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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인문으로 탐구하다 ㅣ 융합과 통섭의 지식 콘서트 5
박민아.선유정.정원 지음 / 한국문학사 / 2015년 9월
평점 :

왜 우리나라에서는 <인터스텔라>나 <빅뱅이론>같이 과학을 담고 과학자가 주인공이 되는 대중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저자들은 그런 것을 만들어낼 만한 과학 대중 문화의 토양이 부족해서라고 조심스레 답한다.
물론 과학 시책이나 연구개발을 주도하는 정부의 정책이 큰 변수 중의 하나다. 우리 과학자 들이 기초과학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인구 8백만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나라 이스라엘의 연구개발비가 우리보다 두 배나 높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과 노벨물리학상에 일본인 과학자가 선정되었다. 1949년 유카와 히데키를 필두로 지금까지 노벨상을 수상한 일본인 과학자가 무려 21명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단 한 명도 없는데 말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일까?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과학과 다른 분야들 사이의 융합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 주기 위해 애썼다. 아울러 과학이 철학이나 예술, 그리고 사회 전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오늘날과 같은 독립성과 자율성을 얻기 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울러 과학이 오늘날과 같이 성장하고 발전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서 과학이란 어떤 학문인지 현대과학과 다른 학문간 융합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또한 과학도 우리 인간이 하는 일이기에 인간들이 하는 일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가 과학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령 돈, 인간관계, 폭넓은 상식, 뛰어난 재주, 이해관계, 국제관계, 과학 연구조직과 연구기관들, 사회적 요구와 필요 등의 요소들이 이에 관여한다.
이 책의 구성을 보면 저자들이 과학과 다른 분야간의 융합을 설명하기 위해 얼마나 고민했는지 역력히 알 수 있다. 책은 모두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과학이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보는 총론이다. 2장부터 과학과 예술·철학·사상·종교·전쟁·대중문화의 관계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설명하는 각론이다.
저자에 따르면 과학에서 융합이 이루어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컴퓨터의 시대에 들어 수학·논리학·전자전기공학이 모두 요구되는 융합 분야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널리 알려진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다시 살펴볼 수 있었다. 과학혁명이란 특정 패러다임에 들어맞지 않는 변칙 사례들이 나타나면서 이를 설명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것을 말한다. 흥미롭게도 덴마크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의 우주 모델(그림)이 이에 적합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브라헤의 우주 모델
브라헤는 태양중심설과 지구중심설을 절충하는 모델을 고안했다. 즉 지구를 제외한 모든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태양중심설과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지구중심설을 모두 활용했다. 이 모델은 패러다임 전환의 과도기를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결국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에 의해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완전히 뒤짚어지기 전의 과도기에 브라헤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몇 년 전 벨기에 안트베르펜에 여행했던 적이 있었다. 안트베르펜 대성당에 있는 루벤스의〈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를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16세기 중반 유럽의 출판계를 지배했던 플랑탱과 모레튀스를 기념하는 박물관이 안트베르펜에 있다는 것을 알고 어찌나 아쉬웠던지!
루벤스와 친분이 있었던 모레튀스는 자신이 펴낸 다수의 책에 표지 및 본문 삽화를 부탁했다. 루벤스에게 유럽 전역에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좋은 기회였다. 인쇄술의 발달이 명작의주인공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마냥 재미지다.
여성사회학자 루스 코완은 ‘과연 세탁기와 진공청소기가 여성에게 더욱 편안함을 주었는가?’에 의문을 제시했다. 그녀에 따르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저자들은 세탁기와 진공청소기를 사용하면서 ‘위생’이라는 보건 기준을 가정으로 글어 들어와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을 더 늘렸다고 주장한다. 내게 새로운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책에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읽을거리가 한가득 담겨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마치 고구마 줄기 딸려 나오듯 끝없이 이어진다.
르네상스 때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같은 그리스 고전이 번역되어 지식이 널리 유통되었다. 이는 곧 르네상스 이래 과학혁명이 시작된 단초가 되었다. 근대 사회에 그리스 고전이 과학혁명의 붐을 일으켰다면 오늘날 우리가 인문 고전을 새롭게 읽으며 제2의 과학혁명을 일으키지 못하란 법이 있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지금의 인문학 열풍은 과학계에도 반가운 훈풍이 아닐 수 없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다방면으로 영감에 가까운 사고를 풍성하게 안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을 받는 과학자가 나오려면 지금과는 다른 패러다임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에 대한 단초는 인문학적 사고에서 시작될 수 있겠다. 일독을 권해 드리고 싶다!