. 알겠는가, 이 자유로운 세상의 다른 아이들과 달리 나는 우연히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 만약 부모가 어떤 이유가 있어 아이를 가진다면 그 이유는 더욱 두드러진다. 그 이유가 사라지면, 나란 존재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9

설명할 게 너무 많다. 내 피가 언니의 혈관으로 스며들고 있다는 것, 언니에게 줄 백혈구를 뽑기 위해 간호사들이 날 꼼짝없이 누른다는 것, 의사가 한 번만 갖고는 안 된다고 말한 것. 또 골수를 뽑고 나면 멍이 들고 뼈가 욱신댄다는 것, 언니에게 줄 여분을 만들려고 내 몸속 줄기세포를 더 많이 발화시키는 주사를 맞는다는 것. 나는 아프지 않지만 차라리 아픈 게 낫겠다는 사실. 내가 태어난 이유는 언니를 위한 결과물일 뿐이라는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에 대한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의견을 말할 자격이 있는 당사자에게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는 사실.
설명할 게 너무 많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설명을 한다. “신이 아니에요. 제 부모님이에요.” 내가 말한다. “내 몸의 권리를 찾기 위해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25

안나는 우리에게 신나는 리듬을 주는 아이다. 그런 애가 묵묵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까 침묵에도 소리가 있다는 걸 알겠다. 53 

방화는 우리가 불과 싸울 때 이용하는 과학을 그대로 따르지 않기 때문에 위험하다. 방화는 우리가 안에서 불과 싸우고 있을 때 건물이 붕괴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위험하다. 58 

초신성들은 가장 밝은 은하수보다도 더 밝다. 초신성들은 죽지만, 사라지는 모습은 누구나 볼 수 있다. 60

너무 빨라 보지도 못한 엄마의 손이 머리가 홱 돌아갈 정도로 내 얼굴을 세차게 때린다. 엄마는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을 자국을 새긴다. 다섯 손가락은 치욕이다. 74 

어둠 속에 있으면 침묵이 고막을 밀고 들어와 귀를 먹게 하는 것을 알고 있는가? 79 

서로 한 시간 거리도 안 되는 곳에 살지만 서로간의 철학적 소신은 천 리나 된다. 83 

알아야 할 게 끝이 없다. 무수한 침들이 어찌나 빠르게 날아드는지 이제는 찔리고 있다는 느낌조차 없다. 결국은 이거다. 생각하지 말라. 87  

상륙거점을 모래주머니로 막는 일에 열중하다 보면 멀리서 오고 있는 해일은 잊을 수 있다. 그렇지 않고 해일에만 열중한다면, 미쳐버리고 말 거다. 90

자신의 세계가 완전히 멈춰버린 동안에는 다른 사람의 세계도 그렇다고 가정하기가 쉽다. 93

이제 와서 나란 녀석도 뭔가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는 건 왜였을까? 나 자신조차 살릴 수 없는 주제에 뭐 때문에 동생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135 

나는 방탄 유리벽을 통해 케이트를 응시한다. 감마선, 백혈병, 부모라는 것. 우리를 죽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것들이지만, 우리는 그들이 오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 144 

내 반쪽은 이미 안나가 신중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 애는 어떤 상황으로 무모하게 뛰어드는 아이가 아니다. 나와 함께 가는 것에 대해서도 이렇게 오래 생각하는 아이라면, 가족의 그물에서 풀려나는 문제에 대해서도 틀림없이 오래 열심히 생각했을 것이다. 150 

전통적으로, 부모는 아마도 자식을 위한 최선이라는 명목으로 자식에 대한 결정을 할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들 중 한 아이만 위하다 보면 그 질서는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그 무너진 돌덩이들 밑에는 안나 같은 희생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 최근에 북극곰 새끼가 태어 났는데, 다른 동물원에 줬대요.
- 새끼는 자기가 무슨 잘못을 해서 멀리 떨어지게 됐다고 생각할까요? 154 

입가에는 미세한 주름들이 나있다. 내가 가까이서 들을 수 없었던 세월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괄호처럼. 161 

서커스에서 줄타기 곡예사는 관중들이 자신의 공연을 예술이라 믿어주길 원하지만, 사실 깊이 들여다 보면 저기까지 무사히 건너가기만을 바란다는 걸 아세요? 171 

자기가 누구건 간에, 사람에겐 늘 자기 아닌 딴 사람이길 바라는 반쪽이 있다. 그리고 찰나일지라도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건 기적이다. 189 

제시 오빠가 틀렸다. 나는 내 마음이 편해지려고 언니를 보러 온 것이 아니다. 나는 언니가 없으면 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하기 힘들기 때문에 왔다. 190 

구조물 화재가 났을 땐 내가 불을 이길지, 아니면 불이 나를 이길지 알 수 있는 순간이 있다. (......) 모든 것이 나를 압도할 때, 모든 불은 내 도움 없이도 스스로 타버린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야 할 때, 그때가 바로 철수할 때다. 195 

갇힌 모든 것이 그렇듯, 붕 또한 달아나려는 자연스러운 본능을 가지고 있다. 196 

아이들은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다. 두리번 두리번 아이를 찾지만 아이는 방에 있지 않고 벽장에 숨어 있다. 두리번거리고 찾고 보니 아이는 세 살이 아니고 열세 살이다. 부모 노릇은 사실 추적의 문제다. 다음 움직임을 볼 수 있도록 내 아이가 너무 앞서 가지만 않기만를 바라면서 말이다. 200 

보석은 엄청난 열과 압력을 가한 돌에 불과해. 비범한 것들은 언제나 사람들이 결코 볼 생각을 하지 않는 곳에 숨어 있어. 207

나는 그 애의 머리카락을 만진다. 혹 내가 기적을 써버린 건 아닐까. 242 

일곱 살 때 땅굴을 파서 중국으로 가버릴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263 

아는가, 어둠이란 상대적이라는 걸. 263 

안나는 바로 눕더니 내 어깨 위에 머리를 기댄다. 매 순간, 은빛 광선이 타오른다. 괄호, 감타부호, 콤마. 말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빛으로 이루어진 문법이다. 274 

변호사들에게 통하는 윤리는 세상 사람들의 윤리와는 다르다. 사실 우리는 읽고, 시험 보고, 관행을 유지하기 위해 따라야 하는 성문화된 규약-- 법조윤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 규범들이 우리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도덕적이라고 하는 짓들을 하게 만든다. 가령 누군가 내 사무실을 찾아와퓨"린드버그 아기를 죽였어요." 하고 말하면, 나는 시신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그 사람은 내게 "제 방 밑에, 주춧돌 아래 1미터쯤 되는 곳에요." 하고 말한다. 내 일을 제대로 하려면 아기가 어디 있는냐고 말해서는 안 된다. 사실 그렇게 했다간 법조계에서 추방당할 수도 있다. 292 

다들 알듯이 불과 희망은 연결되어 있다. 그리스 신화를 따르자면 (......) 그는 인간을 똑바로 걷게 해 주었고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주었다 (......) 인간을 벌하기 위해 제우스는 최초의 여자--판도라--를 창조해 그녀에게 선물을 주었다. 절대 열너보아서는 안 되는 상자를. (......) 희망이 달아나기 전에 간신히 뚜껑을 닫았다. 그것이 우리가 다른 것들과 싸우기 위해 남긴 유일한 무기다.
소방관들에게 물어보라. 그 이야기는 진실이라고 말할 것이다. 흠. 아버지들한테도 물어보라. 299

내가 하고싶은 질문은 이렇다. 당신은 하늘 나라에 있을 때 몇 살로 있고 싶은가? 내 말은, 하늘나라라면 가장 예쁜 모습으로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사람이 늙어서 죽으면 이도 없고 머리도 벗겨진 채 돌아다닐까? 이 질문은 고에 꼬리를 문 질문들로 펼쳐진다. 목매달아 죽으면 혀를 토해낸 채 추하고 창백한 모습으로 돌아다닐까? 전쟁터에서 죽으면 지뢰 폭발로 날아가버린 다리 한 짝이 없이 영원을 보내게 될까?
당신은 아마 선택을 할 것이다. 별이 되고 싶은지, 구름이 되고 싶은지, 저녁으로 치킨이나 생선이나 만나(신이 내린 양식) 중 뭘 먹고 싶은지, 다른 사람들에게 몇 살 때 모습을 보이고 싶은지 답을 할 것이다. 가령 내 경우엔 열일곱 살을 택할 거다. 그때쯤이면 가슴이 제법 커져 있을 것이고, 쭈글쭈글한 100세 할머니로 죽는다 해도 천국에서는 어리고 예쁠 테니까.
한번은 어떤 만찬 중에 아빠가 자신은 아무리 나이를 먹고 또 먹어도 마음은 늘 스물 한 살이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의 인생에는 바퀴 자국처럼, 아니 그보단 소파의 꺼진 부위처럼 마모되는 지점이 있는 듯하다. 자신에게 어떤일이 있든 늘 거기로 회귀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 문제는 모든 사람이 달라진다는 거다. 만약 이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세월을 떨어져 있다 서로를 찾으려고 하면 하늘나라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당신이 죽어서 5년 전에 죽은 남편을 찾아다닌다고 해보자. 당신은 일흔살의 남편 모습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 남편은 최고로 멋진 열여섯살로 돌아가 더할 수 없이 신나게 돌아다니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니면 당신은 케이트고 열여섯 살에 죽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이 세상에서 결코 도달하지 못한 서른다섯 살의 모습으로 있겠다고 선택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럼 도대체 어떻게 당신을 찾을 수 있을까? 364-365  

시간은 착시다.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견고하거나 강하지 않다. 416 

남편에게는 늘 내가 바라왔으며, 나에게도 전염되는 단호함, 조용한 의지, 한결같은 평화가 있다. 461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완벽해서가 아니잖아. 완벽하지 않은데도 사랑하는 거잖아. 502 

사람들은 집이 영원할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세찬 바람이나 위력적인 공에도 황폐화될 수 있다. 그 안에 사는 가족도 다르지 않다. 513 

영어에는 고아와 과부라는 말은 있지만, 아이를 잃은 부모에 해당하는 말은 없다. 541 

슬픔에도 유통기한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 울다 깨어나도 괜찮지만 한 달을 넘기면 안 된다고 정해놓은 법령 같은 게 말이다. 544 

슬픔은 예기치 않게 일어날 때 좀 기묘해진다. 마치 가족의 상층부만 감싼 채 벗겨지고 있는 반창고 같다. 그 하복부를 보면 결코 아름답지 않은데, 우리 가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는 헤드폰을 낀 채 며칠째 방에 만 처박혀 있었다. 그래야 엄마가 우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아빠는 몇 주 동안 24시간 근무를 했다. 그래야 우리끼리만 있기엔 너무 넓기만 한 집으로 오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5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